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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도 실언해서는 안 되고, 재물에 대한 태도는 분명해야 한다”[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⑯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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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2  07: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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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복, 선술집, 종이에 채색, 28.2x35.6cm,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간송미술관 소장>

[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⑯

[한정주=역사평론가] 酒中不語眞君子(주중불어진군자)요 財上分明大丈夫(재상분명대장부)니라.

(술이 취해도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아야 진정한 군자이고, 재물에 대하여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대장부이다.)

“술이 취해도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아야 진정한 군자”라는 말은 곧 참된 군자는 술에 취해도 예(禮)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까닭에 『예기』에서는 선왕(先王)이 주례(酒禮: 술 마실 때의 예절)를 만든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돼지를 기르거나 술을 빚는 것은 재앙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송사(訟事)가 더욱 많아지는 까닭은 술로 인한 폐단에서 재앙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왕(先王)은 술 마실 때 지켜야 할 주례(酒禮)를 만들어서 주인과 손님이 한 잔의 술을 주고받을 때에도 예의를 갖추어 서로 수많은 절을 하면서 마시도록 했다. 예의를 갖추고 정중하게 술을 마시게 해서 하루 종일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선왕이 술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폐단과 재앙을 방비하는 방법이다. 술자리를 마련하여 술을 마시는 이유는 서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또한 술자리에서의 음악은 덕(德)을 나누기 위해서이고, 술자리에서의 예의는 음란함을 막기 위해서다.”

예를 갖추고 술을 마시면 하루 종일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수 있고, 설령 술에 취해도 술로 인해 발생하는 재앙을 방비할 수 있기 때문에 주례를 만들었다는 얘기이다.

그래서일까? 『논어』에 기록되어 있는 공자의 음식예절을 살펴보면 공자는 매우 간소하고 절제된 방식을 고집하며 음식 섭취를 했는데 유독 술만은 정해진 양이 없었다. 그러나 절대로 정신이 흐려지거나 혹은 정신을 잃을 정도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술을 무척 좋아했고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지만 절대로 『예기』에서 밝히고 있는 주례에서 벗어나거나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한 『시경』 <소아(小雅)>에 실려 있는 ‘소완(小宛: 작은 비둘기)’이라는 시에서도 술 마실 때 ‘군자의 주례(酒禮)와 소인의 무례(無禮)’를 이렇게 비교하고 있다.

人之齊聖 飮酒溫克
彼昏不知 壹醉日富
各敬爾儀 天命不又

사람이 위엄 있고 지혜로우면 술을 마셔도 온화하고 공손하건만
저 어둡고 무지한 사람은 매일 술에 취해 더욱 교만해지기만 하네.
제각각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하리 천명(天命)은 다시 오지 않으니.

술에 취했을 때 그 사람됨을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재물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도 그 사람의 진정한 인품과 인격을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학이 추구하는 재물관은 어떤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의로운 재물’이다. 먼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부터 살펴보자.

<이인(里仁)> 편에 나오는 “君子(군자) 喩於義(유어의) 小人(소인) 喩於利(유어이)”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지만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는 뜻이다. 또한 “放於利而行(방어리이행) 多怨(다원)”은 “이익만을 좇아 행동하면 원망이 많은 법이다”는 뜻이다.

<헌문(憲問)> 편에 나오는 “見利思義(견리사의)”는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다시 <계씨(季氏)> 편에 나오는 “見得思義(견득사의)”는 “눈앞에 이득이 닥치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대개 사람들은 공자의 유학은 인의(仁義)를 숭상할 뿐 재물에 대한 이익(利益)을 좇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공자는 인의를 이익보다 우위에 두었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공자가 생각한 이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재물에 대한 이익을 좇되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이익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공자의 말은 군자는 의로움과 이로움을 마주할 때 이로움보다는 의로움이 앞서는 ‘의로운 이익’만을 추구하는 반면 소인은 의로움과 이로움을 마주할 때 의로움보다는 이로움이 앞서는 ‘의롭지 못한 이익’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항상 “不義而富且貴(불의이부차귀)는 於我如浮雲(어아여부운)이니라.” 즉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내게 마치 뜬구름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대장부는 “재물에 대하여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명심보감』의 가르침 역시 ‘의롭게 취한 이익(재물)’과 ‘의롭지 않게 취한 이익(재물)’을 명확하게 분별하고 오직 ‘의롭게 취한 이익(재물)’만을 추구하고 ‘의롭지 않게 취한 이익(재물)’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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