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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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6.2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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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㉔
▲ 공자의 10대 제자 중 자공과 더불어 언어, 즉 언변이 가장 뛰어난 인물인 재여.

[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㉔

[한정주=역사평론가] 宰予晝寢(재여주침)이어늘 子曰(자왈) 朽木(후목)은 不可雕也(불가조야)요 糞土之墻(분토지장)은 不可圬也(불가오야)니라.

(재여가 낮잠 자는 모습을 보고 공자가 말하였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

재여는 자아(子我) 또는 재아(宰我)라고도 부르는 공자의 제자이다. 앞서 공자의 10대 제자 중 자공과 더불어 언어, 즉 언변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언급한 적이 있는 재아가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재여이다.

그런데 공자의 언행과 그의 제자들에 관해 기록한 책인 『논어』와 『공자가어』 그리고 『사기』 <중니제자열전> 등을 살펴보면 공자와 같은 좋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대표적인 사례를 재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제자의 덕목이란 스승의 가르침과 뜻을 잘 배우고 받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 학문과 실천에 힘써 자신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제자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스승이 좋은 가르침과 엄청난 지식을 전해주어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노력하는 제자만큼 좋은 제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공자가 보기에 자신의 제자 중 안연, 자로, 증자 등은 ‘스스로 노력하는 제자’였다. 공자에게 그들은 좋은 제자였다고 하겠다. 반면 ‘스스로 노력하지도 않고 잘못이 있어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 제자’는 나쁜 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자에게 ‘가장 나쁜 제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공자에게 가장 많은 꾸중을 들었던 제자 재여였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 중 언변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재여와 자공이라고 했다. 그러나 말솜씨가 뛰어난 재여 때문에 공자는 사람을 볼 때 말뿐 아니라 행실까지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탄했다. 공자는 말만 앞세우고 정작 행동은 하지 않는 재여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더욱이 재여는 말솜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공자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따지길 좋아하는 제자였다. 『논어』와 『사기』 <중니제자열전>에는 재여를 꾸짖는 공자와 공자에게 따져 묻는 재여의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먼저 여기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한 『논어』 <공야장(公冶長)> 편 속 공자와 재여의 모습을 살펴보자.

“낮잠을 자는 재여(宰予)를 보고 공자가 말하였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 너(재여)처럼 게으른 자를 무슨 말로 꾸짖겠느냐! 처음에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말만 듣고 행실을 믿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행실까지 살피게 되었다. 재여가 나를 바꿔놓았다.”

또한 『사기』 <중니제자열전>에는 재여에게 크게 실망한 공자의 또 다른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뛰어난 말솜씨를 자랑한 재여는 어느 날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다가 따지듯이 질문을 했다.

“3년 상(喪)은 너무나 깁니다. 군자(君子)가 3년간이나 예(禮)를 닦지 않으면 예(禮)는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또 3년 동안이나 음악을 멀리한다면 음악은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1년이면 묵은 곡식은 이미 떨어지고 햇곡식이 나옵니다. 나무를 비벼 얻은 불씨도 1년이면 새로운 나무로 바꾸어 불씨를 일으킵니다. 저는 1년 상(喪)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공자가 재여에게 물었다. “(3년 상을 치르지 않고)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는 편안하겠느냐?” 그러자 재여는 “편안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공자는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해라. 군자는 부모의 상중(喪中)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다. 따라서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음악을 듣지 않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재여가 나간 후 공자는 “재여는 참으로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 자식은 태어난 후 3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3년 상(喪)을 치르는 예의를 갖춘 것이다. 재여도 자신의 부모에게 3년 동안 사랑을 받았을 텐데…”라며 크게 탄식했다고 한다.

공자는 “달변(達辯)보다 어눌(語訥)한 사람이 더 어진 사람에 가깝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마도 재여를 지목한 말인 듯하다. 화려한 말솜씨와 논변에 능숙했던 재여는 아무리 공자가 가르치고 꾸짖어도 도통 자신의 잘못과 단점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여의 죽음을 보면 그가 공자의 제자 중 ‘최악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재여는 죽으면서까지 공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재여는 제(齊)나라의 대부(大夫) 전상(田常)의 반역 사건에 가담하여 집안이 멸망하는 재앙을 당했다. 그의 부끄러운 죽음은 『공자가어』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 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재여는 자(字)가 자아로 노(魯)나라 사람이다. 제나라에서 임궤(臨簣)의 대부가 되었다. 전상과 난을 일으켜 삼족(三族)이 죽임을 당했다. 공자는 이 사건을 크게 부끄럽게 여겼다. 공자는 ‘이 재앙의 뿌리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재여 자신에게 있었다’라고 말했다.”

재여는 아무리 좋은 스승을 만나도 스스로 노력하고 고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힘써 배우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학문과 공적을 이루는 데는 훨씬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재여의 이야기가 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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