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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고 좋아하고 잘하고 즐거운 것”…18세기 전후 대가(大家)들의 글쓰기[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⑫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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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9  10: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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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 김홍도 풍속화. 선비들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 시.서.화를 즐기고 한쪽에서는 담소를 나누고 있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⑫

[한정주=역사평론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학문과 지식이 ‘놀이’인 이들에게는 저술과 글쓰기 또한 ‘놀이’였다. 거기에는 출세와 명예라는 목적도 없고 사람들을 교화하거나 교육하겠다는 목적도 없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즐거운 것”이고 도저히 그것들을 옮겨 적지 않을 수 없어서 글로 쓰는 것일 뿐이다.

이옥의 『백운필(白雲筆)』은 이렇듯 시간이 남아 한가로운 가운데 붓 가는 대로 써내려간 글쓰기의 와중에서 탄생한 하나의 기이한 저작이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궁벽한 곳에서 하는 일도 없는 지루한 시간을 딱히 보낼 방법이 없어서 글을 쓸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천문(天文)이니 성리(性理)니 석가(釋迦)니 도가(道家)니 등의 거대 담론과 지식은 자신이 진실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부득이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면 새와 물고기와 짐승과 벌레와 꽃과 곡식과 과일과 야채와 나무와 풀 등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이옥은 “담조(談鳥), 담어(談魚), 담수(談獸), 담충(談蟲), 담화(談花), 담곡(談穀), 담과(談果), 담채(談菜), 담목(談木), 담초(談艸)” 등 자연 사물을 10가지로 나누어 쓴 글을 엮은 다음 『백운필』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가운데 이옥의 완상(玩賞)과 기호(嗜好)와 글쓰기에 대한 ‘벽(癖:고질병)’을 잘 보여주고 있는 ‘물고기의 맛과 명성’ 그리고 ‘수숫대 속 벌레의 소요유’를 읽어보겠다.

“식품은 다만 맛으로 취하여야 하고 명성으로 취하지 말아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다들 이식(耳食)을 하기 때문에 이름만 취하고 맛으로 취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이웃집에 나이든 한 학사(學士)가 있었는데 손님을 대하여 청어국을 먹으면서 그 맛을 자랑하였다. ‘이것이 진짜 해주(海州) 청어(靑魚)입니다. 어찌 다른 생선과 비교할 수 있겠소?’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해주에서 배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그 맛이 진짜인지 믿을 수 없습니다.’

하녀가 차를 가지고 오자 물었다. ‘어디서 난 물고기이지?’, ‘북도(北道) 청어인데 인마(人馬)로 운반해온 것입니다.’

학사는 문득 국그릇을 밀쳐 밥상 아래에 놓으면서 말하기를 ‘나도 실상 그 맛이 약간 탁하다고 여겼소. 먹을 수 없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손님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

내가 맛을 본 바로는 행주(杏州)에서 나는 웅어회(葦魚膾)가 송홧가루 날릴 때 송어가 막 살이 오른 것만 못하고, 이른 봄 숭어국은 서리가 내린 뒤의 미꾸라지의 누런 기름이 국그릇을 뒤덮은 것만 못하다.

바닷가에 북어(北魚)와 같이 생긴 것이 있는데 ‘융(楡)’이라고 한다. 그 어족이 이미 번성하고, 그 성질이 또한 욕심이 많고 어리석어서 낚시를 잘하는 사람은 하루에 수백 마리를 잡는다. 그곳 사람들은 그것을 천하게 여기고 맛을 논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은 바닷가의 진미를 논할 때 융어(楡魚)를 제일로 꼽는다. 또한 어떻게 맛을 볼 것인지에 달린 것이다.

어찌 물고기를 먹는 데에 꼭 하수(河水)의 잉어라야 되는가?” 이옥, 『백운필』, 「담어(談魚)」, ‘물고기의 맛’

“일찍이 수숫대를 우연히 꺾어 그 한 마디를 쪼개어 보니 가운데가 텅 비어 구멍이 나 있었는데 위아래로 마디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구멍의 크기는 연근의 구멍만 한데 벌레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벌레의 길이는 기장 두 알 정도이고 꿈틀거리며 움직여 생기가 있는 듯하였다. 내가 위연(喟然)히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즐겁구나, 벌레여! 이 사이에서 태어나 이 사이에서 자라고, 이 사이에서 기거하며 이 사이에서 먹고 입고 하면서 장차 또 이 사이에서 늙어가겠구나. 이는 윗마디로써 하늘을 삼고 아랫마디로서 땅을 삼으며 수숫대의 하얀 속살을 먹이로 삼고 푸른 껍데기를 집으로 삼아서 해와 달, 바람과 비, 추위와 더위의 변화가 없으며 산하·성곽·도로의 험난함과 평탄함에 근심이 없으며 밭 갈고 베 짜고 요리하는 것을 마련할 게 없고 예악과 문물의 찬란함도 없구나.

저것이 인물, 용과 호랑이, 붕새와 곤(鯤)의 위대함을 알지 못하므로 그 자신에게 자족하여 눈이 먼 줄을 모른다. 궁실과 누대의 사치스러움을 알지 못하므로, 그 거처에 자족하여 좁다고 여기지 않는다. 의복의 무늬, 수놓은 비단, 기이한 짐승의 털, 채색 깃털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므로, 그 나체에 자족하여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는다. 술과 고기 그리고 귀한 음식의 맛을 알지 못하므로, 그 깨무는 것에 자족하여 굶주린다고 여기지 않는다.

귀로 들음이 없고 눈으로 봄이 없으며 이미 그 수숫대의 하얀 속살을 배불리 먹다가 때때로 답답하고 무료하면 그 몸뚱이를 세 번 굴려 윗마디에 이르러 멈추니 대개 또한 하나의 소요유(逍遙遊)이다. 어찌 넓고 넓은 여유로운 공간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즐겁구나, 벌레여!’

이는 옛날의 지인(至人)이 그것을 배우면서도 아직 완전히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이옥, 『백운필』, 「담충(談蟲)」, ‘수숫대 속 벌레의 소요유’

18세기를 전후해 한 시대를 풍미한 글쓰기의 대가(大家)들은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고 잘하고 즐거워하는 것에서 나온 생각과 감정 그리고 학문과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글쓰기를 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강력한 미학적·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글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한 글에는 언제나 글 쓰는 이의 강렬한 개성과 독창적인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한다. 그래서 글은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고, 잘하고, 즐거운 것’에서 나와야 가장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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