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되새기는 정운영의 ‘미망’…『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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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되새기는 정운영의 ‘미망’…『시선』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9.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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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논객이었던 정운영은 마르크스 경제학자였지만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냉전시대의 대결적 사고에 기초한 낡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철저한 휴머니스트의 입장을 취했다.

1990년 출간된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는 ‘J에게’라는 시로 시작한다. 정운영은 이 시에서 베토벤 교황곡 9번 제4악장 ‘합창’의 가사로 쓰인 쉴러의 시를 재인용한다.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되고(알레 멘셴 베르덴 브뤼더)”.

정운영의 시선은 늘 그것을 갈망했을 것이다. 단호하고 도도하고 유려했던 그의 언어가 닿고자 한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람의 경제학이었다.

신간 『시선』(생각의힘)은 정운영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출간되는 선집이다.

첫 번째 칼럼집 『광대의 경제학』(1989)에서부터 마지막 칼럼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2006)까지 모두 아홉 권의 칼럼집에서 그의 사상을 잘 반영하면서도 여전히 시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글들을 가려 뽑은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포괄하는 르네상스적 비판정신과 곡조 있는 글쓰기의 정점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부터 1789년 프랑스혁명과 파리 꼬뮌에 이르기까지 혁명에 관한 통시적 고찰, 민족 반역자 처단에 실패하고 승전국으로 대우받지 못한 1945년 광복의 이면, 프랑스 68혁명의 실패,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회고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주요 사건의 시대적 의미에 관한 글들이 책에 담겨있다.

또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의 날카로운 시론이 돋보이는 주요 칼럼과 경제학의 소명과 관련된 원론에서부터 ‘한국의 명문’으로 선정된 ‘귀향, 화해 그리고 새 출발을 위하여’와 부인의 도움을 받아 병상에서 구술로 완성한 마지막 칼럼 ‘영웅본색’도 만날 수 있다.

선집 마지막 글의 제목은 ‘가을의 미망(迷妄)’이다. 그는 이 글에서 “가을 하혈의 통증”을 서술한다. “악마가 어둠의 날개로 세상을 암흑같이 뒤덮어서”(후이징가) 비관과 우울로 살아가는 인생의 해방과 구원을 앙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미망’에 그치고 말았다. 이 선집은 그 미망의 이유를 다시 반추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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