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학문은 사실상의 권력”…지배 계급의 독점으로 피지배계급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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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학문은 사실상의 권력”…지배 계급의 독점으로 피지배계급 통제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11.0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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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⑨
▲ 1801년(순조 1년) 시파·벽파의 정치 투쟁에서 벽파가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일으킨 신유박해 당시 홍인과 부친 홍교만이 포천 집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돼 압송되고 있는 장면을 그린 탁희성 화백의 그림.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⑨

[한정주=역사평론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인간의 욕망에 따른 개인적인 취향과 사물에 대한 개인적인 기호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아울러 그러한 생각들을 스스럼없이 글로 묘사하고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지식인과 문인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취향과 기호의 미학’을 글로 드러냈던 일련의 흐름이 존재했다.

필자는 앞으로 이러한 흐름이 이수광⟶이익⟶이덕무⟶이옥으로 글 맥(脈)을 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필자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는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다.

먼저 지식과 학문에 관한 주류적(主流的)이고 전통적(傳統的)인 가치와 관점에서 본다면 지식과 학문은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자 지배 계급에 속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사다리와 같은 존재였다.

조선 시대의 유학(성리학)과 과거시험이 대표적인 경우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지식과 학문이란 사실상의 권력이었다. 지배 계급은 지식과 학문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피지배계급을 복종시키고 통제했다. 이러한 까닭에 지식과 학문은 ‘경외(敬畏)’ 곧 좋게 말하면 공경과 존경의 대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경이로움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조선에서 성리학이 하나의 정치권력이자 지식권력이 되면서 성리학에 도전하는 모든 학문과 지식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배척하고 또한 성리학을 무너뜨릴 수 있는 모든 학문과 지식(그 대표적인 것이 서학(西學)과 천주교이다)을 철저하게 짓밟고 탄압한 까닭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학문과 지식이 지배계급의 정치·지식권력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문과 지식은 ‘경외(敬畏)와 숭배(崇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대부와 도학자를 자처하는 조선의 지배계급이 오직 유학과 성리학의 경전과 역사서만을 정학(正學)이라 받들고, 그 밖의 나머지 학문과 지식은-학문과 지식이라고 부르기도 아깝다는 의미에서-‘잡학(雜學)’이라 멸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유학과 성리학이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되는 한 그것을 독점하고 전유(專有)하는 양반 사대부 역시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치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이르면 학문과 지식에 대한 이러한 주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와 관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학문과 지식에 대한 관점이 등장한다. 그것은 학문과 지식을 ‘경외와 숭배’가 아닌 ‘유희와 놀이’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지식인과 문인의 등장이었다.

『지봉유설』에 제문(題文)을 쓴 문인 김현성(金玄成)은 이 책이 애초 저술(著述)에 뜻을 두지 않고 ‘유희(遊戱)’ 곧 놀이 삼아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지봉 이수광이 저술한 유설(類說)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읽어보니 다행스럽게도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 전질(全秩)을 보여주었다. 이에 두 번 세 번 자세히 읽어보니 대체로 공(公)의 뜻이 처음부터 저술에 뜻에 있지 않고 유희(遊戱) 삼아 적어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김현성, 『지봉유설(芝峯類說)』, ‘서문(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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