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작과 석후 부자의 비극적 고사성어…대의멸친(大義滅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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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작과 석후 부자의 비극적 고사성어…대의멸친(大義滅親)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9.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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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0강 훈자편(訓子篇)…자식을 가르쳐라⑥

[명심보감 인문학] 제10강 훈자편(訓子篇)…자식을 가르쳐라⑥

[한정주=역사평론가] 太公曰(태공왈) 男子失敎(남자실교)면 長必頑愚(장필완우)하고 女子失敎(여자실교)면 長必麤疎(장필추소)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남자 아이가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장성해서 완고하거나 어리석게 된다. 여자 아이가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장성해서 반드시 거칠고 엉성하게 된다.”)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대부(大父) 석작(石碏)은 일찍이 자신이 섬긴 위나라의 제후 장공(莊公)에게 부모된 사람은 “자식을 사랑하면 항상 의로움을 따르도록 가르치고, 반드시 요사스럽고 사악한 곳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간언했다.

그러면서 부모의 사랑이 지나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채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게 될 경우 자식을 망치는 네 가지 큰 해악을 만들게 된다고 했다.

그 첫째가 교만함이라면, 둘째는 사치스러움이고, 셋째는 음란함이며, 넷째는 방탕함이라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 사랑할 줄만 알고 가르침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어려서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기다렸다가 더 커서 가르친다고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쓸모없는 나무의 싹을 자라게 해서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가 되도록 기다렸다가 베어 없애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린 싹을 잘라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를 베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새장을 열어서 새를 놓아주고 제멋대로 날아다니게 한 다음 다시 잡으려고 하거나 고삐를 풀어서 말을 놓아주고 제멋대로 뛰어다니게 한 다음 다시 잡으려고 하는 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애초 새장과 울타리에 잡아 두고 훈련한 다음 놓아주면 마땅히 다시 새장과 울타리에 잡아둘 수 있지만 처음부터 제멋대로 날아다니고 뛰어다니게 한 다음 다시 잡아 훈련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다시 잡아 훈련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석작은 자식을 사랑하면 할수록 반드시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식을 사랑할 줄만 알 뿐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자식이 위태롭고 욕되며 어지럽고 망하게 하는 길에 빠지도록 방치하는 것이나 같다. 사랑만 할 뿐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자식을 망치는 사람이지 결코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석작은 과연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을까. 이와 관련한 유명한 고사성어가 있다. ‘대의멸친(大義滅親)’, 곧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살려두지 않는다”는 고사성어가 바로 그것이다.

공자가 저술·편찬한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역사서인『춘추(春秋)』에 좌구명(左丘明)이 주석과 해설을 덧붙인 책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다. 이 책 <은공(隱公) 4년조>에 보면 장공의 서자 주우(州吁)가 석작의 아들 석후(石厚)와 손잡고 장공의 뒤를 이어 위나라의 제후가 된 이복형제 환공(桓公)을 살해하고 권좌를 찬탈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주우는 권좌에 앉은 후 여전히 민심이 자신을 따르지 않자 석후를 불러 백성의 마음이 자신에게 돌아올 방책을 찾으라고 명했다. 이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석후는 자신의 아버지 석작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석작은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나라 천자를 배알하고 주우가 위나라의 제후라는 사실을 인정받으면 민심이 돌아설 것이라고 일러주면서 주나라 왕실과 가까운 진(陳)나라를 찾아가 천자를 배알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달라는 요청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석작의 조언은 반역 사건의 주범인 주우와 석후를 체포해 처형하려는 계책이었다.

석작의 조언에 따라 주우와 석후는 즉시 진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 이에 석작은 진나라 제후에게 밀사를 보내 군주 시해범으로 두 사람을 체포해 줄 것을 부탁했고, 주우와 석후는 진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었다.

당시 석작은 위나라의 사신 우재추(右宰醜)를 시켜 주우를 살해하고 자신의 가신 누양견(獳羊肩)을 시켜 석후를 죽이게 했다.

군신 간에 지켜야 할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의 자식도 용서하지 않고 극형에 처한 석작의 행동에 대해 『춘추좌씨전』의 저자 좌구명은 ‘대의멸친’이라고 높여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살려두지 않은 것은 바로 이 같은 일을 두고 하는 말인가?(大義滅親(대의멸친) 其是之謂乎(기시지위호)”

석작의 행동은 자식을 가르칠 때는 위태롭고 욕되며 어지럽고 스스로를 망치는 길에 빠지지 않도록 성심과 정성을 다해 가르치되 만약 자식이 가르침을 거스르고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다면 대의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부자간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가르침을 준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해도 자식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끊어버리는 석작의 행동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곤란한 일이지만 석작에게는 그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 즉 더 이상 위태롭고 욕되고 어지럽고 스스로를 망치는 길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석작과 석후 부자간의 옛 이야기는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을 경우 겪게 되는 재앙과 해악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알려주는 비극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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