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도 못사는 인생…쉬지도 못하고 헉헉거리며 일해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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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도 못사는 인생…쉬지도 못하고 헉헉거리며 일해 무엇하겠는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12.2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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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③
▲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 중 '벼타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③

[한정주=역사평론가]물론 유학(성리학)이 국시(國是)였던 조선에 들어와서도 시속(時俗)의 규범에 초탈했던 일부 문인들은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자아상을 드러낸 글을 지어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이 30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천재 문인 성간(1427-1456년)은 스스로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용부(慵夫)로 자처하면서 ‘용부전(慵夫傳)’이라는 자서전 격의 글을 써서 부지런함을 덕목으로 삼은 당시 사회의 도덕규범을 향해 “백년도 못사는 인생에서 아침저녁으로 뛰어다니며 쉬지도 못하고 헉헉거리며 일을 해서 무엇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산수자연 속에서 시와 술을 친구로 삼는 것에는 부지런하지만 세상사의 명예와 이욕에는 게으른 자신을 높여 찬양한다.

“총각 시절 뜻이 높았던 그는 매번 하늘을 보고 크게 휘파람 불며 ‘남아로 세상에 태어나서 마땅히 곽자의(郭子儀: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사람)와 이광필(李光弼: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사람)을 본받을 것이지 어찌 티끌 사이에 이지러지게 사는 소인(小人)을 본받을 것인가’ 했다.

용부(慵夫: 게으름뱅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무릇 모든 계책이 한결 같이 게으름에서 연유하므로 세상에서 용부라고 부른다. 관직은 산관(散官)의 직장(直長)에 이르렀다.

집에는 책이 오천 권이 있으나 게을러서 펴보지 않는다. 머리에는 종기가 나고 몸에는 옴투성이지만 게을러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방에서는 앉아 있는 것이 귀찮고 길에서는 걷기가 귀찮아 멍청하게 서 있는 것이 똑똑치 못하고 흐리멍덩하여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허수아비와 같았다.

온 집안이 용부를 염려하여 무당에게 데리고 가서 빌기까지 했으나 끝내 어쩌지는 못했다.

근수자(勤須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미 학문이 높은 수준에 이르러 개연히 사람들을 구제해보겠다는 뜻을 가졌다. 용부는 마침 게으름의 병으로 다리는 쭉 뻗고 머리는 풀어헤친 채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앉아 있었다. 근수자가 용부의 게으름을 깨우치려고 말을 꺼냈다.

‘예로부터 사람이란 부지런해야만 살고 게을러서는 실패하지 않는 법이 없네. 그러므로 성인은 모두 부지런함으로 자신의 몸을 지켰네.

문왕은 해가 기울 때까지 쉴 겨를이 없었고, 우임금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서 썼네. 부지런함은 이와 같이 편안히 지낼 수 없는 것이네.

봄에 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비가 내리며 가을에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일이 사철에 따라 두루 영향을 미쳐 세상 만물을 길러내는 것은 하늘의 부지런함일세. 이러한 하늘의 뜻, 곧 부지런함은 배우고 따라야 하는 것으로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네. 하늘의 뜻을 거스름은 좋지 못한 일일세.’

용부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그대를 가르치려 했는데 도리어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가르치려 하는가? 백년도 못 사는 우리네 인생에 마음과 몸이 다 피곤하여 낮에는 헉헉거리며 일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다니면서 쉬지 못하고 밤에는 지쳐서 푹 잠들지 못하고 자는 둥 마는 둥 잠꼬대하다가 깨어나게 되니 그대가 말하는 부지런함이 다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덕이 높은 사람은 이러하지 않다.’

그리고는 창을 들고 그를 내쫓았다. 근수자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내가 방법을 알았다’고 했다. 이에 그릇에 술을 가득 채우고 정나라 음악처럼 야들야들한 음악을 갖추어서 짬을 보아 바치면서 말했다.

‘오늘은 바람 기운이 따스하고 온화해서 새가 산에서 우짖고 있기에 그대와 더불어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용부가 흔연히 웃으면서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벌써 신발을 신고 문간에 나아가고 지팡이를 짚고 길로 들어섰다. 그러자 수십 년 동안의 게으름이 일시에 돌연 다 없어지고 말았다.

용부는 근수자와 함께 술잔을 들면서 크게 껄껄 웃었다. 그 뒤에는 부지런함으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성간, 『진일유고(眞逸遺稿)』, ‘용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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