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자나 받는 자나 같은 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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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자나 받는 자나 같은 죄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3.2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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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⑭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⑭

[한정주=역사평론가] ‘야담(野談)’과 ‘전기(傳記)’와 ‘우언(寓言)과 우화(寓話)’의 세 가지 방법과 형식 이외에도 옛 사람들의 글을 뒤적이다 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상황을 활용해 삶의 다양한 모습을 해학과 풍자 속에 녹여낸 재미난 글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자신의 게으름을 풍자한 이규보의 ‘용풍(慵諷)’과 유득공의 ‘시 땜장이’와 조희룡의 ‘가려움 삼매경’ 등이 그렇다.

“나는 게으름의 병통이 있다. 이것을 손님에게 말하기를 ‘세상은 바삐 돌아가는데 오히려 나는 게으름뱅이여서 작은 내 몸 하나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한다. 집이라고 하나 있지만 게을러서 풀조차 뽑지 않고, 천 권의 서적이 있지만 게을러서 좀이 슬어도 펼쳐보지 않고, 머리카락이 헝클러져 지저분해도 게을러서 손질하지 않고, 몸이 아파도 게을러서 치료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귀는 일에도 게을러서 말을 나누지 않고, 사람들과 서로 찾아 오가는 일에도 게을러서 왕래가 적다. 또한 입은 말을 게을리 하고, 발은 걸음을 게을리 하고, 눈은 보는 것을 게을리 한다. 땅을 밟든 일을 대하든 무엇 하나 게으르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병(病)을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

그때 손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물러간 다음 내 게으름의 병을 낫게 해주려고 열흘쯤 지나 다시 찾아왔다. 그러면서 ‘요즘 오랫동안 보지 못해 매우 그리웠네. 한번 보고 싶어서 왔네’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게으름의 병이 발동해 다시 만나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자 손님은 ‘내가 오랫동안 그대의 부드러운 미소와 깊은 뜻을 담은 말을 듣지 못했네. 지금은 늦봄이어서 새는 동산에서 지저귀고 바람은 자고 날씨는 화창해 온갖 꽃이 만발하네. 내게 맛과 빛이 좋은 술이 있어서 그 향기가 방안 가득하고, 그 기운은 항아리를 가득 채웠네.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어질지 못한 행동인 듯한데, 그대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마시겠는가? 우리 집의 시중드는 아이가 소리를 잘하고 생황과 비파를 잘 연주하니 또한 홀로 듣기에 너무 아까워 그대를 기다리네. 그러나 그대가 함께 가기를 꺼릴까봐 걱정되네. 잠깐이라도 함께 가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기꺼이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일어나면서 ‘그대는 나와 같은 늙은이를 저버리지 않고 맛좋은 술과 보기 드문 자태로 위로하려고 하는데, 내가 어찌 사양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서둘러서 허리띠를 매고 의복을 갖추는데 혹시 늦지나 않을까 염려되고 신을 신는데 혹시 너무 더디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급하게 나서서 가려 하는데, 손님은 게으른 모양새로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금 있다가 말을 바꾸어 ‘그대가 이미 내 청을 받아들였으니 고칠 수는 없네. 그런데 그대가 예전에는 말이 게으르더니 지금은 말이 무척이나 빠르고, 예전에는 걸음이 게으르더니 지금은 걸음이 아주 빠르네. 아마도 그대의 게으름 병이 다 나은 듯 하네. 사람의 본성을 해치는 도끼로는 여색(女色)이 가장 심하고, 사람의 창자를 상하게 하는 약으로는 술이 가장 심하네. 그런데 그대는 이 두 가지 일에만 게으름의 병이 사라짐을 깨닫지 못하고 있네. 내 집에 서둘러 가려고 하는 태도가 마치 저잣거리에 가는 사람과 같네. 만약 지금 이대로 간다면 그대의 본성을 상하게 하고 몸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네. 나는 그대가 그렇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갑자기 그대와 말하는 것도 게을러지고 또 함께 앉아 있기도 게을러지네. 그대의 게으름 병이 혹시 내게 옮겨지지는 않았는가?’라고 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빛이 붉어지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리고 손님에게 사과하며 ‘훌륭하네. 그대가 내 게으름의 병을 풍자함이여!! 나는 예전에 그대에게 내 게으름의 병통에 대해 말했네. 지금 그대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림자가 사람을 좇는 것보다 더 빠르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게으름이 사라져 흔적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네. 이제야 비로소 사람의 욕망이 그 마음을 빠르게 움직이고 부드럽게 귀에 파고든다는 사실을 알았네.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아하고 즐기려는 욕심이 사람의 몸에 재앙을 주는 일이 지독히도 재빠르니 참으로 삼가지 않을 수가 없네. 이제 내가 마음을 옮겨 게으름을 버리고 인(仁)과 의(義)의 초막으로 들려고 힘쓸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주고 나를 조롱하지 말겠나’라고 했다.” 이규보, 『동문선』, ‘게으름을 풍자하다(慵諷)’-

유득공은 이미 세상을 떠난 벗 이덕무를 회고하면서 자신들을 찾아와 글을 고쳐달라고 청하는 사람들이 지겨운 나머지 차라리 온갖 물건을 고치는 땜장이처럼 붓과 먹을 끼고 필운대와 삼청동 일대를 돌면서 ‘파시(破詩) 떼워!’라고 외치고 다니면 목에 풀칠이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한 일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유득공은 자신들의 그릇된 명성과 궁색한 처지를 이용하려 한 당시의 세태를 한마디 우스갯소리에 숨겼지만 이옥이 쓴 ‘유광억전(柳光億傳)’을 보면 실제 당시에 자신의 시문을 다른 사람에게 써주는 일을 생계로 삼은 이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고한 벗 이무관(李懋官)은 참으로 한 시대 문단의 으뜸이었다. 나도 그릇되게 명성이 있어서 새로 배우는 후배들이 시와 문장을 가지고 와서 고쳐주기를 청하는 자가 꽤 있었다.

