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과 수레를 이용한 유통 경제’…중국의 부유함과 조선의 가난함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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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과 수레를 이용한 유통 경제’…중국의 부유함과 조선의 가난함의 차이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1.09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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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북학과 중상주의 경제학의 리더 박지원(朴趾源)④
▲ 북송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박지원이 청나라 연행 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풍경 중 하나는 바로 ‘선박과 수레의 활발한 이용’이었다.

[조선의 경제학자들] 북학과 중상주의 경제학의 리더 박지원(朴趾源)④

[한정주=역사평론가] ‘상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유통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북학파 그룹’을 조선 후기 중상주의 경제학파의 산실로 여기는 까닭은 그들이 누구보다 ‘상업의 자유와 상공업의 진흥’을 앞장서서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경제 개혁의 전략을 토지개혁에 둔 앞선 시대의 경제학자들, 곧 반계 유형원이나 성호 이익과 이들 ‘북학파 그룹’이 갈라서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박지원은 중상주의 경제학파의 리더답게 ‘상업의 자유’를 철저하게 옹호하고 선박과 수레의 적극적인 이용을 통한 유통경제의 활성화를 주장했다.

“옛 사람이 시장의 흐름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상인은 싸게 물건을 취해 비싸게 팔게 마련이며 나라와 백성의 살림살이는 상인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장사해 이익이 남지 않는다면 상인은 장차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들이 어찌 물건값을 내려 팔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럼에도 지금 이 명령(곡물가격의 억제와 매점매석의 금지)을 시행하려고 한다면 서울의 상인들은 장차 곡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또한 매점매석을 막는다면 서울로 오는 전국 각지의 곡물 상인들이 그 사실을 전해 듣고는 반드시 다시는 경강(京江: 한강 일대)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한양의 식량 형편은 더욱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박지원, 『과정록』 중에서

박지원의 이 말은 시중의 곡물 가격을 억제하려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의견으로 제출한 것인데, 여기에서 그는 조정의 지나친 시장 개입은 자칫 ‘상업 활동의 자유’를 해쳐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조차 마비시킬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상인은 관청에서 조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조정하면 물건값이 묶이고, 물건값이 묶이면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되면 상업 거래가 마비되는 폐단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농민과 수공업자가 모두 곤란을 겪고 궁색해지며 백성들은 생계수단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상인들이 값이 싼 곳에서 물건을 사다가 비싼 곳에다 파는 상업 활동은 진실로 풍족한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곳에다 더해주는 이치와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물밑의 가벼운 모래가 출렁거리는 물결에 따라 고르게 퍼져 솟아 나오지도 않고 움푹 패지도 않게 되는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박지원, 『과정록』 중에서

박지원은 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백성의 생활이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업 활동의 자유’와 ‘유통경제의 활성화’가 시급한 과제라고 보았다. 그가 조정의 지나친 시장 개입을 깊이 우려한 까닭 역시 상업 활동을 통제하는 조치가 유통경제를 심각하게 위축시켜 산업 전반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정조 시절 화원화가 이인문(李寅文)이 국왕의 비전을 담아 그린 산수화 ‘강산무진도’. 박지원은 『허생전』에서 일본과의 해외통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물의 이로움을 보여주었는데, 이 경우 가장 중요한 문제 역시 선박을 이용한 자유로운 해외무역이었다.

박지원이 상업 활동의 자유와 유통경제의 활성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에 관해서는 ‘선박과 수레의 이용’에 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박지원이 청나라 연행 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풍경 중 하나는 바로 ‘선박과 수레의 활발한 이용’이었다. 심지어 그는 중국의 부유함과 조선의 가난함의 차이가 ‘선박과 수레를 이용한 유통 경제’에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박지원은 선박과 수레는 어떠한 멀고 험준한 곳이라고 이를 수 있다고 하면서 선박과 수레가 다니다 보면 교통로와 상업 활동이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라의 물자는 풍부해지고 백성의 생활은 윤택해진다고 했다.

일상의 경제생활에서는 서로 필요한 물자를 바꾸어 사용해야 하는데 이 지방에서 흔한 물건이 저 지방에서는 귀한 까닭은 선박과 수레를 이용한 교통 및 유통경제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나라 경제나 백성의 생활은 궁색함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서로 바꿔 사용해야 하는데 지금 이곳에서 흔한 물건이 저곳에서는 희귀해 그 이름을 들어도 실제 보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것은 오로지 물건을 멀리 운반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사방이 겨우 몇 천 리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처럼 가난한 까닭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수레가 국내에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럼 ‘수레는 어째서 다니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이것은 오로지 사대부의 잘못일 뿐이다.” 박지원, 『열하일기』 ‘수레에 관한 제도(車制)’ 중에서

“우리 조선은 배가 외국과 통하지 못하고 수레가 국내에 두루 다니지 못하는 까닭으로 온갖 재물이 이 안에서 생겨서 이 안에서 사라져 버리곤 한다.” 박지원, 『열하일기』 ‘허생전’ 중에서

이렇듯 박지원은 ‘선박과 수레를 이용한 유통경제의 활성화’가 나라 경제와 백성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바람직한 경제 정책이라고 보았다.

특히 박지원은 『허생전』에서 일본과의 해외통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물의 이로움을 보여주었는데, 이 경우 가장 중요한 문제 역시 선박을 이용한 자유로운 해외무역이었다.

그는 상업 활동이 자유롭게 허용되고 또한 선박과 수레를 이용한 재화의 유통이 활성화하면 자연스럽게 국내의 농업과 공업의 발달은 물론 해외통상의 길도 뚫릴 수 있다고 본 듯하다. 물자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해지고 나라와 백성들의 물품 수요 욕구가 넘쳐나다 보면 해외무역은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지원은 상업 활동과 유통경제의 발달이 국내 산업은 물론 해외통상의 발전을 가져와 나라 경제를 풍요롭게 한다고 확신한 만큼 ‘상업과 상인’을 대단히 중시했다.

박지원의 ‘중상주의(重商主義)는 이렇듯 “조선의 백성 가운데 비록 상인이 가장 천한 직업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온갖 재화가 유통될 수 없다. 이것이 상업을 폐지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재물이 백성들에게 축적된 다음에야 비로소 국가 재정이 풍족해진다”는 생각에 깊게 뿌리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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