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아들 백금(伯禽)을 매질한 주공(周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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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한 아들 백금(伯禽)을 매질한 주공(周公)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9.12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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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0강 훈자편(訓子篇)…자식을 가르쳐라⑨
▲ 어린 조카인 성왕을 보필하는 주공(周公)의 모습을 그린 동판.

[명심보감 인문학] 제10강 훈자편(訓子篇)…자식을 가르쳐라⑨

[한정주=역사평론가] 憐兒(연아)어든 多與棒(다여봉)하고 憎兒(증아)어든 多與食(다여식)하라.

(아이를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때리고, 아이를 미워하거든 먹을거리를 많이 주어라.)

주공(周公) 단(旦)은 중국 고대 3왕조 중 하나인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동생이다. 특히 주공은 형인 무왕이 사망한 후 -권력을 찬탈할 힘을 가졌음에도- 어린 조카인 성왕을 보좌해 주나라의 백년대계를 닦은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공자의 언행록(言行錄)인 『논어』에 보면 공자가 꿈속에서 주공을 만난 지가 오래되었다면서 자신이 이제 늙어 기력이 약해진 지가 오래되었다고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대목은 공자가 젊어서 모든 힘과 정력을 다해 주공을 배우고 실천할 때는 그 사모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항상 있어서 꿈에도 잊지 않고 주공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 늙고 기력이 쇠약해져 주공을 따라 배우고 실천하는 게 젊었을 때만 못하게 되자 주공이 점점 뜸하게 보이다가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듯 주공은 공자가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 즉 성인(聖人)으로 꼽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주공은 아들 백금(伯禽)이 장성한 이후에도 엄하게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느 때인가 백금은 주공을 세 차례 만나러 갔는데 주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만날 때마다 매질을 했다.

이때 옆에 있던 강숙봉(康叔封)이 크게 놀라면서 백금에게 현인(賢人)인 상자(商子)를 만나면 ‘왜 주공이 매질을 했는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함께 찾아가자고 했다. 그래서 백금은 강숙봉과 함께 상자를 찾아가 주공이 자신을 매질한 까닭을 물었다.

상자는 남산의 남쪽에 가면 ‘교(橋)’라는 이름의 나무가 있으니 보고 오라고 했다. 백금과 강숙봉이 그곳에 가서 보니 ‘교’라는 이름의 나무는 위쪽을 향해 매우 높게 솟아 있었다.

‘교’라는 이름의 나무를 보고 난 후 백금과 강숙봉은 다시 상자를 찾아 갔다. 그런데 상자는 이번에는 남산의 북쪽에 가면 ‘재(梓)’라는 이름의 나무가 있으니 보고 오라고 했다.

백금과 강숙봉이 그곳에 가서 보니 ‘재’라는 이름의 나무는 ‘교’라는 이름의 나무와는 달리 낮고 낮아서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재’라는 이름의 나무를 보고 난 후 백금과 강숙봉은 다시 상자를 찾아 갔다. 상자는 이렇게 말했다.

“‘재(梓)’라는 이름의 나무는 자식의 도리를 나타냅니다.”

상자의 말에 크게 깨달은 백금과 강숙봉은 바로 다음 날 주공을 찾아가서는 문을 들어설 때부터 두려워하듯 조심하고 삼가며 발걸음을 줄여 걷고 마루에 올라서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주공은 백금과 강숙봉의 머리를 쓰다듬고 음식을 내어주면서 “그동안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고 물었다.

백금과 강숙봉이 “상자를 만났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주공은 “상자는 군자로구나”라며 높여 칭찬했다. 상자는 ‘교’라는 이름의 나무를 통해 ‘아버지의 도리’를 가르치고 ‘재’라는 이름의 나무를 통해 ‘자식의 도리’를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해 주공은 천하제일의 권세를 틀어쥐고 있는 아버지를 믿고 자식이 자칫 교만하고 오만해져서 신세를 망치지 않을까 크게 염려했기 때문에 장성한 자식에게 매질을 하면서까지 공경함과 겸손함을 가르쳤다.

주공이 세 차례나 백금을 매질해 가르쳤다는 이 이야기는 전한(前漢) 시대의 학자 유향이 편찬한 『설원(說苑)』 <건본(建本)> 편에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부모된 사람은 자식을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뜻의 ‘주공삼태(周公三笞: 주공의 세 차례 매질)’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이렇듯 교만함과 오만함 대신 공경함과 겸손함을 가지도록 엄하게 자식을 가르쳤던 주공의 또 다른 일화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에 기록되어 있다.

주공은 노나라를 분봉받았지만 어린 조카 성왕을 대신해 주나라를 다스려야 했기 때문에 아들인 백금을 노공(魯公)으로 삼아 노나라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때 주공이 백금을 노나라로 보내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요, 무왕의 동생이며 성왕의 숙부로서 신분과 직위와 권위로 말하자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머리를 감다가도 손님이 오시면 머리채를 양손으로 감싸고 맞이하기를 하루에도 세 번씩, 밥을 먹다가도 손님이 오시면 바로 뱉어내기를 하루에 세 번씩, 이렇게까지 하면서 열성을 다했다. 그러면서도 현인을 모시지 못할까 항상 전전긍긍했다. 네가 노나라에 가면 제후랍시고 교만해져서 함부로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되느니라.”

천하의 권력을 손안에 두고 있는 최고의 권세가가 자식을 가르칠 때에도 이렇듯 교만함과 오만함을 경계했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이 교만하고 오만한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부모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끝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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