하루는 무관이 붓을 내던지고 한숨을 쉬며 나에게 말하기를 ‘서울에는 온갖 물건마다 모두 땜장이가 있네. 부서진 소반, 부서진 냄비나 떨어진 신, 헤진 망건을 잘 고치면 넉넉히 생계를 꾸려나갈 수가 있지.

나나 자넨 늙은 데다 글솜씨마저 거칠어졌네. 어찌 가만 앉아서 굶주리기를 기다릴 수 있겠나. 붓 하나 먹 하나 끼고 필운대와 삼청동 사이를 다니면서 ‘파시(破詩) 떼워!’ 외치면 어찌 한 사발 술과 한 접시 고기야 얻지 못하겠는가?’ 하여 서로 크게 웃었다. 최근 서학사(徐學士)와 이야기하다가 이 일을 말하고는 함께 포복절도하였다. 그러더니 나를 ‘시 땜장이’라고 불렀다.” 유득공, 『영재집』, ‘보파시장(補破詩匠)’

“천하 사람들은 시끌버끌 이익을 위해 이리 오고 이익을 위해 저리 가니 이 세상에서 이익을 숭상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익 때문에 살아가는 자는 반드시 이익 때문에 죽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익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지만 소인들은 이익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

서울은 온갖 장인과 장사꾼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상품으로 팔 수 있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많은 점포에 쌓여 있어 점포들이 별처럼 벌여 있고 바둑알처럼 깔렸다. 어떤 이는 남에게 손으로 품을 팔며, 어떤 이는 어깨와 등으로 품을 판다. 또 뒷간을 치는 자, 칼을 갈아 소를 잡는 자도 있다. 심지어 얼굴을 화려하게 꾸며서 매음하는 자도 있다. 천하의 사고 팖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 유광억은 영남 합천군 사람이다. 그는 시를 얼추 지을 줄 알았다. 특히 과시(科詩)를 잘하기로 영남에서 이름이 났다. 하지만 집이 몹시 가난한 데다가 지체도 낮았다. 시골에는 남을 위해 과시(科詩)를 돈 받고 지어주고 살아가는 이가 많았다. 유광억도 역시 그것을 이익으로 삼았다.

유광억이 언젠가 영남 도시(道詩)에 합격하고 장차 서울의 해당 관서(한성부)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부인의 타는 가마를 대령하고 길에서 그를 맞았다. 가마에 타고 그 집에 이르러보니 붉은 대문이 몇 겹이요, 화려한 건물이 수십 채였다.

거기에는 얼굴이 희고 수염이 성글게 난 몇몇 젊은 사람들이 막 종이를 펼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필력(筆力)을 겨루어서는 유광억의 품평을 들었다. 그 주인은 유광억을 안채에 묵게 하고 날마다 다섯 끼씩 진수성찬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얼굴을 보여 마치 아들이 어버이를 잘 섬기듯 유광억을 공경하였다.

급기야 회시(會試)를 치르고 본즉 그 주인의 아들이 과연 유광억이 대신 써 준 글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주인은 행장을 잘 꾸려서 유광억을 전송하였다.

… 유광억의 글은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날래고 날카로운 맛이 있어 제법 솜씨가 높았다. 그 때문에 번번이 도시(道詩)에서 높은 성적으로 합격하거나 대리 시험을 치러 남을 합격시켰다.

… (이러한 사실이 발각이 나) 유광억은 군에서 구속되어 감영으로 송치될 판이었다. 그는 두려운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야말로 과거 법규를 해치는 도적이니 감영으로 가더라도 역시 죽을 것이다. 차라리 가지 않는 게 낫겠다.’

그는 밤에 친척을 모아 놓고 한껏 술을 마셔대었다. 그리고는 몰래 강물로 나가 몸을 던져 죽었다.

… 매화외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하에는 팔지 못할 물건이 없다. 몸을 팔아 남의 노예가 되는 자도 있다. 심지어 가느다란 터럭과 형체가 없는 꿈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사고판다. 그러나 아직 마음을 팔았다는 일은 없었다. 어찌 물건치고 다 팔 수 있거늘 마음이라 하여 팔지 못하겠는가?

유광억 같은 자는 바로 그 마음을 판 자가 아니겠는가? 아! 누가 천하에서 가장 천박한 매매를 글 읽는 자가 하리라고 생각하겠는가? 법으로 따지면 ‘주는 자나 받는 자나 같은 죄’로다.” 이옥, ‘유광억전(柳光億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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