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의 말보다 광대의 조롱 속에서 진리와 이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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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의 말보다 광대의 조롱 속에서 진리와 이치를 찾는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1.30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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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⑦
▲ 김준근 풍속화 '팔탈판'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⑦

[한정주=역사평론가] 조수삼의 『추재기이』를 뒤적이다 보면 당시 한양에는 익살스러운 이야기와 해학을 직업(?) 삼아 살았던 이들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수삼은 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새겨들으면 “세상을 조롱하고 개탄하며 풍속을 깨우치는 말”이요,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면 “기예와 학문을 깨우칠 수 있고 세상을 경계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까지 적었다.

조수삼의 말은 성현(聖賢)인양 행세하며 세상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는 유학자나 사대부의 말보다는 차라리 광대의 조롱 속에서 진리와 이치를 찾는 것이 더 낫다는 말에 다름없다고 하겠다.

“이야깃주머니 김옹(金翁)은 이야기를 아주 잘해서 듣는 사람들이 다 거꾸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김옹이 이야기의 실마리를 잡아 살을 붙이고 양념을 치며 마음대로 끌어가는 재간은 참으로 귀신이 돕는 듯했다. 익살꾼 가운데 대장이라고 할 만하다.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새겨 보면 세상을 조롱하고 개탄하며 풍속을 깨우치는 말들이었다. ‘지혜가 구슬같이 둥글어 힐중에 비할 만하니 / 어면순이 골계의 으뜸일세 / 산꾀꼬리 들따오기가 서로 송사하니 / 늙은 황새 판관이 공정하게 판결하네.’” 조수삼, 『추재기이』, ‘설낭(說囊)’

“의영은 해학을 잘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남녀와 짐승이 교합(交合)하고 질투하며 희롱하는 온갖 자세와 소리에 대해 아주 똑같이 흉내 내어 못하는 것이 없다. 그는 늘 ‘천하에서 구경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고 다녔다. 만약 도안(道眼)을 가진 자가 이를 본다면 충분히 기예에 대해 깨우칠 수 있고 학문에 대해 깨우칠 수 있으며 자신을 경계하고 남도 경계할 수 있을 것이다. ‘말과 개들이 교합하는 모습을 모두 흉내 내니 / 비밀스러운 짓을 거울 속으로 엿보네 / 하늘이 만겁을 내신 게 풍류에 한스러우니 / 추파를 한 번 돌릴 사이에 달렸네.’” 조수삼, 『추재기이』, ‘의영(義榮)’

욕망에 눈이 어두워 자신들이 속는 줄조차 모른 채 정작 속인 놈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태를 여지없이 조롱한 거간꾼 ‘이중배(李仲培)’에 관한 이야기 또한 조소(嘲笑)를 머금게 한다.

“이중배는 거간꾼들의 우두머리다. 한번은 같이 다니는 젊은이 열 명에게 1000전씩 추렴하여 이렇게 약속했다. ‘오늘 밤 가까이할 만한 경국지색이 하나 있는데 1000전이면 술 마시며 함께 지낼 수 있을 걸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하고서 그들 간에는 서로 모르게 했다. 저녁이 되자 열 사람이 모두 도착해서 물처럼 반질거리는 유지창(油紙窓)에 등불이 푸르게 빛나고 고운 그림자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저 아홉 사람은 왜 와서 일을 그르치나 하고 생각했다. 이중배가 혀를 차고 욕을 하며 자꾸 드나드니까 이중배도 자기를 뺀 나머지 아홉 사람을 미워해서 그런다고 여겼다. 어느덧 닭이 울고 날이 샜다. 그들로부터 만 점을 거둬들인 이중배는 싸구려 술과 나물 안주를 갖추어 대접하고 보냈다. 열 사람은 그래도 그의 술수에 넘어간 줄 몰랐다. ‘사내 열 명이 앉아서 돌아가지 않는 것은 / 주렴 너머 꽃 같은 그림자가 잠깐 어렸기 때문이네 / 행중에서는 오히려 돈을 추렴해 / 술수에 넘어가 이중배에게 주었네.’” 조수삼, 『추재기이』, ‘이중배(李仲培)’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잠깐 동안이라도 참지 못하고 내뱉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미치광이 김씨의 아들이 어떤 여종을 범하고 술 한 잔을 훔쳐 먹고도 사방 천지에 ‘범했다’거니 ‘훔쳤다’거니 외치고 다니는 이야기를 통해 위선(僞善)을 가장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 보다 차라리 자신이 저지른 일을 말하고 다니는 미치광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세상이 유리 세계의 수정궁처럼 맑고 투명해질 것이라는 조수삼의 시구(詩句)는 풍자의 묘미를 제대로 살린 쾌작 중의 쾌작이다.

