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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 실학사상가에서 근대 개화사상의 개척자로의 변모[조선의 경제학자들] 근대 개화파 경제학의 효시…환재(桓齋) 박규수(朴珪壽)②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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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1  07: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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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규수가 만든 평혼의.

[조선의 경제학자들] 근대 개화파 경제학의 효시…환재(桓齋) 박규수(朴珪壽)②

[한정주=역사평론가] 박지원과 북학파의 ‘실학과 이용후생’이 박규수의 삶과 사상에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박규수가 홍대용의 손자인 홍양후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보여준 경제(經濟)와 이용후생의 방안은 양 가문의 선덕(先德: 박지원과 홍대용)께서 평생토록 힘써 노력해 마련한 것들입니다. 일찍부터 한두 가지라도 시도해 보았다면 어찌 좋은 결과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천한 관습과 풍속 탓에 끝내 이 방안들을 본받아 좇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사용도 하지 못하고 그치고 말았습니다. 조정에서 국가의 사업과 정책을 도모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 방안들을 실천하는 일을 시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매년 사신의 행차에서도 다른 일만 급급하게 여기는 바람에 마침내 뜻이 여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예전부터 이처럼 해왔는데 지금 누가 이러한 어리석음을 바꾸고 고쳐 그 길을 개척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일찍부터 항상 이러한 일을 안타깝게 여겨 탄식했고 몸소 이 방안들을 실천해 우리나라를 옛날 중국의 발전된 노(魯)나라와 같이 변개(變改)시키고 싶었습니다.” 박규수, 『환재집』 ‘홍양후에게 답한 편지’ 중에서

북학파의 사상을 온전히 계승해 조선의 개혁과 부국강병을 이루겠다는 박규수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박규수는 1861년과 1871년 두 차례의 청나라 사행(使行)을 통해 북학파 실학사상가에서 근대 개화사상의 개척자로 변모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북학파는 ‘청나라를 배워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기치를 내세웠다. 실제 북학파 학자들이 활동한 18세기 중·후반 청나라는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에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의 북학론은 매우 정확한 국제적 안목을 갖춘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그러나 박규수가 청나라에 첫 발을 디딘 1861년 청나라는 몰락해 가는 제국(帝國)에 불과했다.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 북경이 함락당하고 황제가 열하로 몸을 피하는 상황에 이르도록 이미 청나라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있었다.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에 들어갔으니 불과 80여년 만에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국제 정세는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었던 셈이다.

이때 박규수는 청나라가 조선을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파제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서구 열강의 과학기술과 이용후생의 방법이 청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는 청나라와의 통상을 통해 선진 문물을 수입해 조선을 부국강병한 나라로 만든다는 북학파의 사상이 이미 낡아버렸고, 이제는 통상개국의 범위를 청나라뿐만 아니라 서구 열강(일본 포함)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조선이 스스로의 힘으로 서구 열강과 개국통상(開國通商)을 할 때만 자주적인 부국강병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훗날 정계에서 은퇴한 박규수가 김옥균에게 지구의를 빙글빙글 돌려 보여주면서 “오늘날 중국이 어디에 있는가. 저리로 돌리면 미국이 중국(中國)이 되고 이리로 돌리면 우리 조선이 중국(中國)이 된다. 어느 나라이건 가운데 오게 돌리면, 그곳이 중국(中國)이다. 오늘날 중국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조선이 주체적으로 국제 정세에 대처해 나가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부국강병과 부국안민을 이루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박규수의 생각은 이후 ‘자주적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주창한 근대 개화사상의 모태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렇듯 박규수는 북학파(北學派)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한 측면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실학자였던 반면 조선이 스스로의 힘으로 청나라를 넘어서 서구 열강(일본 포함)과 통상개국(通商開國)해서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창한 측면에서는 최초의 근대 개화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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