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을 빌어 드러낸 소수 지배세력 향한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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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언(寓言)’을 빌어 드러낸 소수 지배세력 향한 울분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2.2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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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⑩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⑩

[한정주=역사평론가] 마지막으로 ‘우언(寓言)과 우화(寓話)’의 형식과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해학과 풍자 정신과 목소리를 담아냈던 글은 정치적으로 핍박받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문화적으로 배척당했던 이른바 비주류의 문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동물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아 썩고 뒤틀린 세상에 대한 마음속 불만과 분노를 해학과 풍자로 마음껏 발산했다.

대표적인 문인이 윤기(尹愭)이다. 윤기는 스스로 “천하의 버려진 사람”이라 자조하면서 ‘무명자(無名子)’라는 자호(自號)를 취했던 독특한 인물이다. 영조 17년인 1741년 태어나 순조 26년인 1826년 사망했으니 무려 세 명의 임금을 거쳐 86세까지 장수했다.

일찍이 성호 이익에게 학문을 사사하고 성균관에서 20여년간 공부하다가 정조 16년(1792년) 52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말년에는 호조참의에까지 올랐다. 크게 출세한 인생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림에 묻혀 산 이름 없는 선비도 아니었다.

그러나 윤기 자신은 소수 벌열(閥閱)과 외척(外戚)세력이 독차지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채 철저하게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다. 이 때문에 곤궁한 삶을 살아야했지만 자호(自號)에 담았던 뜻처럼 평생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기 때문에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보고 싶은 책을 읽고 붓 끝이 가는 대로 쓰고 싶은 글을 쓰면 그뿐인 생활에 만족했다.

다만 그 마음속 분노와 세상을 향한 울분은 차마 지울 수 없어 ‘우언(寓言)’을 빌어 자신의 뜻을 드러내곤 했다.

먼저 ‘거미’와 ‘고양이’와 ‘개’를 주인공 삼아 탐욕과 어리석음에 눈멀고 간교함과 교활함을 감춘 채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빼앗고 속이기를 다반사로 하는 인간 세태를 풍자한 ‘잡설(雜說)’ 속 세 가지 이야기를 읽어보자.

“거미가 허공에 거미줄을 쳐놓고 온갖 날아다니는 것들을 노려 작게는 모기나 파리에서부터 크게는 매미와 제비까지 잡아 배를 채우지 않음이 없었다. 벌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거미가 잽싸게 그 놈을 묶다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다. 벌에게 쏘였기 때문이다.

꼬마아이가 벌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손으로 집어 풀어주려고 하는데 또 침을 쏟았다. 아이는 성이 나서 밟아 문질러버렸다. 아아! 거미는 다만 자기의 재주로 온갖 날아다니는 것들을 그물질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벌이 자기를 쏠 수 있을 줄은 알지 못하였으며 벌은 다만 쏘아대는 것이 능사인 줄 알았지 자기를 해치는 자와 구해주려는 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만나기만 하여 쏘아대어 자기를 구해주려던 사람이 오히려 자기를 해치게 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꼬마아이는 거미가 낭패당한 것만 다행으로 여겼지 벌이 몹쓸 짓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하였고 벌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하였지만 벌의 독을 쏘아대는 성질이 능히 사람을 해코지할 수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구나! 천하의 일이 어찌 다만 이와 같을 뿐이겠는가?” 윤기, 『무명자집』, ‘잡설 삼(일)(雜說三(一))’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어 마리의 고양이를 길렀다. 그 가운데 ‘한 마리 고양이’는 낮엔 늘 자고 밤만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쥐를 잡았지만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고양이’는 밤엔 사람 곁에 붙어 자고 낮에 어쩌다가 쥐를 잡게 되면 반드시 물고서 사람 앞에 갖다놓고 가지고 놀며 웃음거리를 제공해 주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기특하게 여겨 비록 음식을 훔쳐 먹고 닭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지만 죄를 따지지 않았다.

쥐들은 ‘한 마리 고양이’가 밤마다 사냥하는 까닭에 죽지 않은 경우에는 죄다 멀리 달아나버렸다. 근심이 드디어 없어지자 사람들은 ‘다른 고양이’의 공으로 생각하여 드디어 그 ‘한 마리 고양이’를 두들겨 패서 내쫓았다. 쥐들이 이에 줄지어 돌아오니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선택하게 한들 어찌 그 ‘한 마리 고양이’를 기르겠는가? 아마도 그 ‘다른 고양이’를 기를 것이다!” 윤기, 『무명자집』, ‘잡설 삼(이)(雜說三(二))’

“남의 집에서 강아지를 얻어온 사람이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는데 어린 데다가 새로 왔기 때문에 자주 먹이를 주고 매양 가련하게 여기며 어루만져 주었다.