“김씨네 아들은 정신병을 앓아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잠시라도 숨기고 있지를 못했다. 만약 꾹 참고 15분만 지나면 손을 들어 올리고 발버둥을 치며 크게 노해서 빠른 소리로 ‘이러이러하다’라고 외친다. 어떤 여종을 범하고 술 한 잔을 훔쳐도 스스로 숨기지를 못하고 ‘범했다, 훔쳤다’라고 말해 사방 이웃이 모두 들었다. ‘평생 한 마디 말도 가슴에 남겨 두지 않아 / 훔쳤다 증언하고 강간했다 외치는 것이 지극히 공정하구나 / 천하 사람 모두가 이와 같다면 / 이 세상은 유리 세계의 수정궁 같을 텐데.’” 조수삼, 『추재기이』, ‘김씨자(金氏子)’

늙기 전에 이가 모두 빠져 ‘오이무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김중진(金仲眞)은 익살스러운 농담과 상스러운 말로 세태와 인정을 풍자하는 것을 잘해 유명세를 치른 인물이다.

『이향견문록』의 저자 유재건은 이 김중진이 들려주는 ‘세 선비의 소원과 옥황상제의 대화’를 끌어와서 양반사대부 계층의 감추어진 욕망과 허위로 가득한 내면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오이를 쪄서 무르게 초간장을 치고 생강, 후추 등을 섞어 놓으면 연하고 맛있어 이가 없는 노인에게 드릴만하다. 그것을 속명으로 오이무름(과농)이라 한다. 정조 때 김중진이란 사람이 늙기 전에 이가 모두 빠졌으므로 사람들이 놀리면서 ‘오이무름’이라 불렀다. 그는 익살스런 농담과 상말을 잘하였는데 그의 세태와 인정에 대한 이야기는 곡진하고 섬세한 데가 있어 종종 들을 만하였다. 그의 ‘세 선비 소원담’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선비 세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서 옥황상제에게 호소하면서 각기 그 소원을 이야기하였다. 첫째 선비가 말했다. ‘저는 이름난 가문에 태어나서 모습은 관옥 같고 오거서의 책을 독파하고 삼장에 모두 장원으로 뽑혀 맑고 깨끗한 벼슬과 요긴한 벼슬에 모두 재주가 적합하고, 절충과 보필에도 그 임무를 다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 운대나 능연각에 들어가고, 제 이름이 역사책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제 소원입니다.’

상제가 주위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쩌면 좋겠는가?’ 그러자 문창성이라는 별이 말했다. ‘그는 항상 남모르는 덕을 베풀어 남에게 미치고 있으니 이런 보답을 받아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제가 말했다. ‘소원대로 들어주어라.’

