[데스크칼럼] 롯데그룹의 브루투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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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롯데그룹의 브루투스들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5.08.0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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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인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 후 추도사에서 한 연설이다.

그는 카이사르의 전제통치에 반발해 공화정 재건을 주창하며 카이사르를 암살하려는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음모에 가담했다.

갑자기 브루투스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4일 롯데그룹에서 벌어진 경영진들의 동시다발적 행동 때문이다. 롯데그룹 사장단의 성명과 일본 롯데홀딩스의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의 기자회견이 그것이다.

이날 오전 롯데그룹 37개 계열사 사장단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홍보관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갖고 “롯데그룹을 이끌어갈 리더로 오랫동안 경영능력을 검증받고 성과를 보여준 현 신동빈 회장이 적임자임에 의견을 함께하고 지지를 표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또 “롯데그룹 설립자로서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해오신 신격호 총괄회장에 존경심을 표하며 이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일본에서는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이 비슷한 기자회견을 했다.

쓰쿠다 사장은 ‘한국 사업 신동빈-일본 사업 쓰쿠다’ 체제가 “매우 안정적”이라며 과거 ‘한국 사업 신동빈-일본 사업 신동주’ 구도를 정면 부정하며 신동빈 손을 들었다. 특히 신동주 전 부회장에 대해서는 “머리가 좋고 우수한 분”이라면서도 “기업 통치의 룰과 원칙에 따라서 그렇게 (사임하게) 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신격호 총괄회장을 경영 2선으로 물러나도록 한 명예회장 추대에 대해서는 “큰 실적을 남기신 분이기에 존경의 마음으로 힘든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경영진들이 발표한 이날 발언들은 브루투스의 추도사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의냐 타의냐는 별반 중요하지 않다. 신동빈 회장이 5년째 한국롯데의 인사권자로 군림해 왔던 만큼 자의다 하더라도 속내는 보일 만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인원 그룹정책본부 부회장과 황각규 정책본부 사장에 대한 신 총괄회장의 해임지시서가 나돌고 지난 달 27일 일본을 전격 방문했던 신 총괄사장이 쓰쿠다 사장 등 이사 6명을 해임시킨 상황에서 자신들이 설 자리가 어디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그래도 뒷맛은 개운치가 않다. 롯데그룹 회장 자리라는 것이 인기투표로 뽑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사장단이 집단으로 지지표명이라는 성명까지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신동빈 체제 고수를 위한 다급함까지 읽혀진다.

특히 이들은 지난 5년간 신동빈 회장이 휘두른 인사권의 최대 수혜자라고 하더라도 신격호 총괄회장과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은혜(?)를 입었지 않았던가.

쓰쿠다 사장이 일본롯데홀딩스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역시 신 총괄회장의 발탁 덕분이고 보면 씁쓸함은 더하다.

재계에서 “지주의 몰락을 예견한 마름들이 새로운 지주에게 들어붙는 모양새”라며 "노예근성의 극치"라고 비웃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장단 모두 전문경영인이라고 자처하는 만큼 차라리 중립을 지키거나 설사 신동빈 회장을 지지해도 굳이 집단성명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카이사르에 의해 요직에 올랐던 브루투스의 암살 결심 배경에는 전제통치에 맞서 공화정이라는 자신의 철학이 있었다.

롯데그룹 사장단의 신동빈 회장 지지에는 어떤 철학이 담겼을까. 브루투스는 결국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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