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하얀 꽃내음에 취한 활터…전주 천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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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하얀 꽃내음에 취한 활터…전주 천양정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8.07.13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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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가는 길]④ 소선계후(紹先啓後)…전통 활쏘기의 맥을 잇다

전국을 오르내리던 장마전선은 천만다행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잠깐 한여름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태풍까지 동반한 장맛비의 기세가 자칫 일정에 차질이나 불러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게 기우에 그쳤다.

그렇다고 장마전선이 물러간 것은 아니었다.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 더 강력한 전선을 불러 모으면서 금방이라도 북상할 듯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하기야 장맛비가 제때 제법 내려줘야 들판의 곡식도 여름 땡볕에 더욱 잘 여문 법이고, 태풍도 적당히 몰려와 바닷물을 뒤집어엎어야 불순물이 정화되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닌가.

북미 크리크족과 아파치족 인디언들이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이라고 부르는 7월의 무더위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종의 홍역쯤으로 받아들이는 게 마음 편하다. 아마 그때쯤이면 오히려 지금 장대처럼 내리꽂는 장맛비가 더 그리워지겠지.

▲ 다가교 위에서 본 전주천변의 다가공원 전경. <사진=한정곤 기자>

사흘 동안 500mm에 육박하는 장대비가 쏟아졌다는 전주천(全州川)도 제법 물살이 거세다. 찰랑찰랑 흐르는 물길을 따라 천변가 3km에 걸쳐 쭉 늘어선 버드나무가 가녀린 여인의 옷깃처럼 춤을 추는 듯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는 광경이 이채롭다.

1970년대 후반 썰렁했던 천변의 허허벌판을 조금이나마 채워보겠다고 식재한 수양버들이 40여년이 흐른 오늘날 울창한 군락으로 자라 이처럼 장관을 이루게 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주천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진 버드나무 행렬은 다가교(多佳橋)까지 길게 뻗었다.

이쯤에선 전주팔경의 하나인 ‘다가사후(多佳射帿)’, 즉 다가천변 물이랑을 끼고 백설같이 날리는 이팝나무 꽃 속에서 과녁을 겨누는 한량들의 풍경을 기대해 봄직하다. 봄철 푸르름이 돋기 시작하는 수양버들을 따라 5월의 이팝나무 꽃내음을 쫓다 보면 어느덧 하얀 꽃무더기가 감춘 활터가 나타난다는데 우매한 인간의 몸은 제철을 맞추지 못한다.

◇ 전주팔경의 하나인 ‘다가사후’의 절경
전주시를 남에서 북서 방향으로 휘감고 흐르는 전주천의 서쪽에 위치한 다가산은 산이라고 하기에는 지형도에 등고선조차 표기되지 않을 만큼 낮은 야산이다. 일찍이 수목이 울창하고 물에 비치는 바위의 절경이 유명해 전주시민의 휴양지 역할을 했다.

다가(多佳)는 ‘아름다운 사람 많아 미인은 얼굴이 옥과 같다네(多佳人美者顔如玉)’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가사후의 주인공격으로 한량들이 모이는 활터는 전주천을 가로지르는 다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 다가공원 초입에 고즈넉하게 앉아있다. 바로 천양정(穿揚亭)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1830년(순조 30년) 건립됐으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돼 있다.

천양정 사정(射亭) 건물과 처마를 맞대 한 몸처럼 보이는 사대(射臺) 건물은 맞배지붕에 측면 풍판을 가설해 고풍스런 전통 활터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외관상으로는 얼핏 조화를 이루는 듯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 현대식 시설을 접하게 되면 잠깐 당황스럽다. 본래의 천양정 사정 건물 전체를 정면에서 조망하는 데에도 절대적인 방해꾼이다. 전국체전을 앞두고 지난 2003년 신축한 건물이라는 게 한병윤 천양정 사범의 말이다.

▲ 전주 천양정 입구. 측면 풍판을 가설한 맞배지붕의 사대건물이 고풍스럽다. <사진=한정곤 기자>

옛 사정 건물 앞에 별도의 사대를 조성한 활터는 비단 천양정만이 아니다. 설령 본래의 사정이 문화재로 등록돼 증개축이 불가능하더라도 대부분의 활터에서는 다양한 구조물을 설치해 사대로 활용하고 있다. 여름철 뙤약볕을 가리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으며 겨울철 한파에도 활을 내기 위해서다. 보존과 실용이라는 논리에 따른 갑론을박이 오가기도 하지만 실용을 앞세운 구조물 설치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대 왼쪽 관우당(觀優堂)이라는 현판이 걸린 콘크리트 건물은 천양정 사무실이다. 그리고 건너편, 즉 사대 오른쪽 3층 건물은 천양정 사장(射長) 사무실과 전라북도궁도협회 사무실 그리고 사원 사물함을 가득 채운 궁방이 있다. 2~3층은 상가로 임대를 놓은 수입원이다.

