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모멸감’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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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모멸감’ 해부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4.0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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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가혹한 입시 경쟁, 인터넷에 범람하는 악플, 새롭게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감정노동, 유행어처럼 쓰이는 갑을관계….

한국인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모멸감은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출퇴근길 도로 위에서 주고받는 거친 언사, 학교나 회사에서 겪는 크고 작은 모욕, 수화기 너머에서 혹은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들, 심지어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일상에서 ‘모멸감’은 빈번하게 경험된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겪는 모멸감은 흔히 ‘정서적인 원자폭탄’으로도 불리며 인간을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폭력으로 발화하기도 한다.

그것은 ‘화’ ‘분노’ ‘우울’ 등의 감정과 달리 객관화하기 힘든 속성을 지닌다.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는 그의 신간 『모멸감』(문학과지성사)에서 ‘감정’을 사회적인 지평에서 분석하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모멸은 ‘업신여기고 얕잡아봄,’ 모멸감은 ‘모멸스러운 느낌’으로 풀이된다. 모멸감은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이며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을 파괴한다. 많은 경우 모멸은 다른 모멸로 이어지면서 자괴감과 수치심을 확대 재생산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분노는 자기나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도 표출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모멸감이 보다 날카롭게 경험되는 데는 조선 시대에 형성된 귀천의식과 신분적 우열 관념이 자의적으로 청산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하게 추진된 산업화와 급변한 사회 환경이 역사적 배경에 있다고 분석한다.

그와 맞물려 모든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바로 정치·사회제도와 경제력 간의 불균형, 삶의 형태와 의식 사이의 부정합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 곳곳에서 악플, 왕따, 감정노동, 갑을관계 등 모멸 권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돈 벌면서 받은 멸시를 돈 쓰면서 풀고, 누군가에게 당한 모욕을 다른 누군가에게 앙갚음하고, 아무도 대놓고 비웃지 않지만 스스로 열패감에 젖어든다. 은근히 깔보는 마음을 느끼고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시선에 동의하며 자격지심에 빠져든다.

그렇다면 모멸감을 뛰어넘어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못난 사람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열릴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첫째는 구조적인 차원의 접근으로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하며 ‘기적’이라 불릴 만한 놀라운 발전을 일궈냈지만 여전히 우리 삶은 퍽퍽하기만 하다.

절대 빈곤, 실업 등을 비롯해 최소한의 품위를 갖출 수 없다는 것, 자신이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엄청난 모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의 몫으로 수렴되고, 그것을 추진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가 제기된다.

 
둘째는 문화적인 차원의 접근이다. 학력이나 외모, 경제력, 피부색, 나이 등 외형적인 차이를 절대화하면서 멸시하는 문화와 사회 풍토를 바꿔가야 한다.

김 교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넘어 느끼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모욕 감수성’을 제안한다.

셋째는 개인적 차원이다. 아무리 사회와 제도가 정비되더라도 모멸감을 아예 느끼고 살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삶의 자리에 모멸이 차고 넘치는 까닭은 스스로의 품위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인을 쉽게 모욕하는 풍토는 사회적으로 형성된다.

김 교수는 모멸감에 취약한 심성에 대해 저마다 일정 부분씩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존중과 자존의 문화는 여럿이 만드는 것이면서, 그 출발과 귀결의 지점은 결국 각자의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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