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 일병 구타사망과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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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일병 구타사망과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8.06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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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23일 삼성본관 앞에서 거행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 노동자 고 황민웅 씨 9주기 추모집회. <반올림 제공>

육군 윤 일병 구타사망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육군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의 ‘일벌백계’ 발언 이후에는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로까지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총기난사, 관심병사 자살 등 최근 몇 년간 잇따르고 있는 군내 인권침해 관련 각종 사건사고들을 떠올리면 철저한 조사와 관련자 문책은 오히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러나 고쳐야 할 외양간은 비단 군 관련 사건사고만이 아니다. 군 사망사건이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졌다면 우리 사회 어느 한쪽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이 덮어지고 노동자들은 죽고 또 죽어가고 있다.

윤 일병 사건의 진실과 의혹이 군인권센터에 의해 폭로됐던 다음 날인 지난 1일 서울 삼성의료원에서는 47살의 이범우 씨가 부인과 어린 두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한 달 전 몸에 이상증상을 느끼고 사내 병원을 방문했지만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고 천안 단국대 병원에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 씨는 서울 삼성의료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한 달 만에 사망한 것이다.

그는 27년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한 노동자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반도체 부천공장에 입사해 1991년 온양공장 설립 당시부터 최근까지 23년간 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했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은 반도체 칩 조립라인으로 에폭시 수지류의 화학물질과 방사선 설비 등 백혈병 유해요인으로 지목되는 위험인자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사업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온양공장에서 사용하는 에폭시 수지류의 화학물질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의 발암물질이 생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때문에 온양공장은 이씨 외에도 2010년 3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박지연 씨(23세)를 비롯해 2012년 5월 뇌종양으로 사망한 이윤정 씨, 같은 해 난소암으로 사망한 이은주 씨, 백혈병 피해자 김은경 씨, 악성림프종 피해자 송창호 씨, 재생불량성 빈혈 피해자 유명화 씨 등 이미 림프조혈계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투병중인 피해 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반올림에 따르면 현재까지 제보된 온양공장 노동자의 피해사례만도 모두 35건에 달한다. 이 중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등 림프조혈계 질환 피해제보는 12명이다.

삼성반도체 공장의 피해노동자는 온양공장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실제 모델로 지난 2007년 3월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가 근무했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과 삼성LCD 천안·아산공장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가 150명 이상으로 불어난다.

이처럼 수년에 걸쳐 수많은 인명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삼성반도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노동자의 무덤’, ‘살인기업’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는데도 직업병 인정조차 쉽지 않다.

정부와 삼성전자의 대책이 없는 것 역시 당연하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 5월 권오현 대표의 공개사과와 함께 “성심성의껏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직업병 대책 마련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여전히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반올림은 전한다.

‘이미 잘하고 있으니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만이 반복적으로 되돌아올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각종 매스컴에서는 삼성전자가 중국과 인도에서 휴대폰 판매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줬다는 뉴스가 메인이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누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승엽 선수의 홈런에 반응을 보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삼성그룹 관계자의 한 마디 말은 톱뉴스가 되지만 수십명의 삼성 노동자가 죽고 죽어간다는 비극은 단신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육군 일병의 죽음과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은 국방과 경제라는 영역만 다를 뿐 진상조사와 책임자 문책이라는 접근법에서 전혀 다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건과 같이 또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대책을 막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피해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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