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객 뒤집힌 ‘아사리판’
상태바
[칼럼] 주객 뒤집힌 ‘아사리판’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6.09.02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쯤 되면 ‘아사리판’이라는 말 외에 더 이상 적절한 표현은 찾기 힘들다.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 바로 요지경, 아사리판이다. 요즘 한국사회 돌아가는 모양새를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던 검사 출신들이 줄줄이 범죄자가 되는가 하면 이런 검사들의 인사권을 주물럭거리는 청와대 민정수석도 같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뉴스메이커를 찾아다니며 뉴스를 생산했던 언론인은 또 스스로가 뉴스메이커가 되어 신문·방송에 오르내린다.

주객이 바뀌어도 너무 바뀐 것 아닌가.

어라, 국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보인다. 졸고 있는 듯 두 눈을 감고 있는 여당 대표와 최고위원, 그 가운데 멍 때리기를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의 원내대표를 담은 사진 한 장은 희극적인 한국정치의 단면이다.

국회의장의 정부를 향한 쓴소리 몇 마디에 정기국회 첫날부터, 그들의 표현처럼 ‘떼쓰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가 당최 어색하기만 하다. 이왕 할 농성이라면 결연하기라도 하던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농성은, 보도된 사진에 붙은 제목처럼 ‘안 하던 거 하려니 피곤하’고 국민은 한여름 똥개처럼 퍼져있는 이들을 보려니 또 피곤하다.

장관 후보자들의 부동산 투기니 도덕불감증이니 하는 청문회는 이제 씨알도 안 먹히고 있다.

음주운전을 해도 신분만 감추면 징계도 피하고 경찰청장 자리에도 앉는데 야당의 질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의 볼썽사나운 얼굴들을 보아온 것이 어디 한두 명이던가. 비난은 순간이고 이익은 영원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이런 비리 혐의들로 장관 자리에조차 앉아보지 못한 채 쫓겨난 이들이 오히려 짠하게만 느껴진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런 꼴사나운 모양새로 가득했던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유를 오직 단 한 사람만 모르고 있지 않은가.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준기)이 장생(감우성)에게 했던 말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네놈이 눈이 멀어 뵈는 게 없으니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들어놨구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