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렇게 미친 사람이 많은데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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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렇게 미친 사람이 많은데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12.14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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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②
▲ 고려 무신 정권시기의 유명한 문인이자 관료인 백운 이규보와 그이 글을 모은 『동국이상국집』.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②

[한정주=역사평론가] 한국사를 뒤져보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글을 남긴 최초의(?) 문인은 유학, 특히 성리학에서 정신적으로 자유로웠던 고려 시대의 인물 이규보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하늘과 땅, 그 어떤 것도 나를 얽어매지 못할 것이다”라고 밝힌 평생의 자서전 ‘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을 남겼다.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선생의 자호다. 이름을 숨기고 호를 드러낸 것이다. 그가 이렇게 자호하게 된 취지는 선생의 ‘백운어록(白雲語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집에는 자주 식량이 떨어져서 끼니를 잇지 못했으나 거사는 스스로 유쾌히 지냈다.

성격이 소탈하여 단속할 줄을 모르며 우주를 좁게 여겼다. 항상 술을 마시고 스스로 혼미했다.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흔쾌히 그리로 가서 잔뜩 취해가지고 돌아왔으니 아마도 옛적 도연명(陶淵明)의 무리이리라.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이렇게 세월을 보냈다. 이것은 그의 기록이다. 거사는 취하면 시를 읊으며 스스로 전(傳)을 짓고 스스로 찬(贊)을 지었다. 그 찬은 이러하다.

‘뜻이 본래 천지 바깥에 있으니 하늘과 땅도 그를 얽매지 못하리라. 장차 원기(元氣)의 모체(母體)와 함께 무한한 공허의 세계에 노닐리라.’” 이규보,『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거사전’

더욱이 이규보는 자신을 보고 미쳤다고 조롱하는 이들에게 보란 듯이 “나는 행동은 미친 것 같지만 그 뜻은 바른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진정 미친 것이 출세(出世)와 이욕(利慾)에 눈 먼 세상 사람들이 따져보자고 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미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누가 감히 나를 보고 미쳤다고 웃느냐고 질타한다. 진실로 독창적인 정신과 독보적인 자아의식이 배어 있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세상 사람들 모두 백운거사(白雲居士)더러 미쳤다지만 그는 미치지 않았다. 아마 그에게 미쳤다고 하는 자가 더욱 더 미친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대체 무얼 보고 들어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백운거사가 과연 어떻게 미쳤던가? 벌거벗고 맨발로 물이나 불에 뛰어들던가? 이가 으스러지고 입술에 피가 나도록 모래와 돌을 으적으적 씹던가? 하늘을 쳐다보고 욕을 하고, 발을 구르며 땅을 야단치던가? 산발을 하고 울부짖고, 잠방이를 벗고 뛰어다니던가?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여름에도 뜨거운 줄 모르던가? 바람을 잡으려 하고 달을 붙들려 하던가?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어찌 미쳤다 하는 건가?

아! 세상 사람은 한가하게 지낼 때에는 생김새나 말씨며 옷차림이 제법 사람 같다가도 하루아침에 벼슬자리에 앉으면 똑같은 손으로 하는 일이 그때그때 다르고, 마음은 하나인데 이랬다저랬다 한결같지 못하며, 보고 듣기를 똑바로 하지 못하고, 동서(東西)도 분간하지 못하게 되며, 어지러움과 혼란에 뒤덮이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바른길로 돌아갈 줄 모르게 되어 고삐를 놓치고 궤도에서 벗어난 마차처럼 뒤집혀 엎어지고야 말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겉으로는 버젓할지 모르지만 속은 실상 미친 사람이다. 이런 미친 사람은 앞에서 말했던 물과 불에 뛰어들고 모래와 돌을 깨물어 씹는 부류보다 더 심하지 않겠는가?

슬프다! 세상에는 이렇게 미친 사람이 많은데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어느 겨를에 거사를 보고 미쳤다고 웃는 것인가? 거사는 미치지 않았다. 행동은 미친 것 같아도 그 뜻은 바른 사람이다.”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백운거사어록(白雲居士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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