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뿌리→자본주의 동력→위기 주범”…탐욕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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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뿌리→자본주의 동력→위기 주범”…탐욕의 해부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6.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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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고리대금업이 불러온 두 번의 금융 위기”
▲ 늙은 탐욕가의 전형을 보여준 스크루지 영감.

자본주의의 최대 강점은 인간의 탐욕이다.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반면 인간의 탐욕은 자본주의의 최대 약점이다. 최대의 이윤만을 쫓는 자본주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투기와 거품 경제의 원흉으로까지 지목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인 것이다.

탐욕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1세기 로마 가톨릭이었다. 이후 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로 인식됐다.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돈만이 아니라 지위를 탐하는 것도 탐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물론 당시에는 성직자·전사·평민이라는 신분질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큰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훗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부활되고 확장된다.

11세기 수도승 문화가 유행하면서 가난을 미덕으로 삼았던 수도자들에 의해 다시 탐욕이 가장 악한 덕으로 공격받았다.

반면 공동체 생활을 위해 공동재산이 필요했던 베네딕토회 수도원은 탐욕이라는 의미를 좁게 해석하며 사유재산을 인정했다. 수도원 경제에서 처음으로 사유재산 개념이 인정된 것이다.

대체로 상업 사회 이전, 농업을 기초로 하는 사회에서 탐욕은 교만보다는 덜한 악덕으로 취급되었지만 탐욕은 여전히 악의 뿌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2세기 이후 상업 경제가 출현하고 성직 매매가 기승을 부리면서 다시 탐욕이 가장 나쁜 악덕으로 등장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탐욕에 대한 입장이 180도 바뀐다. 이때 탐욕은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고 탐욕가는 오히려 강인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게 된다. 이어 18세기 벤담의 공리주의에 이르러 탐욕은 거의 미덕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다시 탐욕을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탐욕은 필요와 욕심을 구분해 제2의 결핍을 낳은 원흉이고 금융 위기를 초래한 근본 동력이라고 지탄받는다.

협동조합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볼료냐대학교 정치경제학과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신간 『인류 최악의 미덕, 탐욕』(북돋움)에서 탐욕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인류 역사에서 드러낸 모습을 탐구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 상업혁명, 르네상스, 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 권위주의 시대, 현대 포스트모던 사회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 경제 담론의 주도권을 쥔 주체들이 탐욕을 어떻게 이용했고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경제사를 중심으로 인류의 문화 전반을 살펴본다.

그러나 미리부터 탐욕을 악덕 혹은 미덕으로 꼬집어 정의하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악덕으로 보는 이들의 주장과 미덕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보는 이들의 입장을 보여준다.

탐욕에 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행복에 관한 논의로 모아진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과연 탐욕가도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쾌락이 곧 행복’이라는 심리학자들의 입장을 반박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의 입장에 선다.

쾌락이 곧 행복이라는 말은 탐욕가를 비롯한 이기주의자의 행복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조건을 쾌락만으로 보지 않는다. 쾌락과 더불어 ‘노동과 관계성 있는 활동’이 추가되어야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산에는 물질에서 얻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관계에서 얻어지는 ‘관계 자산’도 있기에 그렇다.

탐욕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부터인가 탐욕에서 도덕성의 잣대를 빼버리고 효용을 가져온다면 그것이 미덕이라는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리대금 또한 자본가의 기회비용에 합당한 이윤이라는 논리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런 논리를 방치한 결과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 컸다. 1929년 세계 대공황과 2009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금융 위기가 그것이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합리성만 추구한 경제학이 탐욕의 위험성을 간과한 점을 든다.

경제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인간에게 빛을 알려줄 뿐 아니라 직접 빛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런 경제학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기적인 본질을 알고서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추긴 결과가 바로 금융 위기라는 것이다.

경제학은 합리성과 효율성뿐 아니라 이치에 맞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즉 인간의 가치에 맞는 것, 인간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따지는 경제학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리주의 및 실용주의에 입각한 경제학은 합리적일지는 몰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를 재앙에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탐욕이 우리 사회를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니다고 그는 주장한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비영리기관 같은 여러 형태의 기업과 많은 자원봉사자가 시장을 혁신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부의 ‘나눔’에 있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경제학이 지향할 가치에 대해 ‘상호성(相互性)’과 ‘무상성(無償性)’, 즉 ‘아무 대가 없는 선물’의 가치를 강조한다.

누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겠다는 의도조차 없는 진정한 나눔은 상호성이라는 이익을 창출하며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경제 동력이자 참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스크루지 영감이 말년에 되찾은 행복의 이야기로 설명을 대신한다.

“스크루지는 평생 미친 듯이 재산을 쌓아오기만 한 사람이다. 그러다가 난생처음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자기 재산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스크루지는 그때야 비로소 상호성과 무상성의 자산 개념을 이해하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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