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가치·규범보다 천성 따라 사는 개성적 삶이 진정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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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가치·규범보다 천성 따라 사는 개성적 삶이 진정한 즐거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3.03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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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⑪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⑪

[한정주=역사평론가] 옛것을 담론하기를 좋아하는 자신을 위하여 한 나그네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모두가 ‘우언(寓言)’이었다고 한 다음 호랑이와 뱀과 모기와 파리와 벼룩 사이의 대화 형식을 취해 ‘천성(天性)으로 타고난 즐거움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죽게 되면 죽을 따름이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윤기의 또 다른 작품 또한 읽어볼 만하다.

특히 이 글에는 전통적인 가치나 규범에 얽매이기보다 차라리 타고난 천성에 따라 개성적인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겠느냐는 은미(隱微)한 뜻이 담겨 있다.

“호랑이가 뱀·모기·파리·벼룩 따위와 나무 아래에서 만나 사람을 해코지하는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다.

벼룩이 말했다. ‘내가 몸은 가장 작지만 매우 용감하고 지혜롭네. 낮에는 사람의 저고리 속에 들어가 사람들을 편안히 앉아 있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걸핏하면 잠자는 곳으로 곧장 들어가 사람들을 편안하게 잠 잘 수 없게 한다네. 사람들이 나를 잡고자 하면 훌쩍 뛰어올라 번쩍하며 빠져나간 듯이 하다가 곧바로 되돌아오니 비록 눈이 밝고 손이 재빠른 사람이라도 거의 휘둥그레 하며 손을 쓰지 못하니,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파리가 말했다. ‘네가 비록 삼백 번을 뛴다 한들 내가 한 번 나는 것보다 못하지. 나는 재빠르면서도 재주가 있어 사람들의 책상을 더럽히기도 하고 사람들의 수염과 눈썹 근처에서 정신없게 어른거리기도 하지. 음식이 있으면 내가 먼저 맛보고 검은 색이든 흰 색이든 만나기만 하면 내가 색깔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지. 어느 곳이든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데 몰아내면 다시 돌아오지. 비록 화가 나서 검을 뽑아든 자가 있더라도 나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네.’

모기가 말했다. ‘나는 풀에 의지해서 살아가다가 어두움을 틈타서 움직이네. 우리가 모여들면 우레 소리를 만들고 흩어져서는 바람결을 따라다니네. 비록 산을 짊어질 힘은 없지만 살갗을 깨무는 능력은 가장 훌륭하다네. 벼룩이 비록 잘 문다지만 내 주둥이의 날카로움만 못하고, 파리가 비록 잘 날아다닌다지만 내 몸의 가벼움만 못하네. 이러한 까닭에 제(齊)나라 왕의 위엄으로도 모기장 걷기를 허락하였고 정조 있는 여인의 지조 있는 행동으로도 힘줄을 드러내 긁을 수밖에 없었다네. 내 어찌 저 자잘한 모깃불을 두려워하겠는가?’

뱀이 말했다. ‘자네들은 사람에게 해코지를 잘한다고 부질없이 자랑하면서 나를 하찮게 보지 말게. 나는 명성이 용과 서로 나란하고 독은 전갈과 나란히 일컬어진다네. 혹은 구슬을 머금어 보답한 이야기가 전하기도 하고, 혹은 넓적다리 살을 베어낸 충성을 찬미하기도 하네. 군자는 몸을 보존하는데 있어 내가 겨울잠 자는 데에서 본보기를 취하였고, 계집아이가 태어날 때에는 꿈에서 나를 보는 것으로 상서로움을 나타낸다네. 팔진법을 구축해 적을 막는데 내가 아니면 어떻게 형상을 본뜨겠는가? 다섯 장정이 촉도(蜀道)를 낼 때에 내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개통했겠는가?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 의해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줄 스스로 알고 있으며, 또한 특이한 뱀을 진상하는 영주(永州) 사람에게 사로잡히게 될까 두렵다네. 그래서 깊은 곳에 거처하며 똬리를 틀고 있다가 때때로 나와 놀기도 하지만 나는 일찍이 사람을 해치는 데 마음을 둔 적이 없네. 그러나 사람들이 혹 다가와서 못살게 군다면 또한 어찌 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늘어뜨리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자네들처럼 눈을 번뜩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을 나는 하지 않네.’