둘째 선비가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난하고 궁색한 것은 실로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떨어진 옷이 살을 가리지 못하고 술지게미와 쌀겨도 달게 먹어야 하며 아내의 울음과 아이의 울부짖음은 오히려 제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굶주림과 추위가 제 몸에 절박한 지라 항심(恒心)조차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원컨대 부자로 늙어 반드시 내 손으로 돈꿰미 수만금을 저장하고 종자 수천 명을 부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또 어버이를 섬기고 처자식을 돌보는 데 형제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관혼상제에 그 예를 다하고 가난한 친척과 곤궁한 친구를 돌봐주며 나그네와 거지의 숙식과 동냥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의 환심을 다 살 수 있다면 진실로 만족하겠습니다.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상제가 말했다. ‘어허! 슬프구나. 그 가난함이여. 지극한 소원이 이것뿐이더냐?’ 문창성이라는 별에게 명령하여 대신 판결하게 하였다. 사록이 명령을 받들고 나가 섬돌 위에 서서 말했다. ‘너는 들어라. 전생에 부를 믿고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겨서 남의 급한 처지를 생각해 주지 않았으며 술을 즐기고 여색에 빠져 은과 비단을 허비하였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서 오로지 자신의 입과 배를 위한 일을 일삼았다. 그리고 너는 정한 것을 가리고 추한 것을 싫어하며 처자를 꾸짖을 뿐만 아니라 하늘이 주신 만물을 함부로 낭비하여 아까운 줄도 모르고 지나치게 사용하여 절제가 없었도다. 이는 네가 스스로 취한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다만 너의 선대 조상들이 겸손하고 검소하며 의로운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았으므로 네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이는 너를 보아서가 아니고 네 조상들 때문이로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남은 선비 한 명이 홀로 팔짱을 꽉 끼고 뜰 구석에 서서 눈을 껌벅껌벅 멀리 바라보면서 말이 없었다. 상제가 말했다. ‘네 소원은 무엇이냐?’ 선비가 곧 얼굴빛을 가다듬고 무릎을 굽혀 향안 앞에 나아가 엎드려 헛기침을 두세 번 하고 나서 아뢰었다.

‘신의 소원은 두 사람과 다르옵니다. 신의 사람됨과 성격은 맑고 한가로운 것을 사랑하여 부귀와 공명 모두를 바라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을 등지고 물을 굽어보는 곳을 찾아서 간소하게 띳집 몇 칸을 짓고, 논 몇 이랑과 뽕나무 몇 그루를 둡니다. 하늘에는 물난리와 가뭄이 없고 땅에는 세금과 부역이 없으며 아침에 밥 저녁에 죽을 배불리 먹고 오직 겨울에 솜옷을 완전하게 입고 여름에 갈옷을 깨끗하게 입습니다. 자식들이 일을 나눠 맡아 제가 훈계하고 타이르는 일로 수고롭지 않고 노비도 부지런히 노력하여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밭 갈고 제 짜는 일을 맡습니다. 그러면 안으로 복잡한 일로 누가 되는 것이 없으며 밖으로 방문객의 번거로움이 없을 것입니다. 신은 이에 이리저리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스스로 만족하고 한가롭게 마음껏 놀면서 마음에 애써 하는 일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제 몸도 평안하고 건강하여 나이 구십이나 백 세가량 되어 병 없이 죽을 것이오니, 이것이 신의 소원입니다.’

그가 미처 말을 마치기 전에 상제는 갑자기 의자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아, 이것이 이른바 청복(淸福)이도다. 대저 청복이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것이지만 하늘에서 매우 아끼는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구하고, 구한다고 다 얻을 수 있다면 어찌 너만 구하겠느냐. 마땅히 내가 먼저 차지하여 누릴 것이지 다시 무엇 때문에 수고스러운 이 옥황상제 노릇을 하겠는가.’

이어서 말했다. ‘담론이란 것이 조금만 적중하여도 어지러운 사람의 마음을 풀어 준다. 이른바 오이무름이란 사람은 비록 당시 사람의 어지러움을 풀어 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즉흥적으로 비유를 취한 것은 큰일을 깨우칠 만한 것이라 하겠다.’” 유재건, 『이향견문록』, ‘김중진전(金仲眞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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