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상보론(本末相補論)…“상공업 발전시켜 농업 보완해야 나라와 백성이 부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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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상보론(本末相補論)…“상공업 발전시켜 농업 보완해야 나라와 백성이 부유해진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0.05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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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사대부출신 대상인(大商人)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③
▲ 충남 아산시 영인면의 토정 이지함 동상.

[조선의 경제학자들] 사대부출신 대상인(大商人)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③

[한정주=역사평론가] 조선은 개국 때부터 농업을 근본으로 하고 상공업을 말업(末業)으로 하는 경제 정책을 국시(國是)로 삼았다.

이때 국가의 근본이 되는 농업 경제 시스템은 토지의 국가 소유, 즉 국유제를 원칙으로 하되 수조권(收租權: 경작한 곡물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공전(公田)과 사전(私田)으로 나누어지는 과전법(科田法)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상공업은 공무역(公貿易)과 관영 수공업을 통해 통제되면서 민간의 자유로운 상공업 활동을 억제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와서는 과전법 체제가 붕괴하고 지주-소작인 관계와 대농장 경영이 크게 확산되면서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동이 시작되었다. 즉 자영 농민층과 일부 중소 양반 계층이 몰락한 반면 양반 관료와 대지주 등은 막대한 부(富)를 집적하게 되고 농민층의 분해로 인해 토지에서 탈락한 계층의 출현과 부의 집중에 따른 사치 풍조가 만연하면서 민간에서 상공업이 발달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민간에서 광산을 개발하고, 또 사무역(私貿易)과 지방 장시들이 출현해 크게 활기를 띤 것도 이 시대 사회현상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때문에 ‘전국의 백성 가운데 9할이 말업을 좇고 1할이 본업(本業: 농업)을 행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당시 조정 관료와 유학자들은 이러한 사회·경제의 급격한 변화가 농본말상(農本末商)의 경제 시스템과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질서를 붕괴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상공업을 억제하는 것을 국가 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즉 상공업이 발달하면 농민들이 토지를 이탈해 나라 경제가 황폐화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거나 사치 풍조가 만연해 사회 기강을 크게 무너뜨릴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지함은 이러한 당시의 주류적인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농업(토지)이 아닌 상공업과 어업이나 광업에서 나오는 재물 또한 나라와 백성에게 이로움을 주고 부유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본업과 말업의 어느 한쪽도 폐지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말업으로 본업을 보완해야 한다’는 이른바 ‘본말상보론’을 주창했다.

“대개 덕(德)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근본이라고 할 수 있고 재물은 말단 지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과 지엽은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습니다. 근본으로 지엽을 견제하고 또한 지엽으로 근본을 보충한 다음에야 사람의 도리가 궁색하지 않는 법입니다. 재물을 생산하는 일에도 근본과 말단이 있습니다. 농업이 근본이라면 소금을 굽거나 철을 주조하는 일은 말단입니다. 그래서 근본인 농업으로 말업인 상공업을 통제하고 말업인 상공업으로 근본인 농업을 보충한 다음에야 온갖 재용(財用)이 궁핍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지함, 『토정집』 ‘포천 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올린 상소문’

이지함은 자신의 경세지학, 즉 부국안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국부(國富)의 창출과 확대가 필수불가결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새로운 국부를 창출하고 확대하는 데 있어서 ‘농본말상’의 경제 체제와 ‘사농공상’의 사회 질서는 근본적인 장애가 되었다.

오히려 상공업을 억제하고 상인과 수공업 장인을 천시하는 풍조 탓에 나라 전체와 백성의 삶이 가난과 곤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이지함이 이러한 사회·경제적 난제(難題)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내놓은 경제 시책이 바로 ‘상공업을 발전시켜 농업을 보완해야 나라와 백성이 부유해진다’는 본말상보론이다.

여기에서 이지함은 상공업은 물론 어업, 광업 등을 활성화시켜 육지·바다·산·강의 전 국토에서 새로운 재용(財用)을 개발하고 새로운 국부를 창출해 부국안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국안민에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경제적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또한 앞서 소개한 ‘포천 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올린 상소문’에서 이지함은 자신의 새로운 국부 창출 구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전라도 만경현에 양초도(洋草島)라는 섬이 있습니다. 나라와 개인이 소유하지 않은 섬이므로, 이 섬을 임시로 포천현에 소속시켜 고기를 잡아 팔아서 곡식을 사들인다면 몇 년 안에 수천 섬의 곡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황해도 풍천부 근방의 초도(椒島)에 염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섬 역시 나라와 개인이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이 섬을 임시로 포천현에 소속시켜 소금을 구워 팔아 곡식을 사들인다면 몇 년 안에 수천 섬의 곡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지함, 『토정집』 ‘포천 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올린 상소문’

어업과 염업을 개발하고 또한 상업 활동에 나서 백성들의 가난과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는 곡식을 마련하겠다는 이지함의 뜻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이렇듯 이지함은 일찍이 몸소 상업 활동에 뛰어들어 큰 재물을 모은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의 경제 철학을 구체적인 경제 정책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도 탁월한 혜안을 보여 주었다.

본말상보론을 통해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할 명분과 기본 원칙을 세운 이지함은 또한 국부를 축적하기 위해 나라와 임금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세 가지 경제 정책, 즉 자원 경영·인재 경영·공동체 경영을 주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삼대부고론(三大府庫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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