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떠받치던 계층은 어떻게 등을 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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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떠받치던 계층은 어떻게 등을 돌리는가?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6.10.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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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와 20세기 경제학의 쌍두마차 요제프 슘페터의 인문교양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케인즈와 20세기 경제학의 쌍두마차 요제프 슘페터의 인문교양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고등교육이 일반화되면서 잠재적인 지식인 계층이 쏟아지고 있다. 그들은 졸업 후 양질의 직업을 갖지 못하면서도 육체노동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정신구조를 갖는다.

사회에 대해서는 불만스러운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고 불만은 적개심을 낳는다. 지식인 집단은 자신의 비판을 사회비판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들이 취업을 못하는 것은 능력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부적절한 교육 탓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자리에 취직하겠다는 지원자가 10여명 몰렸는데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자격을 갖추었지만 실제로는 그 일을 만족스럽게 해낼만한 인력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취업을 했다 하더라도 정작 실제적인 업무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실무 경험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실제 업무의 1차적 지식이 결핍돼 있으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자기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케인즈와 함께 20세기 경제학의 쌍두마차로 평가받는 요제프 알로이스 슘페터가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북길드)에서 묘사하는 자본주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무엇보다 자본주의를 떠받치던 계층이 어떻게 등을 돌리고 붕괴되는지, 자본주의에 대해 우호적이던 사회 분위기가 어떻게 적대적으로 돌아서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슘페터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성공을 견인했던 여러 요인들이 오히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를 쇠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결국에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받아들이든 혹은 거부하든 그것과는 무관하게 그 중요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공은 공으로, 과는 과대로 명확하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마르크스를 예언자이자 역사의 의미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치켜세우면서도 그의 노동 가치론이나 잉여가치, 노동력 착취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논거가 부족하고 너무 단순해 현실을 왜곡한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대척점에 서 있던 다른 사상가들을 긍정하고 옹호한 것 아니었다. 아담 스미스를 비롯해 고전 경제학자들은 완전 경쟁을 이상적인 상태로 생각했으며 대중들에게 강력한 독점 혐오증을 불러일으켰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완전 경쟁이 아주 예외적인 사항임을 꿰뚫어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흡사 독점이 모든 악의 근원인 양 치부해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 독점 기업이 되려는 전략은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 결코 아니며 때로 기술 혁신과 총 생산량의 장기적 증대에서 가장 강력한 엔진으로 작용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더 나아가 슘페터 자신과 함께 20세기 경제학의 쌍두마차로 평가받는 케인즈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평가 절하한다. 무엇보다 생산과 고용이 비례적으로 변화한다는 케이즈 체계의 근본적 특징을 비판하며 일정한 한도 내에서는 생산을 줄이지 않고 고용을 줄이거나 생산을 증대하지 않고 고용을 늘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런 이론적 한계에 봉착하는 것은 케인즈 체제가 단기적 인과 관계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케인즈가 제안한 높은 임금률은 생산과 고용에 나쁜 영향을 미치며, 특히 고용에 더 큰 피해를 입힐 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저자는 어떤 특정한 결론보다는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사상들의 진행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슘페터는 재판서문에서 “지금의 시대처럼 불길한 사실을 솔직하게 제시해야 하는 때도 없었다”면서 “낙관론이 곧 배신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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