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三峰) 정도전① “내가 이성계를 이용해 조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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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三峰) 정도전① “내가 이성계를 이용해 조선을 세웠다”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4.05.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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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⑩ “도담 삼봉인가? 삼각산 삼봉인가?”
▲ 조선건국에서 이성계가 힘을 쓰는 ‘몸체’였다면 정도전은 머리를 쓰는 ‘두뇌’였다. 사진은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와 정도전.

조선은 강력한 군사적 기반을 갖춘 이성계 세력과 유교적 이념으로 무장한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의 결합에 의해 탄생한 나라였다.

이성계가 힘을 쓰는 ‘몸체’였다면 정도전은 머리를 쓰는 ‘두뇌’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은 정도전의 정치 철학과 머릿속 설계도에 따라 건설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하나가 ‘신권정치(臣權政治)’라면 다른 하나는 ‘한양도성(漢陽都城)’이다.

먼저 신권정치란 간단하게 말해 재상(宰相)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 되어 통치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유교 국가가 이상으로 삼은 ‘민본(民本)과 왕도(王道)’를 이루기 위해서는 임금의 권력 행사를 제한하고 자신과 같은 지식 엘리트 집단에서 나온 재상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도전은 왜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공민왕에서부터 우왕, 창왕, 공양왕에 이르기까지 고려 말기의 정치적 혼란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정도전은 부자세습을 정통으로 한 왕조 국가에서 임금이란 성군(聖君)과 현군(賢君)이 나올 수도 있지만 또한 암군(暗君 : 무능하거나 변변치 못한 임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

더욱이 폭군(暴君)이 나올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암군(暗君)과 폭군(暴君)일지라도 임금의 자리란 함부로 바꾸거나 폐지하기 어렵다.

반면 재상이라는 존재는 유학자 곧 지식 엘리트 집단에서 가장 현명하고 유능한 인물을 고르는 일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또한 임금은 마음대로 갈아치울 수 없지만 재상은 변변치 못하거나 잘못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정도전은 무능하고 변변치 못한 임금이 나오더라도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재상만 있다면 자신이 정치적 이상으로 여긴 ‘민본(民本)과 왕도(王道)’를 이루는 데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임금의 역할이란 현명한 재상을 제대로 뽑는 것에 있을 뿐이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에서 이러한 자신의 정치 구상을 이렇게 밝혔다.

“재상은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아래로는 모든 관리를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린다. 따라서 그 직책의 권한이 매우 크다. 임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가 않다. 재상은 임금의 아름다운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을 받들고 옳지 않는 것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균형을 잡도록 해야 한다.” 『조선경국전』, ‘총서(總序)’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가 이러한 정치 모델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유방과 그를 보좌해 한(漢)나라를 세운 장량을 두고, “한나라 고조(유방)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고조를 이용해 한나라를 세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이 말은 “이성계가 나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성계를 이용해 조선을 세웠다”는 뜻이었고, 이성계의 역할은 정도전 자신을 신하로 삼는 것에 불과할 뿐 실제 이성계를 이용해 조선을 세우고 통치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정도전은 훌륭한 임금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했다.

“임금은 자신의 속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낮춰서 아래에 있는 현명한 재상에게 순응하여 따라야 한다.”

임금은 자신의 뜻을 앞세워 스스로 통치할 마음을 품지 말고 오로지 현명한 재상의 말에 따라 나랏일에 임하라는 주문이다.

그런 점에서 ‘신권정치’는 다르게 말하면 곧 ‘철인정치(哲人政治)’였다. 정도전이 말하는 재상이란 유교적 이념과 철학으로 무장한 지식 엘리트 집단의 리더를 가리키는 말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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