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아니고 귀머거리가 아니면 가장 노릇 제대로 할 수 없다”
상태바
“바보가 아니고 귀머거리가 아니면 가장 노릇 제대로 할 수 없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8.21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⑧
▲ 당나라 제8대 황제 대종(代宗:왼쪽)과 신하 곽자의(郭子儀).

[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⑧

[한정주=역사평론가] 我若被人罵(아약피인매)라도 佯聾不分說(양롱불분설)하라 譬如火燒空(비여화소공)하여 不救自然滅(불구자연멸)이라 我心等虛空(아심등허공)이나 摠爾飜脣舌(총이번순설)이니라.

(내가 만약 다른 사람에게 헐뜯음을 당한다고 해도 거짓으로 귀먹은 척하며 옳고 그름을 가려 말하지 말라. 비유하자면 마치 불이 허공에서 홀로 타다가 애써 끄지 않아도 저절로 꺼지는 것과 같다. 내 마음은 허공과 같은데 줄곧 그대의 입술과 혀만 뒤집어질 뿐이네.)

사마천의 『사기』와 더불어 중국 역사서의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대해서는 앞서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자치통감』의 ‘당나라 시대’ 편을 읽다보면 제8대 황제 대종(代宗)과 신하 곽자의(郭子儀)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곽자의는 대종의 할아버지인 현종(玄宗) 때에는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했고, 대종 때에는 토번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몰락의 위기에 처한 당나라를 구하고 다시 일으킨 최고의 공신이었다. 때문에 대종은 자신의 딸 승평공주를 곽자의의 아들 곽애와 결혼시켰다.

당나라 최고의 공신이자 황실의 외척이 된 곽자의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곽자의의 아들 곽애가 승평공주와 부부싸움을 하다가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의 집안이 아니었다면 당나라는 망하고 황실은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며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의 아버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다는 실언을 했다.

아무리 부부싸움 도중 나온 실언이라고 해도 황제의 자리를 운운한 것은 그 자체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도 있는 ‘반역 행위’에 해당한다. 더욱이 곽애의 언행에 분노한 승평공주는 그 즉시 아버지 대종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일러 바쳤다.

이때 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대종은 “네 남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조용히 타이른 다음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 곽자의는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그냥 지나간 일로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대종을 알현하고 백 배 사죄하였다. 이때 대종은 곽자의에게 이렇게 말했다.

“‘속담에 바보가 아니고 귀머거리가 아니면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鄙諺有之(비언유지) 不癡不聾(불치불롱) 不作家翁(부작가옹)]’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녀자들이 규방에서 하는 말까지 하나하나 신경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이때 대종이 사위 곽애와 딸 승평공주 간에 오고간 말의 진위(眞僞)와 시비(是非)를 따졌다면 당나라에는 또 다시 피바람이 몰아쳤을 것이다. 부부싸움이 한 가문은 물론 황실과 나라를 몰락의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종은 이 문제를 ‘바보처럼 알아도 모르는 척, 귀머거리처럼 들어도 못 들은 척’ 처리하는 지혜를 발휘해 단순한 규방의 부부싸움 이상으로 번지지 않도록 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헐뜯어도 귀먹은 척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는 여기 『명심보감』의 가르침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보다 더 현명한 처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처럼 『자치통감』에 나오는 대종의 현명함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훗날 사람들은 ‘장롱작아(裝聾作啞)’라는 고사성어를 유행시켰다.

“귀머거리인 척 하고, 벙어리인 척 한다”는 뜻의 이 고사성어에는 다른 사람에게 헐뜯음을 당했다고 해도 귀머리거리처럼 들어도 못들은 척 하고 벙어리처럼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척하며 그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려고 하지 말고 또한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렇게 한다면 어떤 헐뜯음을 당한다고 해도,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근심과 재앙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