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군자들이 거문고를 곁에서 떼어두지 않았던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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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군자들이 거문고를 곁에서 떼어두지 않았던 뜻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12.28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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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④
▲ 성협의 풍속화 ‘탄금’.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④

[한정주=역사평론가] 성간보다 약간 뒤늦은 시기에 활동한 『용재총화(慵齋叢話)』의 저자 성현(1439-1504년) 역시 자신을 가리켜 ‘실속 없고 겉만 번드르르한 쓸모없는 자’라는 뜻의 ‘부휴자(浮休子)’라고 부르면서도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세상을 향해 “나는 우활하지 않다(我則不迂)!”라고 일갈했다.

여기에서 ‘우활(迂闊)’이란 ‘사리에 어둡고 물정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부휴자(浮休子)는 청파거사(靑坡居士)의 자호(自號)다. 거사는 솔직하여 꾸밈이 없으며 순수하고 근엄하며 질박하고 곧았으므로 남에게 뇌물을 통하지 않았고 권세의 길에 서지 않았다.

환영하는 잔치나 송별하는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고 집안사람을 위해 산업을 경영하지 않았다. 소득이 있으면 풍성한 음식과 아름다운 의복도 넉넉하게 여기지 않았고 소득이 없으면 추한 의복과 궂은 음식도 부족하게 여기지 않았다. 성질이 부지런하여 경전과 역사서 보기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이 우활하다고 조롱하자 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난 아마 우활할 것이야! 난 세상일에는 우활하지만 공부에는 우활하지 않아. 남들이 보기에는 우활해도 나 자신을 요리하는 데는 우활하지 않아. 경전을 읽어서 내 마음을 다스리고 역사서를 읽어 사업에 베풀며, 이와 같이 지낼 따름이거든. 난 아마 우활할 것이야!’

거사는 시 짓기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이 시가 졸렬하다고 조롱하자 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않아. 시란 성정을 사실대로 묘사하고 사물의 이치를 갖추고 세간 풍속을 증험하며 선과 악을 알 수 있게 하지. 안으로는 흥에 감촉됨에 따라 생각을 짜내며 세월을 보내고 나아가서는 아·송 같이 훌륭한 시를 지어 정사를 빛나게 하는 거라네. 어찌 한갓 조롱하고 울부짖는 일만 일삼겠나! 세상에서 이익만 노리고 학문에 깜깜한 자가 바로 우활한 것이지, 나는 우활하지 않아.’

거사는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이 방탄(放誕)하다고 조롱하자 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음을 교묘하게 하지 말고 음률을 고르자는 것이지. 음탕하고 안일할 정도로 방종하지 말고 중화(中和)의 덕을 이루려고 하네. 그저 읊고 노래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가슴속의 사특하고 더러운 기운을 씻어내자는 것이야. 이것이 바로 옛날 군자들이 까닭 없이는 거문고를 곁에서 떼어두지 않았던 뜻이라네. 내가 과연 방탄한 것일까?’

거사는 산수 유람을 좋아했다. 어떤 사람이 소산(蕭散)하다고 조롱하자 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동산 숲을 거니는 것은 취미를 이루려 해서요, 이따금 어부를 따라 낚시질하는 것은 들에 살려고 계획해서라네. 이는 하루의 한가한 틈을 타서 느긋하게 지내는 즐거움을 이루는 것일세. 이러는 나는 돌을 베개하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한다 할 것일까?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섰다 할 것일까?’

어떤 사람이 몸 닦는 도에 대해 묻자 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담담하여 아무런 경영이 없고 공평하여 사심도 없으며 궁해도 불만이 없고 곤해도 주린 빛이 없으며 한가해서 생각도 수고로움도 없고 자유로워 칭찬도 허물함도 없고 방황하여 욕심도 사사로운 정도 없으며 희이(希夷)하여 옳음도 그름도 없고 황홀하여 형(形)도 상(象)도 없이 한다면 거의 도에 이르러서 지인(至人)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네.’

어떤 사람이 자호에 대한 뜻을 묻자 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서 세상에 몸을 붙여 사는 일은 둥둥 뜬 것과 같고 죽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휴식과 같아 높은 수레와 천리마를 몰며 인끈을 허리에 차고 사제(沙堤)를 달리는 것은 우연히 오는 벼슬이지 나의 소유는 아니야. 정신을 거두고 숨을 거두어 형백으로 화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사람이 진(眞)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나도 면할 수는 없네.

안으로 도를 즐기며 살고 죽는 일로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면 둥둥 떠서 살고 있다 해서 무슨 영광이며, 휴식하는 것처럼 죽는다고 해서 무엇이 슬프겠나. 나는 도를 배우는 것이지 내 몸 밖의 사물을 사모하는 것은 아닐세.’

거사를 조롱하고 질문을 던졌던 그 사람은 혀를 내두르고 눈을 번득이며 달아났다. 이에 찬(贊)을 짓는다.

‘산의 높음은 개미 언덕들을 포개어 하늘에 다다르고 / 물의 깊음은 물줄기를 모아서 못을 이루며 / 선생의 도는 모든 선(善)을 합해서 대전(大全)을 이루었다.’” 성현,『동문선(東文選)』, ‘부휴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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