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살 만한 일은 흉내도 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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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살 만한 일은 흉내도 내지 말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6.20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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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⑳

[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⑳

[한정주=역사평론가] 太公曰(태공왈) 瓜田(과전)에 不納履(불납리)요 李下(이하)에 不正冠(부정관)이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다른 사람의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않는다.”)

앞의 이야기가 『열자』의 <탕문> 편에 나오는 ‘우공이산’의 고사성어와 관련이 있다면, 이번 구절은 ‘과전이하(瓜田李下)’라는 고사성어의 직접적인 유래가 되는 『문선(文選)』의 ‘군자행(君子行)’이라는 시와 관련이 있다.

『문선』은 위진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501~531년) 소통(蕭統)이 편찬한 명문 선집(名文選集)이다. 이 책은 고대 왕조인 주(周)나라 때부터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그리고 위진남북조의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에 이르기까지 130여명의 시인과 문장가의 750여편의 시문(詩文)을 선택해 30권으로 엮은 것이다.

『문선』은 수(隋)나라 시대에 널리 알려져서 당(唐)나라 때 크게 성행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제9대 임금인 성종(成宗)이 서거정 등에게 명하여 편찬한 우리나라의 명문장 선집인 『동문선(東文選)』의 모델이 된 서적이 바로 이 『문선』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시문학(詩文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하겠다.

어쨌든 여기 『명심보감』의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李下不正冠(이하부정관)”이라는 구절을 담고 있는 ‘군자행(君子行)’이라는 시의 전문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君子防未然(군자방미연) 不處嫌疑間(불처혐의간)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李下不正冠(이하부정관)
嫂叔不親授(수숙불친수) 長幼不比肩(장유불비견)
勞謙得其柄(노겸득기병) 和光甚獨難(화광심독난)
周公下白屋(주공하백옥) 吐哺不及餐(토포불급찬)
一沐三握髮(일목삼악발) 後世稱聖賢(후세칭성현)

군자는 미연에 재앙을 방비하고 의심받을 만한 곳에 몸을 두지 않네.
오이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쓰지 않네.
형수와 시동생 간에는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 않고 어른과 아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네.
근면하고 겸손하면 권세를 얻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유독 어렵네.
주공은 오두막집에 살면서 자신을 낮췄고 식사 중에도 입속의 반찬 내뱉었네.
머리를 감다가도 세 번이나 머리 쥐고 뛰쳐나왔으니 후세 사람들이 성현이라 칭송하네.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애초부터 피하는 것이 좋다는 뜻을 담고 있는 ‘과전이하(瓜田李下)’라는 고사성어가 여기 ‘군자행’의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李下不正冠(이하부정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이 시의 경구에 따르면 군자는 사건이 일어나거나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막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받을 만한 곳에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아야 한다.

오이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으면 몰래 오이를 따러왔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쓰면 마치 오얏을 따려고 한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의심을 받을 만한 곳에는 아예 가지도 말고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시늉도 내지 말라는 얘기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여기 『명심보감』에는 ‘태공왈(太公曰)’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엮은이의 실수이다. ‘군자행’이라는 시는 태공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군자행’의 지은이는 누구일까? 일부에서는 ‘군자행’을 조조의 아들인 조식의 시로 보기도 하지만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무명씨(無名氏) 곧 작자 미상의 작품이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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