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예가 당나라 고종에게 ‘참을 인(忍)’자를 100번 써 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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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예가 당나라 고종에게 ‘참을 인(忍)’자를 100번 써 준 이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8.09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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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②
▲ 당나라 고종에게 ‘참을 인(刃)’ 자 100자를 써서 올리고 있는 장공예.

[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②

[한정주=역사평론가] 忍一時之忿(인일시지분)이면 免百日之憂(면백일지우)니라.

(한 순간의 분노를 참으면 백 날 동안의 근심을 모면할 수 있다.)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여기 제8강의 주제인 ‘성품을 경계하고 다스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덕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참을 인(忍)’이다.

‘참을 인(忍)’은 ‘칼날 인(刃)’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자이다. ‘참을 인(忍)’ 자에는 ‘가슴에 칼날을 품고 있는 것처럼 참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가슴에 칼날을 품고 있다면 그 고통을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겠는가. 아마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다시 말해 ‘참는다는 것’은 바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내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중국사에서 ‘참을 인(忍)’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구세동거(九世同居)’와 ‘백인(百忍)’이라는 고사성어를 남긴 당나라의 장공예(張公藝)를 꼽겠다.

당나라 시대를 기록한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의 <효우열전(孝友列傳)>을 보면 당나라 고종 때 사람인 장공예의 집안은 9대를 내려오며 수백 명의 자손들이 한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평소 ‘구세동거(九世同居)’의 미담을 귀담아 들었던 고종은 태산(泰山)에서 하늘과 대지에 제사를 모시는 봉선(封禪) 의식을 치른 후 장공예의 집에 들렀다. 그리고 고종은 장공예를 불러서 9대를 내려오며 수백 명의 자손들이 한 집에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때 고종의 질문을 묵묵히 듣고 있던 장공예는 답변은 하지 않고 붓과 종이를 달라고 한 다음 ‘참을 인(刃)’ 자 100자를 써서 올렸다고 한다.

집안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까닭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매우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런 저런 일로 내 탓이니 네 탓이니 하며 서로 책망하거나 비난하며 다투기 때문이다.

비록 책망하거나 비난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더불어 참는다면 어떻게 집안사람들이 화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두 번 참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될 수 없고 백 번은 참아야 비로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게 장공예가 고종에게 써서 올린 100개의 ‘참을 인(忍)’ 자에 담긴 뜻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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