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三峰) 정도전③ ‘삼봉’에 얽힌 출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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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三峰) 정도전③ ‘삼봉’에 얽힌 출생의 비밀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4.05.2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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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⑩
▲ 도담삼봉을 내려다보고 있는 정도전 동상

[헤드라인뉴스=한정주 역사평론가] 최근 KBS 1TV에서 정도전의 삶과 철학을 재조명하는 대하사극 ‘정도전’을 방영하고 있는 까닭인지 때 아닌 ‘정도전 열풍’이 불고 있다.

필자 역시 ‘정도전’을 즐겨보고 있는데 한 사람의 철학자(유학자)이자 정치가가 어떻게 500년을 지탱해 온 왕조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담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었는가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보면 꽤나 흥미로운 드라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필자가 호(號)를 통해 조선 시대 인물들의 삶과 철학을 이야기로 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당연히 정도전의 호 또한 다루겠지?”라는 질문에 꼭 그렇겠다고 답변도 했기 때문에 여러 방법을 통해 정도전의 호인 ‘삼봉(三峰)’에 관한 자료와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정도전의 호 ‘삼봉(三峰)’의 유래를 둘러싸고 최근 때 아닌 논란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필자가 다룬 조선의 인물들 중 호의 유래와 관련해 논쟁에 휩싸인 사람은 정도전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정도전은 살아있을 때나 죽은 이후에나 ‘역적인가 아니면 충신인가?’, ‘권간(權奸)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를 둘러싼 논란에 끊임없이 휩싸였다. 그런데 이제 호의 유래에 대해서까지 논란을 겪어야 하다니, 필자는 정도전이야말로 조선 최고의 풍운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도전의 호 ‘삼봉(三峰)’이 단양 팔경 중의 하나인 ‘도담삼봉’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최근까지 일반적인 중론(衆論)이었다.

▲ “정도전이 도담삼봉과 이웃한 지금의 단양읍 도전리에서 태어났고 도담삼봉에서 아호를 따서 삼봉이라 했다”고 기록한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정보지리원(2010년 2월)의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의 ‘도담삼봉’에서는 “정도전이 도담삼봉과 이웃한 지금의 단양읍 도전리에서 태어났고 도담삼봉에서 아호를 따서 삼봉이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도담삼봉의 유래 또한 정도전과 관련이 있다고 소개했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도담삼봉과 이웃한 지금의 단양읍 도전리에서 태어났고 도담삼봉에서 아호를 따서 삼봉이라 하였다. 도담삼봉의 유래에 대해서 정도전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 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년 정선에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오.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단양군청의 인터넷 사이트에 보면 단양읍에 전해오는 고을설화를 소개하면서 “정도전이 어린 시절에 도담삼봉에서 보내면서 어린 꿈을 키운 곳이라 하여 도담삼봉의 자연경관의 빼어남을 이름하여 호를 삼봉이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단양 도담삼봉을 찾아가보면 그 안내문에도 “조선 개창에 큰 공을 세운 정도전은 자신의 호인 삼봉을 이곳에서 취할 정도로 도담의 경관을 사랑했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국가 공식기관은 물론이고 지자체, 관광지 등에 이르기까지 삼봉이라는 정도전의 호를 ‘도담삼봉’에서 유래했다고 공식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삼봉이 도담삼봉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하나의 정설(定說)처럼 된 사연은 역사학계의 원로학자인 한영우 전 서울대 교수가 쓴 『정도전 사상의 연구』(서울대출판부, 1973. P19에서 인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편 정도전의 호가 되었던 단양 삼봉(三峰) 지방에는 그의 출생에 관한 구전(口傳) 자료가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한다.

이에 의하면 정운경이 젊었을 때 관상가를 만났는데, 그가 앞으로 10년 뒤에 혼인하면 재상이 될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예언하였다. 운경은 이 말을 믿고 10년간 금강산에 들어가 수양하고 돌아오던 중 삼봉(三峰)에 이르러 비를 만나 길가의 어느 초가집에서 유숙하던 중 우씨(禹氏) 소녀를 만나 정도전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전(道傳)이라는 이름은 길가에서 여인을 만나 얻었다는 뜻이고, 삼봉(三峰)이라는 호는 출생지의 경치에 매료되어 취했다는 것이다.

이 구전자료는 많은 윤색이 가미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도전의 출생지가 단양 삼봉(三峰)인 것만은 사실이요, 어머니 우씨가 이곳 사람인 것도 사실이다.”

한영우 교수는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을 국역해 출간할 때 직접 쓴 ‘해제(解題)’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단양팔경(丹陽八景)의 하나에 삼봉(三峰)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정도전의 출생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鄭云敬)이 젊었을 때 이곳을 지나다가 어떤 상(相) 보는 사람을 만났다. 상 보는 사람은 그에게 10년 후에 혼인하면 재상이 될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정운경은 그 말대로 10년 뒤에 삼봉에 다시 돌아와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서 아이를 얻게 되었다. 그 아이를 길에서 얻었다 해서 이름을 도전(道傳)이라 하고 부모가 인연을 맺은 곳이 삼봉이므로 호(號)를 삼봉(三峰)이라고 지었다.

정도전의 어머니는 산원(散員) 우연(禹淵)의 딸로서 우연은 우현보(禹玄寶)의 족인(族人)인 김전(金戩)이라는 중이 여비(女婢)와 통하여 낳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운경의 장모는 여비의 딸인 셈이요, 여비의 딸이 바로 정도전의 외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도전의 출생 배경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단양 지방의 거족(巨族)이던 우현보의 집안에서는 이 사실을 굳게 믿었고, 이 때문에 정도전은 뒤에 대간(臺諫)의 고신(告身)을 얻지 못하여 출세에 큰 지장을 받게 되었다.

정도전이 고려의 구가 세신(舊家世臣)들과 정치적 갈등을 가졌을 때 구신들로부터 가계(家系)가 바르지 못하고 불분명하며 미천하다는 험구를 여러 차례 듣고, 또 특히 우현보 일족과는 가장 심각한 구원(仇怨) 관계를 갖게 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한영우, 국역(國譯) 『삼봉집』, ‘해제(解題)’

그런데 한영우 교수가 당시 정도전의 호 삼봉이 단양의 ‘도담삼봉’에서 유래되었다고 쓰면서 근거로 삼은 자료가 과연 신뢰할 만한 자료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자 나까무라 히데다까(中村榮孝)가 단양군을 직접 탐방해 그곳의 주민인 오재성(吳在星)이라는 사람에게 들은 내용을 채록한 구전자료이고, 다른 하나는 정도전과 심각한 원수 관계를 맺은 단양우씨(丹陽禹氏) 집안에 내려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영우 교수는 1999년 10월11일 출간한 『왕도의 설계자 정도전』(지식산업사, P22∼23에서 인용)에서는 앞선 책과는 다르게 정도전의 출생은 물론이고 이름과 호에 관련된 구전 설화나 이야기가 과장되었거나 혹은 진실과 거짓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견해를 내보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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