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정 단청장, “전통의 반복과 연속성은 영감의 보물창고”
상태바
최문정 단청장, “전통의 반복과 연속성은 영감의 보물창고”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8.08.30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인전 ‘유년의 정원’에서 만난 ‘낯선 익숙함’…9월4일까지 인사동 고은N아이 갤러리
▲ Mix Media 82×53㎝

개인전 ‘유년의 정원’에서 만난 ‘낯선 익숙함’…9월4일까지 인사동 고은N아이 갤러리

어쩌면 고루하다는 선입견에 눈이 가려진 채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상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쉽게 지나쳤던 무관심이었을 게다.

누군가 내밀면 익숙한 듯 ‘아~’ 하고 감탄사를 터뜨리지만 스스로 찾아 나서지는 않았던, 그러나 기억과 가슴 모두에서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미지들이다.

중세 유럽의 어느 거대한 성당 천정에 매달린 모자이크를 연상했지만 어느새 아득한 옛 산수화의 풍경에 빠져들어 있다. 조선 왕조의 궁궐 처마인 듯, 깊은 산사의 풍경 아래인 듯 꿈속의 무릉도원을 거니는 몽환적 분위기가 압도한다.

화려하면서도 가만 바라보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조화도 부린다.

▲ 천연석채 37×136㎝×6폭

최문정 작가의 개인전 ‘유년의 정원’은 전시 타이틀에 너무 연연했던 탓인지 감상 포인트를 쉽게 찾지 못했다. 막연하게 30대 중반의 헤르만 헤세가 부모님이 가꾸었던 정원을 찾아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에세이 ‘유년의 정원’과 오버랩 되면서 섣부른 예단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작은 정원과 꽃으로 장식된 발코니, 눅눅하고 해가 들지 않아 푸른 이끼로 뒤덮인 마당”에서 유년시절의 장난기가 발동해 도마뱀도 잡다가 철로 위를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이제 이곳에는 더 이상 참된 기쁨을 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다소 도식적인 작품의 도열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최문정 작가의 정원은 헤세와 달리 단순히 물리적으로 변화하는 시·공간을 의미하지 않았다. 치열한 미적 갈등과 방황 그리고 혼란이 상호 부딪히고 화해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내적 의식의 공간이었다.

▲ Mix Media 80×151㎝

더 나아가 내면의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무의식 공간의 영감까지 끄집어내 이미 의식의 공간에 존재하는 전통과의 결합을 통해 시각적 작업으로 이끄는 원천이었다.

최문정 작가가 “전통에 의한 반복과 연속성은 나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보물창구”라고 말하는 이유다. 전통을 바탕으로 반복과 연속성에서 새로운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고 이때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또 다른 창작의 길을 열게 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했던 헤세의 이분법적 단절성과는 달리 태어나기 위해 파괴해야 했던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고도 태어나는 깨달음을 터득한 것이다.

▲ Mix Media 38×136 ㎝×6폭

사실 최문정 작가는 오랜 현장 수련을 통해 전통단청의 문양을 익히고 안료의 제작기법과 채색기법 등을 연구해온 단청 장인이다.

우리나라 단청의 거목인 고(故) 만봉 스님으로부터 10년 동안 사사한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전수교육조교이며 단청문화재 수리자격증(문화재 수리기술자 417호)을 획득했다.

20대 후반부터 참여한 전국사찰복원만도 불국사 무설전 지장탱화, 제주도 불탑사, 삼천사, 국보 제62호 김제 금산사 미륵전 복원 등 100여개 사찰에 이른다.

그러나 최문정 작가의 작품세계는 전통에 붙잡혀 있지 않다. 서양화를 공부하며 더 나은 세계를 찾아 모았다 흐트러뜨리고, 다시 정리해 놓았다 버리고 또 새로운 것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작가 스스로 이러한 “고지식함이 제일 불편하다”고 투덜거리지만 “유쾌한 현대적 계승을 위한 본질”이라고 자위한다.

▲ Mix Media 114×70 ㎝

전통안료와 사용법, 채색기법 연구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 최문정 작가에게 동양의 색으로 서양화를 표현하고 단청의 색감으로 모양과 무늬, 양감을 모두 표현하는 드문 화풍의 소유자라는 화단의 평은 당연하다.

이처럼 “지나친 답습과 훈련의 연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정원을 꿈꾸면서도 이것이 두 길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작가의 고뇌는 지난 29일부터 오는 9월4일까지 인사동 고은N아이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20여점의 개인전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전통불화의 오방색이 소나무 껍질 등과 같은 이질적인 재료와 만나 하나의 화폭에서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되고 하나의 사물에 복잡한 또 다른 사물들이 결합된 추상적 이미지들에서 안정과 균형, 전제와 조화로움이 엿보이는 것은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한 곳에 머물지도 않는 도전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킨 의식·무의식적 창작열의가 한국화·서양화 기법에 혼합재료가 어우러져 입체감 있는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천연석채를 이용한 작품은 대표적이다.

최문정 작가는 “한 분야에 집착하다 보면 다른 분야는 도외시하거나 무시하게 된다”면서 “아직 찾아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많은데 벌써 후학들을 가르치는 나이가 돼 버렸다”고 엷은 미소를 짓는다.

지나치리만치 현대화에 치중했다는 8년 전의 첫 개인전 ‘유년의 기억’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전통과 접목시킨 작품세계를 보여준 이번 전시를 통해 최문정 작가의 다음 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최문정 단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