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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잠재력을 발굴하라”…혁신과 창조의 달인 최문·한충교[조선 거상에게 배운다]⑰ 개성홍삼과 강화돗자리가 창출한 블루오션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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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9  10: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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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충교는 돗자리의 재료로 사용하는 순백색 완초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염색 기술과 더불어 돗자리에 수놓을 우아한 디자인을 여러 가지 개발해 새로운 수준의 강화 돗자리를 선보였다. <사진=인천관광공사 블로그>

[조선 거상에게 배운다]⑰ 개성홍삼과 강화돗자리가 창출한 블루오션

[한정주=역사평론가] 『블루오션 전략』의 저자는 시장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은 기존 산업의 경계선 바깥에서 완전히 새롭게 창출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기존 산업을 확장해 만들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상품 시장과 고객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존 산업 분야에서 숨겨진 가치와 고객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블루오션이 개척된 사례가 더 흔하다는 얘기다.

잠재적으로 성장력이 한계에 달한 사양 사업인 서커스 분야에서 블루오션을 창출한 캐나다의 서커스 회사 ‘시르크 뒤 솔레이유(태양의 서커스)’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블루오션 전략』의 논리에 따르면 잘 나가는 성장 산업이든 혹은 성장 동력이 이미 다한 사양 산업이든 새로운 상품 개발과 기술 혁신을 통해 숨겨진 고객과 가치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블루오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최문의 인삼 재배·제조 기술 혁신 전략
18세기 국내외적으로 상업이 크게 발달한 배경에는 상업용 인삼을 대량 재배하고 홍삼 제조 기술을 개발한 개성상인이 자리하고 있다.

개성상인은 홍삼을 무기 삼아 국내 상권을 넘어서 청나라와 일본과의 국제 무역에서까지 주도권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자금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것은 개성상인이 누구보다도 앞서 가삼(家蔘) 재배 방법과 홍삼 제조기술의 혁신을 통해 얻은 성과물이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개성 사람들은 신라시대부터 인삼을 팔아왔다. 하지만 인삼은 기후와 토양 그리고 재배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사람의 손으로 인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개성상인들은 인삼 시장의 절대 권력자는 아니었고 개성인삼 역시 조선 인삼을 대표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19세기 순조 임금 때 간행한 개성의 풍속 기록 서적인 『중경지(中京誌)』에도 “원래 인삼은 개성의 토산물이 아니나 도중에 개성 사람이 남쪽 지방에서 인삼 씨를 얻어 삼포(蔘圃)를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원산지는 개성이 아니지만 인삼 씨를 얻어와 재배 기술을 개발하고 대규모 인삼 재배지인 삼포를 만들어 조선을 대표하는 인삼 도시가 됐다는 얘기다.

당시 개성에 인삼 씨를 들여와 대규모 재배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최문이라는 보부상이었다. 특히 최문은 대규모 인삼 재배와 더불어 인삼을 홍삼으로 가공하는 기술까지 개발해 이른바 ‘개성산(産) 명품 홍삼’을 만들어냈다.

보통 인공 재배한 밭에서 그냥 뽑은 인삼을 생삼(生蔘) 또는 수삼(水蔘)이라고 한다. 생삼(수삼)은 수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간 보존할 수 없다. 그래서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자연 건조시켰는데, 이 자연 건조한 인삼을 백삼(白蔘) 또는 건삼(乾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백삼(건삼)은 오래두면 부서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인삼을 끓여 말리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인삼을 파삼(把蔘)이라고 했다.

최문은 이 끓여 말리는 파삼 제조 방법을 쪄서 말리는 증조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증조 방식으로 만든 인삼을 홍삼(紅蔘)이라고 한다. 홍삼은 파삼보다 모양이나 효능에서 우수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오래 보관해도 생김새나 약효가 변하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최문이 개발한 홍삼 제조 기술은 조선의 인삼 산업에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낳았다. 먼저 오래도록 보관해도 모양이나 약효가 변하지 않는 가공 기술의 발달은 인삼을 대량 재배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

더욱이 홍삼이 국내는 물론 멀리 청나라와 일본에서까지 널리 명성을 얻게 되자 개성의 인삼재배와 홍삼 가공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인삼 산업과 시장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더불어 이 일에 종사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난 규모로 늘어났다.