호랑이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비천하고 자질구레하니 말할 것도 없구나. 나는 산군(山君)이라고 부르며 변화를 잘하기가 대인(大人)과 같다. 휘파람을 불면 바람이 차가워지고, 한 번 울부짖으면 절벽이 찢어질 듯하고, 산모퉁이에 의지하여 기세를 부리며, 어금니를 갈고 있다가 먹잇감을 골라서 잡아먹지. 그러니 너희들처럼 다만 깨무는 것을 능사로 삼으면서, 혹은 손톱과 손바닥에 문드러지고 혹은 몽둥이나 올무에 걸려서 죽고, 설사 다행히 벗어나더라도 끝내는 결국 패멸하는 것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잠시 뜻대로 되었다고 영원하리라 생각지 마라.’

뱀 등이 모두 성을 내며 말하였다. ‘그건 그렇지만, 그대만 홀로 두려워하는 바가 없는가? 그대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중대하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대를 해치고자 하는 방법도 또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지 않음이 없다네. 함정을 만들어 빠뜨리고 산을 포위하여 몰아대며 강한 활에 독을 메긴 화살, 화약을 바른 철구슬까지 사용하지. 그리하여 심장을 뚫고 목구멍을 맞히고는 뼈를 갈라내고 가죽을 벗겨내니 이것도 또한 너무 잔혹하네.’

나무 위에 매미가 있었는데 입으로는 말을 못하고 마음으로 대꾸하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너희들이 모두 사람을 해치는 걸 일삼기 때문에 사람들도 또한 너희를 해치는 게야. 이는 곧 이치상 당연한 것이며 형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지. 나 같은 경우는 바람을 들이마시고 이슬을 마시며 높은 데에 살며 소리를 내지. 세상에 요구하는 것도 없고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도 없지. 다만 주자(朱子)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이 내 소리가 더욱 맑아짐을 듣고 고풍(高風)을 사모하게 할 뿐이란다. 그러니 대저 누군들 나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호랑이를 비롯한 나머지가 모두 잠자코 있더니 ‘많은 이야기 하지 마라. 다만 죽게 되면 죽을 뿐이다. 한껏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때 어찌 천성으로 타고난 즐거움을 바꿀 수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각자 흩어져 갔다.” 윤기,『무명자집』

앞서 소개한 다빈치의 해학과 우화 중 ‘동물의 삶과 습성에 관한 연구’에 남겨 놓은 다음과 같은 글들은 윤기가 말한 동물의 ‘타고난 천성’과 연결시켜 읽으면 매우 흥미롭다.

“배은망덕 - 비둘기는 배은망덕의 상징이다. 그들이 더 이상 먹이를 얻어먹지 않아도 될 만큼 자라면 그들은 아비와 싸우기 시작하고, 이 싸움은 어린놈이 아비를 내몰고 어미를 제 것으로 차지하게 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너그러움 - 독수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 주변을 돌며 먹을 것을 얻는 의존적인 주위 새들에게 먹던 것의 일부를 언제나 남겨준다.

신중함 - 개미는 타고난 예지력으로 여름에 겨울을 예비한다. 개미는 모아 놓은 씨들에서 싹이 나지 않도록 하며 때가 되면 그 씨앗을 먹는다.

두려움 또는 비겁함 - 산토끼는 언제나 겁이 많다. 가을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새에도 놀라 겁에 질려 도망치기 바쁘다.

헛된 영광 - 이 악덕에 관한 한 어떤 동물보다 공작이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공작은 자기 꼬리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꼬리를 바퀴모양으로 펼치고 울어댐으로써 주위 동물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이것이야말로 좀처럼 다스릴 수 없는 악덕이다.

금욕 - 야생 노새는 물을 마시러 샘에 갔을 때 물이 휘저어져 있으면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이 다시 가라앉아 깨끗해질 때까지 마시지 않고 기다린다.

절제 - 절제가 몸에 배어 있는 흰담비는 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 흰담비는 지저분한 굴속으로 피해 그 깨끗한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사냥꾼에게 잡히고 만다.

위선 - 악어는 사람을 물자마자 해친다. 그 사람이 죽게 되면 그를 위해 연신 눈물을 흘리며 구슬픈 소리로 운다. 그러나 일단 울음을 그치면 곧 잔인하게 먹어 치운다. 작은 일에도 눈물을 흘리지만 그 슬픈 얼굴 뒤에 야수의 마음을 숨기고 있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즐기는 위선자들이 악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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