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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시끄러운 일 내 이미 잊었노라”[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⑧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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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4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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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 정선,『서원아회(西園雅會)』첩 중 ‘한양전경(삼승조망)’, 1740년, 견본담채, 66.7x39.7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⑧

[한정주=역사평론가] ‘선귤당(蟬橘堂)’은 젊은 시절 이덕무가 ‘영처(嬰處)’와 더불어 가장 좋아했던 호였다. 그래서 그는 ‘선귤’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세제(歲題)’라는 글에서는 “내가 예전 남산 부근에 살고 있을 때 집의 이름을 선귤(蟬橘)이라고 하였다. 집이 작아서 매미(蟬)의 허물이나 귤(橘)의 껍질과 같다는 뜻에서였다”라고 적었다. 짧은 글이지만 작고 초라한 집에 살면서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했던 이덕무의 기백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11월14일 술에 취해(十日月十四日醉)’라는 시에서는 깨끗하고 향기로운 마음가짐을 ‘선귤’에 비유해 노래하기도 했다.

“깨끗한 매미와 향기로운 귤 마음에 간직하니 / 세상사 시끄러운 일 내 이미 잊었노라 / 불을 공중에 살라본들 저절로 꺼질 것이고 / 칼로 물을 벤다한들 다시 무슨 흔적이 있겠는가! / ‘어리석다’는 한 글자를 어찌 모면하겠냐마는 / 온갖 서적 널리 읽어 입에 담을 뿐이네 / 넓고 넓은 천지간 모옥(茅屋)에 살며 / 맑은 소리 연주하며 밤낮을 즐기네.” 『청장관전서』, ‘11월14일 술에 취해’

세상 사람들이 죽자 살자 덤벼들어 얻으려고 하는 부귀나 명예나 출세 따위는 이덕무에게 그냥 세상사 시끄러운 일일 따름이다. 이러한 것들은 불로 허공을 사르거나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허무하고 망령된 일이다. 그에게는 오로지 ‘매미의 깨끗함’과 ‘귤의 향기로움’을 간직하려는 맑고 맑은 마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을 말하다’는 뜻의 ‘자언(自言)’이라는 글에서는 세속의 관심사인 이욕(利慾)에 맞춰 살아보려고 했지만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다시 처음의 본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가난하지만 ‘매미(蟬)’처럼 마땅히 자신이 거처할 곳을 알아 깨끗함을 지키고 남루하지만 귤(橘)처럼 자신을 갈고 닦아 추하지 않는 향기로움을 잃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변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변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오락도 즐기지 않고, 가볍거나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성실하고 신중하며, 단정하고 정성스러웠다. 그런데 성장한 후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세상 풍속과 어울려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 세상 사람들은 너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여, 그 후부터 입은 천박하고 상스러운 말을 내뱉고, 몸은 가볍고 덧없이 행동했다. 이렇게 사흘을 보내고 난 후 도저히 편하고 즐겁지 않자 ‘내 마음은 변할 수 없다. 사흘 전에는 내 마음이 가득 차 모든 일이 형통한 듯했는데, 그 후 사흘 동안은 공허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이기적인 욕심에 대해 말하면 기운이 빠지고 산림(山林)에 대해 말하면 정신이 맑아지며 문장에 대해 말하면 마음이 즐겁고 학문에 대해 말하면 뜻이 가지런해졌다.

완산 이자(李子: 이덕무)는 옛 학문과 문장에 그 뜻을 두었기 때문에 지금 세상에는 어둡고 사리가 밝지 못하다. 그래서 산림이나 문장, 학문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그 밖의 세상사에 대해서는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또한 세상사에 관해 들어도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신의 바탕을 오로지 한 가지로 삼고자 했다. 이 때문에 선귤(蟬橘)을 취하고, 말은 고요하고 담백했다.“ 『청장관전서』, ‘자언’

더욱이 ‘벌레가 나인가, 기와가 나인가’라는 뜻의 ‘충야와야오(蟲也瓦也吾)’라는 제목의 시(詩)에서는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온전한 자아를 찾고자 일상적 삶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보통 사람, 곧 타자화된 자아를 부정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벌레가 나냐 기와가 나냐 蟲也瓦也吾 / 너무나 기술도 재주도 없네 苦無才與技 / 뱃속에는 불 같은 기만 있어 腹有氣烘烘 / 보통사람과 크게 다르네 大與人殊異 / 사람들 백이더러 탐하다 이르면 人謂伯夷貪 / 내 성을 내어 이를 갈고 吾怒切吾齒 / 사람들 영균(靈均)더러 간사하다 이르면 人謂靈均詐 / 내 성을 내어 눈초리가 찢어지네 吾嗔裂吾眥 / 가령 내가 입이 백 개가 있다 한들 假吾有百喙 / 한 사람도 들을 자 없으니 어찌하랴 奈人無一耳 / 우러러 하늘에게 말하니 하늘이 흘겨보며 仰語天天 / 숙이어 땅을 보니 땅도 눈곱꼈으며 俯視地地眵 / 산에 오르려 하니 산도 어리석고 欲登山山獃 / 물에 임하려 하니 물도 어리석네 欲臨水水癡 / 끌끌 혀를 차며 아아 咄嗚呼嗚呼 / 허허 하고 한탄하며 아이구아이구 하네 唉噓唏噓唏 / 관골·뺨·이마는 주름지고 얼어 터졌으머 顴頰顙皺皴 / 간·허파·지라는 볶아지고 달여졌네 肝肺脾熬煎 / 백이(伯夷)가 탐했고 영균이 간사했단들 夷與均貪詐 / 그대가 무슨 간여할 바이랴 於汝何干焉 / 술이나 마시고 취하기를 꾀하며 姑飮酒謀醉 / 글이나 보며 잠을 이룰 따름이네 因看書引眠 / 한탄하노니 차라리 잠들고 깸이 없이 于于而無訛 / 저 벌레와 기와로 돌아가련다 還他蟲瓦然” 이덕무, 『청장관전서』, ‘충야와야오(蟲也瓦也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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