기술 혁신→새로운 시장과 고객의 창출→재배 및 생산자의 증가→시장 규모와 소비자 계층의 확대라는 선순환 효과를 낳으면서 개성의 인삼 산업은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해나갈 수 있었다.

   
▲ 최문은 끓여 말리는 파삼 제조 방법을 쪄서 말리는 증조 방식으로 전환해 홍삼(紅蔘)을 만들어냈다.

순조 때 개성유수를 지낸 오한원이 올린 상소에서 “개성 사람들이 대부분 인삼 재배를 생업으로 삼고 매년 북경으로 들어가는 홍삼은 오로지 이곳 개성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밝혔듯이 개성은 최문의 홍삼 제조 기술 덕분에 ‘조선 인삼(홍삼)’의 본거지가 될 수 있었다.

최문과 개성 인삼의 경우는 기술 혁신을 통해 숨겨진 시장과 고객 가치를 발견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최문의 홍삼 제조 기술로 말미암아 조선의 인삼 산업은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를 창출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이득은 고스란히 개성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 한충교의 화문석 명품 전략
무늬가 있는 돗자리인 문석(紋石)은 1123년(인종 1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간 송나라 사람 서긍이 일종의 견문록인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을 만큼 일찍부터 국내와 국외에서 크게 명성을 떨쳤던 강화도의 특산품이었다.

강화도가 돗자리의 명산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지방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혜의 왕골인 순백색 완초(莞草)가 나기 때문이다. 강화에서 만든 돗자리의 주재료로 쓰인 이 순백색 완초는 다른 지방의 돗자리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품질을 유지해주었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강화 돗자리는 궁궐 진상품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강화 돗자리는 우수한 품질이나 실용성에 비해 무늬 도안이 단순하고 밋밋하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은 물론 서양 문물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강화 돗자리의 명성 또한 위협을 받고 있던 조선시대 말기 고종 황제는 단순하고 밋밋한 강화도의 돗자리 무늬 도안을 좀 더 화려하고 특별한 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보라는 어명을 내린다.

당시 고종 황제의 어명을 받은 강화도 돗자리 장인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그때 백색 돗자리를 주로 생산하던 한충교라는 장인이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화문석(花紋席)을 개발해 내놓았다.

한충교는 돗자리의 재료로 사용하는 순백색 완초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염색 기술과 더불어 돗자리에 수놓을 우아한 디자인을 여러 가지 개발해 새로운 수준의 강화 돗자리를 선보였다.

한충교의 새로운 화문석 제품 및 무늬 도안 기술은 그 후 강화 장인들의 손에 의해 의자나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화방석, 실내 장식이나 귀중용 보관품으로 쓰이는 꽃삼합 등으로 더욱 발전해 나갔다.

이때부터 강화 화문석은 명실상부 국내외적으로 조선의 돗자리를 대표하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크게 대접받았다. 특히 이후 강화 화문석은 일제강점기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일본 돗자리의 파상적인 물량 공세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면면히 ‘명품 이미지’를 지키며 확실한 자신만의 시장 영역을 구축했다.

개성 홍삼과 강화 돗자리가 창출한 블루오션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개성상인이 인삼의 대량 재배 및 홍삼 제조 기술을 혁신해 대중 소비 계층에서 숨겨진 고객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면 강화도의 장인들은 화문석의 명품 이미지를 더욱 업그레이드시켜 고급 소비 계층에서 숨겨진 고객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구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렇듯 새로운 시장과 고객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다양한 소비 계층의 수요와 취향 및 욕구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성장 산업이든 사양 사업이든 혹은 저가 시장, 중저가 시장, 프리미엄 고객이 찾는 시장에 관계없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블루오션은 새롭게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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