◇ “이성계 고사?”…양유기 백보천양에서 유래
천양정은 ‘화살로 버들잎을 꿰뚫는다’는 뜻으로 중국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 편과 『전국책(戰國策)』 <서주책(西周策)> 편에서 유래했다.

“楚有養由基者(초유양유기자) 善射者也(선사자야) 去柳葉百步而射之(거유엽백보이사지) 百發而百中之(백발이백중지) 左右觀者數千人(좌우관자수천인) 皆曰(개왈) 善射(선사) 有一夫(유일부) 立其傍曰(입기방왈) 善可敎射矣(선가교사의).”
(초나라에 활을 매우 잘 쏘는 양유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백 보나 떨어진 곳에서 버드나무 잎을 쏘아도 백발백중이었으므로 이를 지켜본 수천 명이 활을 잘 쏜다고 했다. 이때 어떤 자가 양유기의 옆에 가서 ‘잘한다. 활을 가르쳐 줄만하다’고 했다.)

혹자는 천양정 입구 안내문에 적힌 글귀처럼 “신묘한 활 솜씨로 이름 높았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설화나 전설 등의 관련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여러 문헌과 자료를 뒤져도 이성계와 버들잎에 얽힌 이야기는 신덕왕후 강씨와의 설화가 전부였다. 이성계가 황해도 곡산으로 사냥을 나가 온 종일 짐승을 찾아 헤매다가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고 급히 쫒았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처녀가 있어 물 한 모금을 청했더니 그 처녀는 물바가지에 버들잎 하나를 띄워 건넸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 전주 천양정 전경. <드론촬영=안한진>

이성계 고사설의 사실여부를 떠나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양유기 고사는 김구용의 『열국지』 <열국(列國)의 군웅(軍雄)> 편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날, 두 나라 군사는 굳게 지키기만 하고 싸우지 않았다. 초나라 장수 반당은 진영(鎭營) 뒤에서 시험 삼아 활을 쐈다. 잇따라 화살 세 대를 다 과격에 맞췄다. 모든 초나라 장수들은 반당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때 마침 양유기(養由基)가 왔다. 모든 장수들이 서로 말한다.
“귀신같은 활 솜씨가 오는 구려.”
이 말을 듣고 반당이 화를 발끈 낸다.
“내 활 솜씨가 어찌 양유기만 못하리오!”
양유기가 웃고 대답한다.
“그대는 과녁만 잘 맞추니 족히 기이할 것이 없소. 나는 백 보 밖에서 버들잎을 쏘아 맞춘 일이 있소.”
모든 장수가 묻는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소?”
“지난날 언젠가 백 보 밖에서 버들 잎사귀 하나를 적장(敵將)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한번 쏴봤지요. 그랬더니 화살이 그 잎사귀 한복판을 뚫고 나갔지요.”
모든 장수가 청한다.
“그럼 저기 버드나무가 있소. 한번 시험 삼아 다시 쏴보구려.”
“그거야 못할 것 없지요.”
모든 장수가 좋아한다.
“이제 양유기의 귀신같은 활 솜씨를 보겠구나!”
그들은 먹으로 버들 잎사귀 하나를 까맣게 칠했다. 양유기는 백 보 밖으로 물러서서 그 버들 잎사귀를 향해 활을 쐈다. 화살은 분명히 날아갔는데 떨어지는 걸 볼 수 없었다. 모든 장수는 달려가 보았다. 활촉은 바로 그 먹칠한 잎사귀의 한복판을 뚫고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반당이 말한다.
“이것은 우연에 불과하다. 만일 화살 세 대로 버들 잎사귀 세 개를 차례로 다 맞춘다면 내 그대의 솜씨를 인정하겠소.”
양유기가 대답한다.
“글쎄올시다. 그렇게 쏘아 맞출 수 있을지요. 그러나 시험 삼아 한번 해 보겠소.”
반당은 높고 낮은 버들가지의 잎사귀 셋에다 먹칠을 하고 다시 각기 ‘1·2·3’이라고 숫자를 적었다. 양유기는 버드나무 앞에 가서 고저(高低)의 순서 없이 먹칠을 해놓고 번호까지 적어 놓은 잎사귀 셋을 봤다. 그러고서 백 걸음을 물러섰다. 양유기는 화살 세 대에다 1·2·3이라고 숫자를 썼다. 그리고 잇따라 화살 세 대를 쐈다. 모든 장수가 버드나무로 달려갔다. 첫 번째 버들잎이 첫 번째 화살로 뚫려 있었다. 그 다음 두 번째 세 번째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장수는 양유기 앞에 가서 두 손을 끼고 공경하는 뜻을 표했다.
“그대는 참으로 신인(神人)이시오.”

이 같은 양유기의 고사에서 탄생한 사자성어가 ‘백보천양(百步穿楊)’이다. ‘백 번 쏘아 백 번 모두 맞힌다’는 뜻의 사자성어 ‘백발백중(百發百中)’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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