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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유희이자 놀이”…권력의 수단에서 개인적 취향·기호로 전환[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⑩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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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6  08: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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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역사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극찬받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바로 ‘지식은 유희이자 놀이’라는 참신한 철학의 바탕 위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⑩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렇듯 이수광은 학문과 지식을 ‘유희(遊戱)’, 즉 일종의 놀이로 인식했다. 학문과 지식이 숭배받는 가치이자 권력의 수단이요 목적이라면, 그것은 출세와 명예와 권력과 이익을 원하는 모든 이들을 특정한 학문과 지식으로 구속할 수 있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과거에 급제해 출세하려고 하는 사람은 과거시험에서 정한 학문과 지식만을 배우고 익히며, 도학자로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평생토록 유학과 성리학의 경전(經傳)에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학문과 지식이 어떠한 목적도 수반하지 않는 유희이자 놀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취향과 기호일 뿐이다. 다시 말해 출세와 명예를 위해 누군가 정해준 학문과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학문과 지식을 찾아 알게 되면 그뿐이다.

그리고 단지 나만 좋아하고 즐기는 데에 그치지 못해서 그것을 글로 옮겨 표현하면 만족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수광의 글에는 그동안 ‘잡학(雜學)’이라고 멸시받고 외면당했던 온갖 종류의 학문과 지식과 정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기록되어 있다.

“불랑기국(佛浪機國: 지금의 프랑스)은 섬라(暹羅)의 서남쪽 바다 가운데 있으니 서양의 큰 나라이다. 그 나라의 대포를 불랑기(佛浪機)라고 부르니 현재 병가(兵家)에서 쓰고 있다. 또 서양포(西洋布)라는 베는 지극히 가볍고 가늘기가 매미의 날개 같다.” 이수광, 『지봉유설』, 「제국부」, ‘외국’편

“우리나라 풍속에 정초에 남녀가 서로 모여서 뼈나 나무를 잘라서 네 토막을 만들고, 이것을 던져서 승부를 가리를 놀이를 하는데, 이것을 탄희라고 한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보면 ‘탄은 곧 저포(樗蒲)다’라고 했다.” 이수광, 『지봉유설』, 「기예부」, ‘저포’편

“『패사(稗史)』는 ‘한국(韓國: 삼한)에서는 반찬(飯饌)으로 삶는 닭을 한계(寒鷄)라고 한다’ 고 했다. 그렇다면 한(寒)이란 날씨가 춥다는 한(寒)이 아니라 곧 닭의 이름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암까마귀를 한아(寒鴉)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이수광, 『지봉유설』, 「금충부」, ‘새’편

“대체로 게는 서리가 내려야 살찐다. 그러므로 ‘붉은 게 살찔 때 늦벼는 향기로워’라는 시가 있다. 그러나 이제 황해도에는 겨울철에 언 게가 있고, 전라도의 순천(順天)과 함경도의 북청(北靑), 강원도의 흡곡(歙谷) 등지에서는 봄이 되어야 비로소 게가 살찐다. 대개 모든 물건의 성질은 살고 있는 땅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이다.” 이수광, 『지봉유설』, 「금충부」, ‘게’ 편

“무환목(無患木)은 제주(濟州)에서 난다. 그 열매는 구슬과 같다. 그런 때문에 속담에 이것을 무환주(無患酒)라고 한다. 이제 서울 안에 있는 여염집에서도 역시 이것을 심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있다. 살펴보건대 『본초강목』에 ‘옛날의 무당은 이 나무를 가지고 귀신을 때려서 죽였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투어 그릇을 만드는데 이 나무를 무환(無患)이라고 불렀다 한다.” 이수광, 『지봉유설』, 「훼목부」, ‘무환목’ 편

어떤가? 성리학(유학)의 시선에서 본다면-학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도 없고 저술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부끄러운-참으로 쓸모없는 허접 쓰레기 같은 지식과 정보가 아닌가?

이렇게 오늘날 우리 역사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극찬받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바로 ‘지식은 유희이자 놀이’라는 참신한 철학의 바탕 위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철학은 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긍정하는 또 다른 사유체계의 출발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학문과 지식은 더 이상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으로 전환된다. 이제 학문과 지식도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고, 잘하고, 즐거워서 하는 개인적인 취향과 기호의 문제일 뿐이다.

즉 학문과 지식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은 글쓰기는 개인적인 ‘완상과 기호의 미학’으로 재발견·재창조·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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