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존재하는 것”…『컬렉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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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존재하는 것”…『컬렉션의 맛』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8.07.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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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가볍게 시작한 수집 행위가 하나의 수집 철학으로 자리 잡으면서는 흔들림 없이 천천히 나아갈 수 있었다. 남이 하지 않은 독창적인 수집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이고, 나아가 세계화의 초석이 되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대부분의 컬렉터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처음부터 컬렉터가 되겠다고 작정하고 수집에 나서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때론 예술가를 꿈꾸었던 이들도 있었겠지만 예술작품을 자주 접하게 되고 예술작품에 빠져들면서 하나씩 둘씩 사들이다 보니 어느새 컬렉터가 되었다는 사례를 쉽게 접한다.

광고기획을 업으로 하고 있는 김세종 씨의 경우도 비슷한 경우다. 예술가가 꿈이었던 10대 후반부터 서예를 배우며 인사동과 꿈을 키운다. 국립 박물관뿐만 아니라 호암미술관(현 호암미술관 리움)과 호림박물관, 간송미술관 같은 사립 미술관·박물관은 그에게 최고의 컬렉션 학교였다. 덕분에 취미로 시작했던 난(蘭) 수집을 접고 자연스럽게 컬렉터의 길로 들어선다.

그 와중에 한국 고미술상 1세대로 유명한 김재숭 선생과 인연이 닿았고 우연히 일본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책들을 접한 후에는 예술을 사랑하고 미를 즐기는 정신적인 토대도 마련한다.

그는 그렇게 고미술품에 눈을 뜨며 컬렉션의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는다.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추사의 서예 등의 명품을 모으고 컬렉터들의 집을 탐방하면서 수집에 관한 나름의 안목과 철학까지 체득한다.

신간 『컬렉션의 맛』(아트북스)은 창작으로서의 컬렉션을 추구하는 그가 오랜 경험에서 우려낸 수집철학과 그 철학을 기반으로 수확한 민화 컬렉션에 관한 단상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자신이 선택하여 수집한 작품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였으므로 존재하는 것”이라며 “나의 관점으로 수집한 작품은 내 미적 취향과 미관의 결실로서 그 전체가 개성 있는 조형 세계를 구축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일한 장르도 차별화된 관점과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색다른 수집품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각각의 작품은 하나의 관점 속에서 서로 충돌하며 다듬어져 새로운 세계로 거듭난다고 강조한다. 즉 수집한 작품이 컬렉터의 가치관이나 관점의 결정체라는 의미다.

그가 가장 오랫동안 공을 들인 컬렉션은 민화다. 30대 초반에 치졸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제주 문자도’에 반해 수집하기 시작한 민화는 그의 수집 철학이 오롯이 반영된 득의의 결실이다. 민화 중에서도 문자도(文字圖)를 가장 많이 수집했는데, 이는 제주 문자도의 해학성과 조형성에 깊이 매료되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조형적인 관점에서 민화를 수집한다. “민화는 순수 회화로 세계적이다”는 믿음 때문이다.

미술사가들처럼 관념이나 상징에 취중하다 보면 조형미를 놓치기 쉽다. 한 가지 사례로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儀)·염(廉)·치(恥) 같은 문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도 중 충(忠) 자를 구성하고 있는 새우와 대나무의 다채로운 표현을 든다. 같은 소재지만 모양이 다 달랐지만 추상성과 해학성이 있고 현대적 미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풍부한 창의성과 표현력에 감탄하면서, 이를 도판으로 한곳에 모아 비교해볼 수 있게 했다.

“오래도록 민화를 수집하면서 전문가들로부터 시류에 뒤떨어진 허접한 것을 수집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아왔다. 또한 서양화나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의 멸시와 조롱 또한 많이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오기 아닌 오기가 생겨 수집을 멈출 수 없었고 언젠가는 꼭 민화가 세계의 문화가 되는 그날을 위하여 작은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급기야 그는 민화가 홀대받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세계적 회화인 민화를 위해 국립민화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민화 중에서 최고의 명품들을 엄선해 그것을 소개하는 식으로 민화를 세계화하자는 제안을 내놓기까지 한다.

책을 읽다보니 컬렉션의 묘미와 컬렉션의 길을 찾아주는 내비게이션처럼 느껴진다. 특히 미술품 외에도 다양한 아날로그 물건들을 수집하는 컬렉션 일반에도 저자의 수집철학이 폭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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