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앙정 송순과 가사문학의 산실 ‘면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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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 송순과 가사문학의 산실 ‘면앙정’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4.03.0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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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④

 

▲ 식영정 바로 옆의 가사문학관. 이곳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가사문학의 모든 자료를 볼 수 있다.

최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은 호남을 대표하는 명산(名山)이다.

무등산은 광주, 화순, 담양에 걸쳐있는 웅장하고 수려한 산인데 현재 무등산 북서쪽 기슭의 원효계곡 자락에 있는 성산(星山) 아래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는 16세기 조선의 문학사를 찬란하게 빛낸 국문시가(國文詩歌)인 가사문학과 관련한 기념관인 한국가사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가사문학관이 세워진 까닭은 이 일대를 중심으로 반경 10여 km 안에 세워진 면앙정(俛仰亭)·식영정(息影亭)·소쇄원(瀟灑園)·환벽당(環璧堂)·송강정(松江亭) 등을 무대 삼아 호남의 문사(文士)들이 수많은 국문시가(가사문학)의 걸작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가사문학과 호남가단(湖南歌壇)

조선의 사림(士林)은 영남사림과 기호사림 이외에 호남사림(湖南士林) 또한 큰 학맥(學脈)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영남사림이 경북 안동과 예안, 경남의 진주와 합천 그리고 기호사림이 경기도 파주와 황해도 해주를 지역적 기반으로 삼아 활동했듯이 호남사림 역시 전남 담양과 장성을 주요 활동 지역으로 삼아 학맥을 형성했다.

그런데 성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영남사림과 기호사림에 비해 호남사림은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크지 않다. 그 까닭은 영남사림과 기호사림이 ‘도학(道學 : 성리학)’ 연구와 그 실천에 힘을 쏟은 반면 호남사림은 ‘시가(詩歌)’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 고봉 기대승

물론 호남사림에도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논쟁’을 벌인 고봉 기대승처럼 성리학에 정통한 대학자가 있었지만 대다수 호남사림의 인물들은 성리학보다는 문학 방면에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특히 이들의 문학 활동은 당시 조선 사대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한시(漢詩)보다는 국문시가인 가사문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른바 ‘호남가단(湖南歌壇)’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다.

그렇다면 호남사림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호남가단’을 이끌었던 문사(文士)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현재 한국가사문학관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정자 혹은 정원의 주인이었다. 면앙정의 송순, 식영정의 서하당 김성원과 석천 임억령, 소쇄원의 소쇄옹 양산보, 환벽당의 사촌 김윤제, 송강정의 정철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이들과 사제관계나 혹은 친·인척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고봉 기대승, 하서 김인후, 백호 임제,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 충장공 김덕령 등이 ‘호남가단’의 주요 구성원들이었다. 당시 이들은 크게 보아 면앙정과 성산 주변의 빼어난 산세와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삼아 창작 활동을 했는데, 이 때문에 호남가단은 ‘면앙정가단’과 ‘성산가단’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면앙정가단’과 ‘성산가단’의 중심에는 오늘날 비평가들이 조선의 가사문학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극찬하는 두 사람, 곧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峯類說)』을 저술해 실학의 선구자로 지성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지봉(芝峯) 이수광의 짧지만 강렬한 아래와 같은 증언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사는 우리말을 섞은 까닭에 중국의 악부(樂府)와 더불어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근세에 송순과 정철의 작품이 가장 훌륭하다. 그러나 입으로 회자(膾炙)되고 마는 데 불과하니 애석한 일이다.” 『지봉유설』‘가사(歌詞)’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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