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이어 화력발전소도 납품 비리…수법 판박이
상태바
원전 이어 화력발전소도 납품 비리…수법 판박이
  • 박철성 칼럼니스트·다우경제연구소 소장
  • 승인 2017.02.12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철성의 핫 키워드] 중국산 진공펌프 원산지 국내산 둔갑…45억2650만원 챙겨
▲ 삼척그린파워발전소 건설현장 전경. <사진=삼척그린파워건설본부>

[박철성의 핫 키워드] 중국산 진공펌프 원산지 국내산 둔갑…45억2650만원 챙겨

원전(原電) 비리에 이은 화전(火電) 비리의 서막인가. 삼척그린파워 등 화력발전소 8곳의 납품 비리 사건이 터졌다.

특히 발주처인 한국남부발전 측은 일찍이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내버려 뒀다.

또 시공사인 두산중공업 측의 사건축소·은폐, 책임회피는 공분마저 사고 있다.

화력발전소 납품 비리는 원산지 허위표시, 재질·시험성적서의 위·변조 수법이 동원됐다. 원전 비리 당시의 수법을 그대로 빼 박았다는 지적이다.

발전소 펌프 제조업체 대표 등 임직원이 중국산 발전설비를 국산으로 속여 화력발전소에 대량으로 납품했다. 45억여원을 챙겼고 이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대외무역법 위반·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외국계 발전소 펌프 제조업체 G사의 한국지사 대표 최모(56)씨와 기술 고문 김모(59)씨를 구속기소하고, 채모(48)씨 등 직원 3명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외국계 발전소 펌프 제조업체 G사는 벌금 1억50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펌프를 납품받은 일부 발전소 관계자들은 검수과정에서 GPA 준수 여부·펌프 성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남부발전의 강태길 부장은 “지난해 7월5일 검찰의 삼척그린파워 화력발전소 압수수색으로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하지만 정확한 결과가 나오질 않아 조처를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당시 중국산 펌프가 국내산으로 둔갑한 것을 알았으면서도 이를 내버려 뒀다는 얘기다.

취재진은 동부지검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기 전인 1월25일 시공사인 두산중공업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당시 두산중공업 이승재 부장은 “해당 (사)건은 검찰수사가 종결됐고 부품업체의 위법사실이 인정되어 벌금형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부발전과 두산중공업은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그후 동부지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화력발전소의 대형비리 사건임이 공표됐다. 이 부장은 즉시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지난 3일 카톡 문자를 통해 “이전에 밝힌 내용 중 ‘벌금형 판결을 받은 것’을 ‘해당 업체가 위·변조 등의 위법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것으로 알고 있음’으로 수정해 달라”고 했다. 애초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고 관리·감독의 책임회피를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사건은 최씨 등이 2012년 8월∼2014년 12월 중국산 화력발전용 진공펌프(Vacuum Pump) 41대를 납품하면서 ‘Made in China’로 표시된 함석 명판을 떼어내고 ‘Made in Korea'로 표시된 함석 명판을 다시 부착하는 등의 방법으로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속였다. 또 재질 성적서 등 205장의 문서를 위·변조하는 수법으로 총 45억2650만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화력발전소와의 계약에 따라 ‘정부조달에 관한 협정(GPA)’ 가입국에서 제조한 펌프와 미국재료시험학회(ASTM) 규격에 따른 주조물로 만든 펌프를 납품해야 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산 펌프를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 화력발전 설비 중 복수기의 위치와 기능. <자료=서울동부지검>

문제가 된 진공펌프는 복수기에 부착되어 복수기에 발생하는 기체를 제거하는 기기이다. 만약 복수기에 발생한 기체를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 복수기의 성능을 현저히 떨어뜨리거나 부식을 초래할 수 있다. 복수기(Condenser)는 화력발전 과정에서 터빈을 회전시킨 증기를 재사용하기 위해 액체로 바꾸는 응축기를 말한다.

이들은 중국에 펌프 제조설비를 갖추고 중국산 펌프를 주로 동남아시아 등 해외시장에 납품하던 중 해외수주 물량이 줄어들자 국내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GPA 가입국이 아닌 중국에서 제조된 발전설비를 국내 화력발전소에 납품할 수 없자 원산지와 서류 등을 위조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수입한 35대의 펌프에서 ‘Made in China’ 명판을 떼어내고 31대에 ‘Made in Korea’ 명판, 4대에 ‘Made in Brazil’ 명판을 부착해 화력발전소에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화력발전소가 요구한 규격을 맞추지 못하자 재질 성적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애초 G사가 발전설비제조업체 등을 통해 납품계약을 체결한 화력발전소 8곳은 모두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내구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재료시험학회규격(ASTM규격)에 따른 주조물을 사용한 펌프를 납품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G사의 중국 펌프제조공장은 ASTM 규격이 아닌 중국산업규격(GB 규격)에 따른 주조물로 펌프를 제조하고 있었다. 화력발전소 8곳은 인장강도 최소치를 207MPa(메가파스칼)로 정한 ASTM 규격의 주조물로 제조한 펌프를 주문하였다.

하지만 G사의 중국공장은 인장강도 최대치가 200MPa에 불과한 GB 규격의 주조물로 펌프를 제조하고 있었다.

▲ 이번 화력발전소 납품비리는 원산지 허위표시, 재질·시험성적서의 위·변조 수법이 동원됐다. <자료=서울동부지검>

최씨 등은 GB 규격에 따른 주조물로 제조된 중국산 펌프를 그대로 납품하면서 ASTM 규격에 따른 주조물로 제작된 것처럼 재질 성적서 122장을 위조하고, 62장을 변조하여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원산지를 속일 필요가 없던 미국산 펌프 6대에는 미국공장에서 성능 테스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테스트를 한 것처럼 시험 성적서를 위조해 화력발전소에 제출했다.

민자발전소가 위조된 재질 성적서와 함께 납품받은 중국산 펌프 1대의 부품 중 임펠러(Impeller: 진공상태를 만들기 위해 회전하는 원판)가 1년도 지나지 않아 부식되는 바람에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한 사실이 확인됐다.

범죄사실이 드러나자 G사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공공발전소 3곳에 GPA 가입국에서 생산된 펌프를 다시 납품하기로 하고 민자발전소 5곳에는 중국산 부품을 전면교체해주기로 했다. 구체적인 교체범위나 일정에 대해서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유사 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수사 결과를 산업통상자원부에 통보했다”면서 “국가와 국민의 생활기반과 직결된 범죄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범죄 정보 수집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한국남부발전의 삼척그린파워 1호기는 지난해 12월16일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