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사퇴 ‘도미노’···‘이름빼기’·‘옥상옥’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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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 사퇴 ‘도미노’···‘이름빼기’·‘옥상옥’ 우려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3.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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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 이후에도 사실상 경영 전권 행사···말뿐인 자율경영
▲ 최근 그룹 계열사 등기이사직 사임의사를 밝힌 재벌총수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재벌그룹 총수의 등기이사 사퇴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유죄판결이 확정되거나 재판에 계류중인 재벌총수들이 법규 제한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워지면서 하나둘씩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퇴가 전문경영인에 의한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옥상옥(屋上屋)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이 더 강하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실형이 확정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집행유예가 선고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1심에서 4년형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올 들어서만도 벌써 세 명의 재벌총수가 등기이사 사임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들 세 명의 재벌총수는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이미 유죄가 확정됐거나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수백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이 확정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4일 그룹 내 계열사의 모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SK㈜와 SK이노베이션 외에 2015년과 2016년 임기가 만료되는 SK하이닉스와 SK C&C이 등기이사직에서도 사퇴하게 된다.

최 회장의 등기이사직 사퇴 배경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회사발전 우선과 도의적인 측면에서 책임을 지고 모든 관계사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최 회장의 등기이사 사퇴를 줄곧 촉구하는 한편 등기이사 재선임 안건이 상정된다면 SK㈜와 SK이노베이션의 3월 주주총회에 주주 자격의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히는 등 외부압박도 사퇴의 배경으로 풀이되고 있다.

최태원 회장에 앞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7개 계열사 대표이사직 사임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지난 달 18일 ㈜한화와 한화케미칼의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한다고 공시했다. 또 한화건설, 한화L&C,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엠, 한화이글스의 등기이사직 사임서도 제출했다.

만성폐질환과 조울증을 앓고 있는 김 회장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한화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화는 총포·도검·화약류단속법에 따라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된 사람이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업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김 회장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한화의 화약류 제조업 허가는 취소 사유가 된다.

또 한화케미칼의 경우에도 특정 경제범죄 가중 처벌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관련 재직할 경우 해당 회사의 업무를 제한하고 재직자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어 김 회장의 사퇴는 불가피하다.

한화갤러리아 대표이사직 역시 평생교육법의 평생교육시설 설치인가 문제에서 김 회장은 결격 사유자로 알려졌다.

1심에서 16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앞둔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3월말 임기가 끝나는 CJ E&M, CJ CGV, CJ오쇼핑 등 3개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임기가 남아 있는 CJ,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CJ시스템즈 등 4개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은 일단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CJ 측은 임기만료를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서 선처를 호소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 3개 그룹총수 외에 경영권 유지를 위해 200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지난달 11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된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등기이사직 사퇴가 예상되고 있다.

등기이사직 사퇴를 선택했거나 사퇴가 예상되는 이들 그룹총수의 공통점은 한결 같이 범범자거나 그 혐의로 법적 제재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등기이사직 사퇴는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법적 규제 혹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 등을 배경으로 한 강제 혹은 반강제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상징적이고 형식적인 ‘이름빼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강하다.

재벌총수가 물러난 자리는 전문경영인이 채우게 되겠지만 사실상 모든 결제와 재가는 결국 이들 몫이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의 사임을 발표할 당시 SK그룹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이사직을 사임하더라도 회사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백의종군의 자세로 임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했다. 이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의사가 전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던 재벌총수들과 그 일가들이 실세 경영일선에서 떠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면서 “등기이사가 아니라하더라도 이들은 대주주 혹은 오너 일가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등기이사직을 사임했지만 여전히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이사직을 사임했지만 이들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 행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등기이사로 등재되지 않았지만 절대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했지만 사실상 자택에서 모든 경영을 총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재벌총수의 사퇴로 그 자리를 대신하는 전문경영인은 사실상 허수아비에 다름없다”면서 “이는 필연적으로 옥상옥(屋上屋) 경영을 수반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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