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둘도 없는 귀한 족속으로 우리 족속만 한 것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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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둘도 없는 귀한 족속으로 우리 족속만 한 것이 없구나’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2.30 07: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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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③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③

[한정주=역사평론가] ‘같은 듯 다른’ 해학과 풍자의 속뜻을 알았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조선 지식인들의 해학과 풍자 정신을 찾아가 보자.

먼저 조선 지식인들의 글에 등장하는 해학과 풍자의 미학을 크게 나누어 보면 세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하나가 ‘야담(野談)’이고 다른 하나가 ‘전기(傳記)’이며 또 다른 하나는 ‘우언(寓言)과 우화(寓話)’이다.

먼저 ‘야담(野談)’의 형식과 방법을 선택해 해학과 풍자의 미학을 펼쳤던 대표적인 조선의 문인은 ‘어우당(於于堂)’이라는 재미난 자호(自號)를 갖고 있는 선조와 광해군 연간의 문사 유몽인이다.

유몽인의 자호에 담긴 뜻만 살펴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해학과 풍자 정신에 투철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호의 출처는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의 ‘어우이개중(於于以蓋衆)’으로 ‘쓸데없는 소리로 뭇 사람들을 현혹케 한다’는 뜻이다.

어떤 이름 없는 늙은 농부가 “공자는 박학(博學)한 것으로 자신을 성인(聖人)에 비교하고 쓸데없는 소리로 뭇 사람들을 현혹케 하고 홀로 서글픈 노래를 연주하며 천하에 명성을 판 사람이 아닌가?(子非夫博學以擬聖, 於于以蓋衆, 獨弦哀歌, 以賣名聲於天下者乎)”라고 조롱한 대목 중에 나오는 말이다.

유학이나 성리학의 관념과 인습에 개의치 않는 자유분방한 사고와 비판의식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감히 생각도 해 볼 수 없는 희학(戱謔)적인 자호라고 하겠다.

유몽인이 ‘어우당’이라는 다분히 해학적인 호를 빌어 제목 붙인 『어우야담(於于野談)』은 민간에 전해오거나 떠도는 이야기를 채집해 엮은 것으로 ‘야담(野談)’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책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양반 사대부 출신의 지식인과 문인들은 소품문조차 문장의 전범이나 성리학의 규범에서 벗어났다고 여겨 기피하거나 배척했다.

그런데 미천(微賤)한 계층이나 아녀자 혹은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나 즐겨 떠드는 이야기들을 애써 모으고 엮어 책으로 남긴다는 것은 웬만한 정신과 철학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유몽인은 『어우야담』 속에서 우스갯소리와 이야기를 빌어 자신의 해학과 풍자 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먼저 재물과 권세 있는 양반 사대부라면 꿈속에서조차 갈망했던 국혼(國婚: 왕실과의 혼인)을 동물 중에서도 천하고 더러운 두더지의 혼인에 빗대어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야담 한 편을 읽어보자.

“예로부터 국혼(國婚)으로 인해 화가 미친 일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이는 두더지가 자기 무리와 혼인하는 것보다 못한 일이니 무슨 말인가?

옛적에 한 두더지가 새끼를 낳아 매우 아꼈는데 장차 혼처를 구하고자 하였다. 아비 두더지는 어미 두더지와 상의하여 말했다. ‘내가 이 아들을 낳아 사랑하고 중히 여긴 것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둘도 없는 족속을 택하여 혼인을 시켜야겠소. 둘도 없는 귀한 족속은 하늘만한 것이 없을지니 내 마땅히 하늘과 혼인해야겠소.’

그래서 하늘에게 말했다. ‘내가 아들 하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웠으니 반드시 둘도 없는 귀한 족속과 혼인시켜야겠는데 생각해보니 둘도 없는 귀한 족속은 하늘만 한 것이 없습니다. 당신과 혼인하기를 청합니다.’

하늘이 말했다. ‘나는 능히 대지를 덮어 감싸며 만물을 낳고 모든 생물을 자라게 할 수 있으니 나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그렇지만 오직 구름만이 능히 나를 가릴 수 있으니 내가 구름만 못하다.’

두더지는 구름에게 가서 말했다. ‘내가 아들 하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웠으니 반드시 둘도 없는 귀한 족속과 혼인시켜야겠는데 생각해 보니 둘도 없는 귀한 족속은 당신만 한 이가 없습니다. 당신과 혼인하기를 청합니다.’

구름이 말했다. ‘나는 능히 천지에 가득 차 있으며 해와 달을 덮어 가리어 산하를 어둡게 하고 만물을 컴컴하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직 바람만이 능히 나를 흩어 버릴 수 있으니 내가 바람만 못하다.’

두더지는 바람에게 가서 말했다. ‘내가 아들 하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웠으니 반드시 둘도 없는 귀한 족속과 혼인시켜야겠는데 생각해 보니 둘도 없는 귀한 족속은 당신만 한 이가 없습니다. 당신과 혼인하기를 청합니다.’

바람이 말했다. ‘나는 능히 큰 나무를 꺾고 큰 집을 날릴 수 있으며 산과 바다를 마구 흔들어대며 가는 곳마다 휩쓸어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오직 과천(果川) 교외의 돌미륵만은 쓰러뜨릴 수 없으니 내가 과천의 돌미륵만 못하다.’

두더지는 과천 돌미륵에게 가서 말했다. ‘내가 아들 하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웠으니 반드시 둘도 없는 귀한 족속과 혼인시켜야겠는데 생각해 보니 둘도 없는 귀한 족속은 당신만 한 이가 없습니다. 당신과 혼인하기를 청합니다.’

돌미륵이 말했다. ‘나는 능히 들판 가운데 우뚝 서서 천백 년이 지나도 꿋꿋이 뽑히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오직 두더지가 내 발 밑의 흙을 파내면 나는 엎어지게 되니 내가 두더지만 못하다.’

이에 두더지는 매우 놀라 자신을 되돌아보며 탄식하였다. ‘천하에 둘도 없는 귀한 족속으로 우리 족속만 한 것이 없구나.’ 그리고 드디어 두더지와 혼인시켰다.

대저 사람은 분수를 알지 못하고 감히 국혼(國婚)을 하여 사치스러움을 마음껏 누리려 하다가 끝내 남에게 재앙을 미치게 하는 자는 바로 두더지만도 못한 것이리라.” 유몽인,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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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az2wsx 2016-12-30 18: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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