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南冥) 조식①…남녘 바다 향해 날아가는 대붕(大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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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南冥) 조식①…남녘 바다 향해 날아가는 대붕(大鵬)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4.04.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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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⑨

▲ 남명 조식의 흉상.
조식은 성리학자다. 그러나 그는 동갑내기(1501년생)이자 학문적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과 같은 전형적인 성리학자는 아니었다. 그의 삶과 기상은 성리학이 담은 세계보다 훨씬 더 크고 깊고 넓었다.

필자가 생각할 때 그는 성리학을 넘어선 유일한 성리학자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당시 성리학자들이 요서(妖書), 즉 요망하고 요사스러운 책으로 취급하며 배척했던 『장자(莊子)』에서 자신의 호(號)를 취한 것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속의 기준이나 세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의 늠름하고 당당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조식을 대표하는 호는 ‘남명(南冥)’이다. 남명이라는 말은 『장자』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곧바로 만날 수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북녘의 아득한 검은 바다(北冥)에 물고기가 살고 있다.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그 곤의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곤은 어느 날 갑자기 새로 변신하는데,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한다. 이 붕의 등 넓이 또한 몇 천리인지 알 수 없다. 이 붕이 한번 떨쳐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펼친 날개는 창공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에 큰 바람이 일어나면 남녘의 아득한 바다(南冥)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녘의 아득한 바다(南冥)란 천지(天池)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편

『장자』는 수수께끼 같은 우화(寓話)와 전설 속의 동물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과 기호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노자(老子)』와 더불어 도가(道家) 사상의 바이블로 정치사상서 혹은 사회 사상서라고 하는데, 위에 소개한 내용만 보면-사상서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고-도대체 이게 설화(說話)인지 아니면 동화(童話)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어쨌든 여기에서는 북녘 바다를 뜻하는 ‘북명(北冥)’에 대비해 남녘 바다를 뜻하는 ‘남명(南冥)’이 등장한다. ‘명(冥)’이라는 한자는 ‘어두운 혹은 아득한’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바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명’은 북녘 바다 혹은 북녘의 아득한 바다, ‘남명’은 남녘 바다 혹은 남녘의 아득한 바다로 해석할 수 있다.

▲ 『장자』 ‘소요유(逍遙遊)’편에 등장하는 대붕(大鵬).
조식의 호 ‘남명(南冥)’은 글자 뜻만 보자면 남녘 바다 혹은 남녘의 아득한 바다라는 뜻을 갖는다. 그냥 이대로만 보자면 참으로 심심한 호(號)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있는 뜻을 알면 조식의 기상이 얼마나 크고 넓고 깊은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먼저 조식의 호를 이해하자면 위에서 인용한 『장자』의 첫 구절부터 알기 쉽게 해석해야 한다.

곤(鯤)이라는 물고기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곤(鯤)은 그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물고기인데 홀로 자유롭게 북명(北冥 : 북녘의 아득한 바다)의 푸른 바다를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

이 곤(鯤魚)이 어느 날 갑자기 변신해 붕(鵬)이 된다. 붕(鵬)은 전설 속의 새로 한 번의 날개 짓으로 9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난다고 해서 ‘대붕(大鵬)’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고전(古典)을 뒤지다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遊鯤獨運 凌摩絳霄(유곤독운 능마강소)”. 이 말은 “곤어(鯤魚)는 홀로 자유롭게 놀다가 붉은 하늘을 넘어서 미끄러지듯 날아간다”는 뜻인데 곤어(鯤魚)가 동쪽 하늘에 붉은 빛이 떠올라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대붕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웅장한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 번의 날개 짓으로 9만 리를 날아오른 대붕은 그 날개가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고 3천 리에 걸쳐 파도를 일으킨다.

옛 사람들은 대붕의 이 날개 짓으로 태풍이 만들어진다고 믿을 만큼 이 새를 신성하게 여겼다. 그런데 대붕은 자신이 살고 있는 북녘 바다를 벗어나 끊임없이 남녘 바다로 날아가고자 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장자가 ‘북명(北冥 : 북녘 바다)’을 세속의 삶에 비유하고 ‘남명(南冥 : 남녘 바다)’을 모든 욕망과 권력 그리고 세속의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난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곤(鯤)이 대붕으로 변하는 과정 역시 이와 비슷한 이치로 이해할 수 있다. 대붕은 모든 욕망과 권력 그리고 세속의 더러움을 벗어던진 자유롭고 위대한 존재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식의 호는 이상향인 ‘남녘 바다(南冥)를 향해 날아가는 대붕’을 뜻하며, 이것은 모든 욕망과 권력 그리고 세속의 더러움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그의 삶과 ‘위민(爲民)과 안민(安民)의 나라 조선’을 꿈꾼 그의 철학을 온전히 담고 있다.

조식의 학문 세계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나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에서 나타나듯 다분히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던 이황의 성리학과는 다르게 의리(義理)와 의기(義氣)의 실천을 강조해 사회현실과 정치 모순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을 추구했다.

이황의 성리학이 ‘사변철학(思辨哲學)’에 가까웠다면 조식의 성리학은 ‘사회비판철학(社會批判哲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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