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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이면 욕심을 내고, 악한 일이면 즐겨하지 않는다”[명심보감 인문학] 제1강 계선편(繼善篇)…착하게 살아라④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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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1  09: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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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강 계선편(繼善篇)…착하게 살아라④

[한정주=역사평론가] 太公曰(태공왈) 見善如渴(견선여갈)하고 聞惡如聾(문악여롱)하라 又曰(우왈) 善事(선사)는 須貪(수탐)하고 惡事(악사)는 莫樂(막락)하라.
(태공이 말하였다. “착한 일을 보거든 마치 목마른 것처럼 하고, 악한 일을 보거든 마치 귀가 먹은 것처럼 하라.” 또한 말하였다.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고,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

『천자문』의 예순일곱 번째 문장은 “磻溪伊尹(반계이윤)이 佐時阿衡(좌시아형)이다”인데, 그 뜻은 “반계와 이윤은 시기를 도운 여상과 아형이다”이다.

이 문장은 강태공(姜太公)이라는 별호로 유명한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과 고대 중국의 3왕조 중 하나인 주(周)나라의 문왕(文王: 여상을 만날 당시는 서백(西伯: 서쪽 제후들의 우두머리)의 지위)이 ‘반계(磻溪)’에서 만난 역사적인 사건을 묘사한 것이다.

문왕이 여상을 찾아갔을 때 여상이 폭군 주왕(紂王)이 다스리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피해 미끼도 없는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던 곳이 바로 반계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만남이 역사적인 사건이냐고? 태공망 여상을 만난 이후 책사이자 재상으로 등용한 다음부터 비로소 문왕과 그의 아들 무왕은 은(殷: 상(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개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명심보감』에 등장하는 ‘태공(太公)’이 다름 아닌 강태공 혹은 태공망이라고 불렸던 여상이다. 태공망 여상과 문왕(서백)의 만남은 그 역사적 중요성 때문인지 사마천의 『사기』에도 매우 드라마틱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문왕은 사냥을 나가면서 점을 쳤다. 그런데 점쟁이가 용이나 이무기 혹은 호랑이와 곰이 아닌 천하를 제패할 패왕(覇王)을 보좌할 책사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점쟁이의 예언처럼 문왕은 위수(渭水) 북쪽 반계에서 여상을 만났다. 여상과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문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 태공(太公)께서 일찍이 ‘성인(聖人)이 나타나면 크게 흥성(興盛)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성인을 만났습니다. 나의 아버지 태공께서 오랜 세월 선생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면서 문왕은 자신의 아버지 태공(太公)의 ‘바람 혹은 기다림〔望〕’이라는 뜻을 담아 여상을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 여상의 나이가 72세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여상을 가리켜 ‘태공망 여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상이면 성(姓)이 여(呂)일 텐데 왜 사람들은 다시 그를 강태공(姜太公)이라고 할까?

이유는 이렇다. 그의 조상은 원래 강씨(姜氏)로 하(夏)나라의 개국시조인 우왕(禹王)을 도와 물과 땅을 다스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 공적으로 여읍(呂邑) 또는 신읍(申邑)에 봉해졌다. 고대 중국에서는 봉지(封地)에 따라 성을 사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원래의 성인 강씨를 좇아 강태공이라 부르기도 하고, 봉지의 이름인 여읍을 따라 여상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책사가 된 태공은 수많은 권모와 계책을 내놓아 천하의 여론과 민심을 문왕에게 돌려놓았다. 문왕이 죽은 이후에는 다시 그의 아들 무왕(武王)의 군사(軍師)와 국사(國師)가 되어 마침내 폭군 주왕을 정벌하고 은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주나라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천하를 제패한 무왕은 당연히 여상을 개국의 일등 공신으로 삼았다. 특히 큰 공로를 인정받은 여상은 중국 대륙의 가장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제(齊)나라를 분봉 받았다. 제나라를 다스리게 된 여상은 정치를 바로잡고 풍습과 예법을 바꾸고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키고 어업과 염업의 이익을 편리하게 했다.

이에 천하의 수많은 백성들이 제 발로 찾아와 제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제나라는 천자국인 주나라가 분봉한 수많은 제후국 가운데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여기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하고 있는 태공의 말을 통해 필자는 그가 문왕과 무왕을 인도하여 천하를 제패하고, 나아가 자신의 봉국(封國)인 제나라를 천하의 백성들이 너나없이 찾아와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었던 근본적인 힘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 힘이 ‘착한 일을 보면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하고 악한 일을 보면 귀가 먹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태도’라고 한다면, 그 두 번째 힘은 ‘착한 일이면 귀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욕심을 내고 악한 일이면 결코 즐겨하지 않는다는 정신’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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