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 빙허각 이씨…②여성 최초의 경제서적 『규합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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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 빙허각 이씨…②여성 최초의 경제서적 『규합총서』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3.09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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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가계 경영 능력이 나라 경제의 뿌리로 믿었던 여성 경제학자
▲ 신윤복 '다림질'. <개인소장>

[조선의 경제학자들] 가계 경영 능력이 나라 경제의 뿌리로 믿었던 여성 경제학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상품·화폐 관계와 시장경제가 일반적이지 않은 시대나 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 혹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흔하다.

의복을 예로 들어보자. 오늘날에는 옷감을 생산하는 사람과 의복을 제작하는 사람 그리고 유통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 경우 의복이 필요한 사람은 일정량의 화폐를 지불하고 구입한 후 소비한다.

따라서 오늘날 일반인들의 주요 경제적 관심사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재화를 생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화폐(임금)의 수입과 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빙허각 이씨가 생활하던 18~19세기-물론 이전 시대에 비해 상품·화폐 관계나 시장경제가 급속하게 발달하고 있었지만-대부분의 일반 백성들은 직접 옷감을 생산하거나 의복을 제작하고 동시에 소비했다.

따라서 이 시대 보통사람들의 주요 경제적 관심사는 오늘날과는 다르게 직접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제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특히 의식주처럼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제는 당시 사람들이 가정 경제와 집안 살림살이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핵심 사항 중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식주와 관련해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제는 대부분 여성들이 담당했고 또한 글깨나 공부했다는 지식인들은 의식주 문제에 매달리는 것 자체를 대단히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 때문에 이 문제는 가정은 물론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항이었지만 기록으로 남겨지거나 이론화되지 못했다.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규합총서』는 바로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이론적으로 체계화했다. 한마디로 가정과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제나 집안의 살림살이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일을 직접 담당한 여성이 저술한 최초의 경제 서적이 바로 『규합총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총서(叢書)라는 제목에 걸맞게 백과사전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크게 주식의(酒食議), 봉임칙(縫則), 산가락(山家樂), 청낭결(靑囊訣), 술수략(術數略)의 다섯 가지 조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 규합총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먼저 주식의는 가정과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먹고 마시는 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장 담그는 것에서부터 술 빚는 법과 밥·떡·과자와 온갖 반찬류를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둘째, 봉임칙은 당시 여성들이 가정 경제를 꾸려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길쌈과 의복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봉임칙은 『규합총서』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누에치기, 길쌈하기, 염색하기, 수놓기에서부터 의복을 제작하고 또 수선하는 방법을 총망라하고 있다.

셋째, 산가락은 논밭을 다스리고 각종 꽃과 대나무를 관리하는 내용에서부터 닭, 소, 말 등 가축을 사육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빙허각 이씨는 이 같은 일은 ‘시골 살림살이의 대강을 갖춘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들이 가정 경제와 집안 살림살이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데 있어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강조한 듯하다.

넷째, 청낭결은 집안에서 아이를 기르는 요령과 각종 구급 방법과 약물 복용 시 금기해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다.

빙허각 이씨는 의식주나 농사, 목축 등과 관련한 살림살이 못지않게 가족들의 건강 문제 역시 집안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사항이라고 여겼다.

『규합총서』에서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는 조목인 술수략 또한 가족의 건강·재액막이와 관련이 있다.

여기에서는 집의 방향과 관련한 길흉과 각종 재액막이 등을 다루면서 이 같은 일들이 무당이나 박수에게 현혹당하지 않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혀두었다.

빙허각 이씨는 『규합총서』의 서문에서 자신이 다섯 가지 조목을 밝히고 자세하고 분명하게 다루어 누구나 한 번 책을 열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서술했다고 적고 있다.

특히 참고하거나 자료를 인용한 책의 이름을 모든 조항에 걸쳐 자세하게 밝히고 자신의 의견이나 새로 추가한 내용은 ‘새롭게 입증했다’는 표시를 반드시 해두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빙허각 이씨가 철저한 문헌 고증과 아울러 자신의 경험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해 책을 서술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규합총서』는 가정과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들을 두루 보아 널리 기록하고 자세하고 분명하게 밝혀두었기 때문에 당대는 물론 여성들의 지적 수준과 욕구가 급팽창한 20세기 초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고 인용된 가정과 생활 경제 백과사전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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