그 집에 늙은 개가 있었는데 속으로는 한을 품으면서도 겉으로는 강아지를 아끼는 체하며 볼 때마다 핥아주고 안아주었다. 또 강아지를 위해 벼룩이나 파리 따위를 잡아주기도 하니 사람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늙은 개가 밤에 사람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강아지의 목을 단번에 깨물어 죽이고는 물어서 문밖에 내다 놓았다. 날이 밝아 사람이 일어나자 개는 사람의 옷을 잡아당겨 강아지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슬피 울며 가리키는 것이었다.

대저 속으로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불쌍히 여기며 아껴하는 모양을 내보여서 사람들이 의심하지 못하게 하고, 이미 독살스런 짓을 하고도 그 죽음이 자기로 인한 것이 아닌 척 행동하였으니 교활하구나! 개도 또한 이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윤기, 『무명자집』, ‘잡설 삼(삼)(雜說三(三))’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한 해학과 우언의 글을 많이 남겼다. 동물의 습성과 행태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깊은 사유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풍자적으로 묘사해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질타하기 위해서였다.

그 가운데 몇 편의 글은 윤기의 ‘잡설(雜說)’에 나오는 이야기와 구성과 맥락이 비슷해 흥미를 자극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과 사상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억압당한 전근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뜻을 표현하는데 해학과 우언이 가장 적합한 형식이었던 셈이다.

“48. 우화 - 양털 위에서 개가 잠들었다. 매끄러운 양털 냄새를 감지한 개의 벼룩들 가운데 한 마리가 양털이 더 살기 좋은 곳이며 개의 이빨과 발톱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더욱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했다. 그 벼룩은 더 이상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개를 떠나 빽빽한 양털 안으로 들어섰다. 양털 모른(毛根) 사이를 지나기 위한 힘겨운 노동이 시작되었다. 엄청난 땀을 흘린 후에야 벼룩은 그 일이 허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양털이 너무 촘촘하게 붙어 있어 가죽의 맛을 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으로 지친 벼룩은 개에게 되돌아가기 원했지만 개는 이미 떠나 버린 뒤였다. 깊은 후회 속에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벼룩은 굶어 죽어 갔다.

51. 우화 - 개미가 기장 씨앗 하나를 발견했다. 그 씨앗은 개미에게 애절하게 절규하는 포로 같았다. ‘자라서 곡식을 맺을 수 있도록 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나 같은 씨앗 백 개를 줄게.’ 씨앗은 약속을 지켰다.

벌들과 여러 종류의 곤충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아주 달콤한 포도 한 송이를 거미가 발견했다. 거미줄을 쳐 덫을 놓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한 거미는 포도송이 위에 거미집을 잘 짓고 자리를 잡았다. 새집에 살게 된 거미는 포도송이 사이사이가 만들어낸 빈 공간 속을 매일 들락거렸다. 거미는 영문 모르는 가련한 포도를 도둑처럼 덮쳤다. 며칠 후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이 포도송이를 떼어 내 함께 으깰 다른 포도와 두었다. 그 포도는 거미와 곤충들의 기대와 달리 덫과 함정이 되었다.

깊은 강물 위에 얼은 얼음에서 나귀가 잠이 들었다. 가련하게도 나귀는 자신의 온기로 얼음을 녹이게 되었다. 나귀는 강물 아래로 떨어져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매가 진득하게 참고 기다리다 못해 눈앞의 오리를 놓치게 되었다. 오리가 물 밑으로 숨어버리자 매는 오리를 좇아 물속으로 들어갔다. 깃털을 온통 물로 적신 매가 물 밑에서 허둥대는 동안 물 위로 떠오른 오리는 물속에서 익사해 가는 매를 비웃었다.

거미줄을 쳐놓고 몰래 파리를 잡으려는 거미는 그 거미줄 속에서 말벌에게 잔인한 죽임을 당했다.

올빼미를 비웃던 독수리는 올가미에 걸려 인간에게 잡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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