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글씨에는 각각의 경지와 길이 있다”
상태바
“그림과 글씨에는 각각의 경지와 길이 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9.30 0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⑧ 소품(小品)의 미학⑩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⑧ 소품(小品)의 미학⑩

[한정주=역사평론가] 조희룡의 소품문은 때로는 유희(遊戱) 삼아 감흥이 이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짓는 것 같다가 때로는 그림을 그리는 듯 세밀한 것 같고, 때로는 한 편의 잠언을 짓는 듯 심오한 것 같으며, 때로는 그림과 서예와 문장에 두루 통달한 듯 고상하기 짝이 없다.

“그림에 제사(題辭)가 없을 수 없는 것은 매화요 난이요 돌이요 대나무다. 나는 때때로 먹을 가지고 유희할 때마다 한 마디 말을 쓰곤 했다. 이 작은 화제(畵題)를 빌어 읊조리고 휘파람 부는 뜻을 부치는 것이요, 감히 문자로서 유희를 삼는다고 말함이 아니다. 이는 동파공이 잘했던 것이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서문(序文)

“홍라화상(紅螺和尙)이 여울에서 낚시를 할 때 가끔 붉은 새우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 낚아 올리는 것이 모두 유희였다. 나는 때로 벼루에 임하여 연지로 꽃을 그려내면서 스스로 유희로 삼았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두 해 동안 개구리와 물고기만 있는 고장에서 문을 닫고 그림을 그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간혹 문 밖으로 흘러나간 이 내 그림이 있어도 그것들을 내버려 두었다. 이로부터 고기잡이하는 늙은이나 소먹이는 아이도 매화그림과 난초그림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를 지은 적이 있다. ‘이로부터 고기잡이가 매화그림을 얘기하니 / 스스로 웃노라, 이 황무지에 하나의 유희가 개시하게 된 것을.’” 조희룡, 『화구암난묵』

“강설재(絳雪齋)에서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대룡(大龍)과 소룡(小龍)이 연지(硏池)에서 일어나 푸른 산호를 다투어 움켜쥐며 붉은 여의주를 토해내고 있었다. 어리석은 꿈에 황홀히 빠져 있다가 깜짝 놀라 깨어보니 크고 작은 홍매화가 작은 방안에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붉은 폭염이 사람을 괴롭혀 땀이 간장처럼 흘러내리면 곧장 물과 구름이 깊숙한 곳으로 향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에 종이를 펼쳐 놓고 붓을 놀려 난 하나를 얻었다. 텅 빈 널찍한 데에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오백 칸처럼 느껴진다. 혼자서 향유하기가 겸연쩍어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했으면 한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오래된 서화를 볼 적에 그 조예(造詣)가 어떠한지를 먼저 볼 것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논할 필요는 없다. 진안(眞贋) 두 글자는 사람의 안력(眼力)을 얇게 한다. 내가 그것을 물리쳐 없애려고 하는 바이다.” 조희룡, 『석우망년록』

“고(古)에 있지 않으며 금(今)에 있지 않고 심향(心香) 한 가닥이 ‘고’도 아니고 ‘금’도 아닌 사이에서 나와 저절로 ‘고’가 되고 저절로 ‘금’이 된다. 우연히 이 말을 하게 된 것인데 모르는 사이에 알고 있던 것, 지니고 있던 것 같다. 우습도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성난 기운으로 대를 그리고 기쁜 기운으로 난을 그린다’고 한다. 이는 영롱하고도 투명한 말이다. 그러나 ‘기쁨과 웃음, 노여움과 꾸짖음이 모두 문장이 된다’라는 말보다는 끝내 못한 것이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그림과 글씨에는 각각의 경지와 길이 있다. 글씨는 생경한 것도 좋으나 그림은 익숙함이 아니면 안 된다. 글씨는 모름지기 익숙함 밖에 생경함이 있어야 하고 그림은 익숙함 밖에 또 익숙함이 있어야 한다.’ 이 뜻은 고인에게서 얻은 것으로 감히 스스로 사사로이 가질 수 없어 세상의 글씨와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두루 알리노니 속으로 이를 금과옥조로 삼기를 기대한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매화를 그리는 일은 마치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것 같고 난초를 그리는 일은 『유마경』을 읽는 것 같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소동파가 대나무 그리는 것을 논하여 ‘가슴속에 대나무가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을 나는 일찍이 의심하였다. 가슴속에 비록 대나무가 이루어져 있더라도 손이 혹 거기에 응하지 못하면 어찌하겠는가? 나는 생각하기로 가슴속에도 있지 않고, 손에도 있지 않으며, 천예(天倪)에 맡길 따름이라고 여긴다. 그 신리(神理)가 이르른 곳에 스스로 그것이 그렇게 된 까닭을 모른다. ‘산은 높아 달이 작다’라는 것과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라는 것을 시험 삼아 소동파에게 묻는다. 이것들은 가슴속에서 얻어지는 것인가, 손에서 얻어지는 것인가? 망령되이 한 마디 말을 하여 천추(千秋)의 일소(一笑)를 자아내게 한다.” 조희룡, 『화구암난묵』(조희룡 지음, 한영규 옮김,《매화 삼매경》, 태학사, 2003. 인용)

이제 글이란 구태여 길게 쓰려고 하지 않아도 좋고 간결한 묘사와 절제된 표현으로도 자신의 감성과 마음을 훌륭하게 글 속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글이 갖추어야 할 형식과 내용, 구성과 분량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글쓰기는 ‘소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필자는 심지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버린 조선 지식인(선비)의 글쓰기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모습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소품문’이 아닐까 싶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소품문’을 통한 글쓰기가 갖고 있는 자유분방하고 개성미 넘치는 매력이-그 깊이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