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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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4.08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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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개념에서 경제적 개념 전락…중년의 오해와 진실
▲ 10여년 전 방영됐던 한 통신회사의 TV광고

10여전 한 통신회사 광고에 등장했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중년을 겨냥하고 있다.

여전히 유행어처럼 회자되고 있는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중년의 거울이다.

광고에 등장했던 모델처럼 중년의 이미지는 육체적인 쇠퇴와 겹쳐진다. 흰머리와 주름살, 무기력하게 보이는 불룩 나온 배가 떠오른다. 여기에 꿈보다는 현실을 사랑해서 늘 허덕허덕 생활에 쫓기다 잠시 여유가 생기면 현실도피용 일탈을 꿈꾼다.

이 때문인지 이른바 ‘중년의 위기’는 누구나 인정하는 굳건한 사회적 통념이 되어 있다.

중년은 가정에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자녀들을 양육한다. 직장에서는 그동안 쌓아온 실력과 경험으로 중요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후배들을 이끈다.

인구수가 가장 많고 거의 대부분 오랫동안 경제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국가에 세금도 가장 많이 냈다.

하지만 현실의 중년은 역할에 어울리는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한다.

시카고 대학의 인류학자인 리처드 A. 슈웨더는 중년을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서로 다르게 형성된 문화적 허구라고 말한다.

우선 중년에 대한 정의는 국가와 민족, 역사와 문화, 인종과 계급 등 다양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중년을 정의하어 있다.

뉴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에서는 ‘청년기과 성인기 사이의 기간이며 일반적으로 40세에서 60세에 이른다’고 정의한다.

웹스터 사전과 미국의 인구조사국에서는 중년을 45~65세라고 고정해놓은 반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45~64세라고 언급한다.

비영리 단체인 퓨(Pew) 리서치센터는 50~64세를 제시하고 30~49세 사이의 사람들은 ‘젊은 성인’의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사실 중년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단계는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는 단지 어린이, 성인 그리고 노인으로만 구분했다. 심지어 1850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확한 나이를 잘 알지 못했다. 중년(midlife)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전에 등장한 것도 1895년이었다.

20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중년을 인생의 특별한 기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40~50대에 그들의 능력과 영향력이 최고조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18세기에는 원숙함과 연륜이 주는 부가적인 이익 때문에 사람들은 실제 나이보다 더 많은 것처럼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1880년 무렵부터는 나이를 낮추려 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에는 효율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됐고 시간이 중요한 가치기준이 된 것이다. 또한 시간당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다 더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보다 더 젊은 노동자를 선호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이 40, 50 그리고 60세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10년 단위로 집단을 구분하려는 인구통계 조사원들에게 자신들의 나이를 39, 49 혹은 59세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1900년 이전의 인구조사 보고서는 중년에 접어든 것을 감추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직장을 계속 다니거나 다른 직장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실제 나이를 감추려 했다.

이렇게 중년은 전후시대를 겪고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며 선호되고 찬양받는 젊음에 밀려났다. 원숙함과 지혜를 상징하는 문화적 개념으로 만들어진 중년은 산업화와 함께 노동 가치가 떨어지는 시기를 나타내는 경제적 개념으로 전락한 것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중년을 무기력과 쇠퇴의 시기로 고정시켜야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산업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년의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조성해 사업을 펼쳐나갔다. 이른바 영화,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의약품과 건강보조식품 업체들로 구성된 중년 산업 복합체의 출현이다.

현대사회에서 이 복합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 복합체는 사람들이 먹는 것과 입는 것, 생각과 취향, 심지어는 노는 방법까지 표준을 만들어내고 널리 퍼뜨린다.

 
그들의 공통점은 젊음을 찬양한다는 데 있다. 청춘이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라는 이데올로기를 쉴새 없이 만들어내고 전파한다. 판단 능력의 부족에 따른 미숙함은 도전과 패기라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포장되어 유통된다.

여기에는 중년 산업 복합체의 음모가 개입되어 있다.

뉴욕 타임스 기자로 문화와 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패트리샤 코헨은 저서 『나이를 속이는 나이』에서 거의 150년간 진행돼온 중년을 향한 오해의 역사를 방대한 자료와 통계 생생한 현장 인터뷰를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취업을 위해 머리를 염색해야만 했던 산업화시대에서부터 이제는 재력을 갖추고 여유 있게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 알파붐 세대의 탄생까지 발명되고 줄곧 왜곡돼온 중년의 역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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