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나오는 말은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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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나오는 말은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6.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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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㉓
▲ 후한(後漢) 말기에 활동했던 학자로 경전에 박학했고 문장과 역사에 뛰어났고 음률에 정통했던 채옹.

[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㉓

[한정주=역사평론가] 蔡伯喈曰(채백개왈) 喜怒在心(희노재심)하고 言出於口(언출어구)하나니 不可不愼(불가불신)이니라.

(채백개가 말하였다. “기쁨과 분노는 마음 속에 있고 말은 입에서 나오므로 신중하고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채백개는 후한(後漢) 말기에 활동했던 학자이다. 백개는 자(字)이고 이름은 옹(邕)이다. 경전에 박학했고 문장과 역사에 뛰어났고 음률에 정통했던 채백개는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영제(靈帝) 때 환관들의 국정 농단을 비판했다가 크게 미움을 사 10여년 넘게 유배객 혹은 도망자 신세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다 채백개는 동탁이 국정을 농단한 환관 세력인 십상시(十常侍)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후 중앙 정계로 복귀하게 된다. 동탁이 채백개의 학식과 덕망을 존경했기 때문이다.

채백개는 잔인무도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동탁의 측근에서 바른 말로 잘못을 간언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왕윤이 여포를 이용해 동탁을 죽이고 시체를 저잣거리에 버린 이후 채백개의 불행은 다시 시작된다.

왕윤이 주최하는 회의에서 채백개는 그동안 자신의 간언을 뿌리치지 않았던 동탁의 죽음을 탄식하며 추모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에 크게 분노한 왕윤은 “사사로운 은혜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선비가 지녀야 할 큰 지조를 배반했다”고 하면서 채백개를 체포한 다음 즉시 감옥에 가두고 옥중에서 처형했다.

당시 채백개는 크나큰 수치라고 할 수 있는 ‘얼굴에 글씨를 새기거나 발가락을 자르는 형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왕윤에게 자신이 집필하고 있던 한나라의 역사서를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애걸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천 년의 세월이 지난 20세기 초에 활약한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모든 사람이 죽기를 바랐던 간신이자 역적인 동탁의 죽음조차도 추모한 채백개는 “감히 모든 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말을 하는 용기가 있었다”고 높여 평가했다.

그렇지만 채백개는 자신이 남긴 “말은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여기 『명심보감』의 경구와는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는 참지 못했던 강직한 성품과 언행 때문에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참화(慘禍)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말로 인해 비참한 죽음을 맞은 채백개의 이야기는 『시경』 <대아(大雅)> 편에 실려 있는 ‘억(抑)’이라는 제목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無易由言 無曰苟矣
莫捫朕舌 言不可逝矣

흰 구슬에 난 흠집은 오히려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입에서 나온 저 말의 잘못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네.
가벼이 쉽게 말하지 말고 함부로 지껄여서 허물을 짓지 말라.
누구도 혀를 잡아서 막아주지 않고 입에서 나온 말 뒤쫓아 잡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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