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농담 속에 철학을 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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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농담 속에 철학을 담아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2.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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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①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①

[한정주=역사평론가] 해학(諧謔)과 풍자(諷刺)는 웃음과 농담 속에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듯하지만 실제 그 뜻과 의미를 살펴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먼저 한자(漢字)를 해독하는 방법을 통해 ‘같은 듯 다른’ 양자의 미학을 살펴보자.

해학은 ‘농담할 해(諧)’와 ‘희롱할 학(謔)’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담·익살·희롱·우스갯소리·농지거리 등의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익살스러운 농담과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뜻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해학의 미학이다.

고려와 조선의 명문장만을 가려 뽑고 모아 엮은 『동문선』에는 이러한 해학의 뜻에 가까운 양촌 권근의 글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근은 ‘대머리’를 뜻하는 ‘동두(童頭)’를 자신의 호로 삼았던 김진양이라는 사람에게-자신도 얼굴이 검다고 해서 ‘작은 까마귀’라는 뜻의 ‘소오자(小烏子)’라고 한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면서-아주 해학적인 글을 지어 주었다.

평생 다른 사람에게 놀림감이요 자신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용모에 얽힌 사연을 크게 한 번 웃고 넘어가는 이야기쯤으로 다룰 줄 알았던 옛 사람의 해학 속 ‘긍정의 철학’이 돋보이는 희작(戱作)이다.

“계림(鷄林: 경주)에 사는 김진양이 땅을 사고 집을 지어 띠 풀로 지붕을 잇고서 동두(童頭: 대머리)라고 자호(自號)하였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나는 얼굴이 번들거리고 머리숱이 본래부터 적었다. 내 비록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진실로 술이 있으면 진하거나 묽거나 맑거나 탁하거나를 따져 묻지 않고 사양하지 않았다.

술에 취하면 갓을 벗고 머리를 드러내는 버릇이 있는데 내 머리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동두(童頭)라고 불렀다. 이러한 까닭에 내가 그렇게 호를 삼은 것이다. 무릇 호로 부르는 것은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동두(童頭)이다. 따라서 나를 동두(童頭)라고 부르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사람들이 나의 모습 그대로 부르고, 나 또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옛적에 공자가 태어날 때부터 이마가 움푹 들어가서 이에 명(名)과 자(字)를 지었다고 하였다. 자신의 생긴 모습 그대로 거기에 맞게 부른 것이다. 곱사등이의 모습을 한 사람이 낙타(駱駝)라고 부른 것이 그렇다. 옛 성현(聖賢) 역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호를 삼은 것이 또한 많다. 내 어찌 홀로 사양하고 마다하겠는가. 더욱이 속담에 ‘동두(童頭)인 사람치고 걸식(乞食)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였다. 어찌 복(福)의 징조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또한 사람은 늙으면 반드시 동두(童頭)가 되니 이 역시 어찌 장수(長壽)의 징조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내가 가난으로 걸식하지 않고 오래도록 살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다면 곧 동두(童頭)가 내게 덕(德)을 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군들 부귀(富貴)와 장수(長壽)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 날카로운 이빨을 준 자에게는 굳센 뿔을 주지 않았고 날개를 달고 있는 자에게는 네 다리를 주지 않았다. 사람에게도 역시 그렇게 했으니 부귀와 장수를 겸비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

부귀하지만 그것을 보전(保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내가 또한 많이 보았는데 어찌 부귀를 바라겠는가. 초가집이 있어서 내 몸을 가릴 수 있고 거친 음식이지만 나의 배고픔을 채워준다. 이렇게 살면서 나의 타고난 수명을 다할 따름이다.

사람들이 나를 동두(童頭)라 부르고 나 역시 동두(童頭)라 자칭하고 다니니 이것은 내가 동두(童頭)인 것을 즐겁게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그의 말을 듣고 ‘맞다. 그대의 생각이 나와 같다. 나 역시 안색(顔色)이 검어서 사람들이 소오(小烏: 작은 까마귀)라 지목했는데 일찍이 이러한 별호를 받아들인 적이 있다. 동두(童頭)와 소오(小烏)는 겉모습을 그렇게 꾸민 것은 아니지만 또한 외모로 말미암아 지목당한 것이다. 만약 그 내면적인 인격에 대해 말한다면 내가 어떻게 수양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악단(渥丹)과 같이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속마음은 늑대와 같이 악랄한 자가 있으니 어찌 용모를 가지고 그 진실함과 사악함의 여부를 단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김진양은 웅대하고 박식한 학문과 민첩한 재능을 갖추고 조정에서 벼슬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대간(臺諫)의 요직을 역임하고 시종(侍從)의 관직에도 오랫동안 머물렀다. 이에 빛나는 명성을 크게 떨쳐 사람들의 기대가 모두 원대(遠大)했으나 그 마음이 겸손하고 또 겸손하여 부귀를 좋아하지 않고 장차 초가집에서 몸을 마칠 생각을 하였다. 이에 그가 평생 수양한 것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이른바 ‘내가 흠을 잡아 비난할 것이 없다’는 말은 바로 이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창룡(蒼龍) 임자년(壬子年) 가을 8월 12일 소오자(小烏子)가 쓰다.” 권근, 『동문선』, ‘동두설김진양자호(童頭說金震陽自號)’

여기에는 누구를 조롱하거나 혹은 비판하는 날카로움이 없다. 단지 자신의 치부(恥部)나 단점조차 웃어넘길 줄 알았던 옛 사람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철학이 남아 전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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