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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마음을 움직이고 개화파로 재탄생한 박지원의 경제사상[조선의 경제학자들] 북학과 중상주의 경제학의 리더 박지원(朴趾源)⑥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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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3  07: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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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의 ‘농업 및 토지 개혁론’에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정조대왕(왼쪽)과 박지원의 친손자로 가풍을 이어받아 일찍부터 통상개화(通商開化)를 통한 조선의 부국강병에 큰 뜻을 두었던 박규수.

[조선의 경제학자들] 북학과 중상주의 경제학의 리더 박지원(朴趾源)⑥

[한정주=역사평론가] 박지원의 한전론은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하여 대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한편 토지를 농민들에게 재분배함으로써 자영농민을 적극 육성하는 경제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전론의 시행으로 자영농이 증가하면 나라의 세원(稅源)을 튼튼하게 해 국가 재정을 풍요롭게 하고 또한 백성들에게는 생활 기반을 제공해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박지원은 이렇듯 일찍부터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한번 시행할 만 하다고 여긴 ‘농업 및 토지 개혁론’을 『과농소초』와 『한민명전의』를 통해 밝혔는데, 이 글들은 당시 정조대왕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임금님(정조대왕)께서 어느 날 신하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최근에 세상을 다스리는 경륜을 펼친 좋은 책(『과농소초』)을 하나 얻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농서대전(農書大全)은 박지원으로 하여금 편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 하셨다. 그 후 임금님은 규장각의 여러 신하들에게도 아버지의 책에 대해 여러 번에 걸쳐 칭찬하셨다.” 박종채, 『과정록』 중에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다음해(1800년) 정조대왕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고 정치적 혼란이 찾아오자 박지원은 건강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재동 자택에서 은둔하다시피 생활하다가 1805년 10월20일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박지원은 ‘북학과 중상주의 경제학파 그룹’의 학자들을 이끈 리더이자 사상적 스승이었기 때문에 그의 경제사상을 계승한 직전(直前) 제자들은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제(師弟) 관계이면서 동시에 학문과 사상을 공유한 동지 관계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북학의 큰 뜻과 중상주의 경제학을 함께 갈고 다듬었다고 평가해야 한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박지원보다 앞서 혹은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경제사상을 이어서 세상에 뜻을 펼쳤다고 보기에는 힘들 듯 하다. 따라서 박지원 경제사상을 계승한 제자들은 더 후대로 내려가 찾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19세기 근대 개화사상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박규수(朴珪壽)다. 박규수는 앞서 소개한 『과정록』을 저술한 박종채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는 박지원의 친손자이기도 하다.

박규수는 가풍을 이어받아 일찍부터 통상개화(通商開化)를 통한 조선의 부국강병에 큰 뜻을 두었다. 특히 조선이 스스로의 힘으로 개국할 것을 거듭 주장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에서 물러난 후 김옥균·홍영식·서광범 등 젊은 개화사상가들을 모아 친히 가르쳤는데, 당시 박규수는 ‘박지원의 『연암집』’을 강의하면서 서양의 과학기술과 통상개화 및 부국강병의 뜻을 가르쳤다고 한다.

훗날 박영효가 갑신정변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그 신사상(新思想: 개화사상)은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나왔소.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그리고 나의 형(박영교)이 박규수의 사랑방에 모였지요”라고 말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자주적인 근대화를 꿈꾼 개화파의 사상은 『연암집』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박지원의 사회경제사상은 이렇듯 자신의 친손자인 박규수의 손을 거쳐서 김옥균, 홍영식 등 개화파 사상가들에 이르러 조선의 자주적인 근대화와 국운(國運)을 좌지우지한 거대 사상으로 재탄생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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