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이방의 재산·분배 가법과 벼락부자 도나라 답자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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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이방의 재산·분배 가법과 벼락부자 도나라 답자의 아내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9.1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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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②
▲ 북송 제2대 태종(太宗) 때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명신이었던 이방(李昉)과 그가 편찬·제작을 진두지휘한 『태평광기(太平廣記)』.

[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②

[한정주=역사평론가] 家和貧也好(가화빈야호)니 不義富如何(불의부여하)리오 但存一子孝(단존일자효)면 何用子孫多(하용자손다)리오.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조차 달갑지만 의롭지 않다면 부유하다 한들 무엇 하겠는가. 다만 효도하는 자식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지 자손이 많다 한들 무엇 하겠는가.)

북송 제2대 태종(太宗) 때 이방(李昉)은 『태평광기(太平廣記)』의 편찬·제작을 진두지휘한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명신이었다. 『태평광기』는 한나라 시대부터 송나라 초기까지의 설화와 야사 등을 광범위하게 채록해 총 500권 7000여 조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엮은 서책이다.

특히 이방은 여러 대에 걸쳐 200명의 대가족이 한 집안에서 화목을 누리며 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했다. 역사상 모범과 교훈이 될 만한 인물과 그 집안을 고르고 또 골라서 뽑은 다음 자손들에게 가훈 삼아 전하려고 제작한 사마광의 『가범』 <치가(治家)> 편에도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물을 균등하게 나누며 고락(苦樂)을 함께 하는 방법으로 집안을 다스려서 오랜 세월 가정의 화목을 유지했던 이방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사마광은 1019년 태어나 1086년 사망한 인물로 제6대 신종(神宗) 때 주로 활동한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이방은 925년 태어나 996년 사망했다. 그러므로 사마광이 이방의 이야기를 『가범』에 기록한 때는 이방 사후 거의 100년 가깝게 세월이 지난 뒤였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마광은 송나라가 개국한 이후 100여년 동안 수많은 공경대부들이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세와 부귀를 누렸지만 선조가 가르친 가법(家法)과 가훈(家訓)을 잘 지켜서 오래도록 쇠퇴하지 집안은 오직 이방의 자손들밖에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마광은 그토록 오랜 세월 집안을 잘 지킬 수 있었던 비밀을 “몇 대에 걸쳐 수백 명의 대가족이 한 집안에 함께 모여 살면서 재산과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균등하게 분배하는 가법과 가훈”에서 찾았다.

이방과 그 자손들은 전답에서 수확하는 농작물에서부터 벼슬하면서 받은 녹봉이나 물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물을 한 창고에 모아 보관한 다음 가족 수에 따라 균등하게 나누어 생계를 도모하도록 했다.

또한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의 대소사에 소요되는 비용 역시 일정한 액수를 정해서 고르게 지불했다. 덕분에 재산과 재물을 둘러싸고 집안사람들 간에 다툼이나 원망이 없었다. 다시 말해 가난할 때는 함께 고통을 나누고 부유할 때는 함께 즐거움을 누렸기 때문에 수백 명의 대가족이 모여 살면서도 오래도록 화목할 수 있었던 셈이다.

공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자신의 재산과 재물을 균등하게 나누기 때문에 집안사람들이 비록 거친 밥을 먹으며 굶주림에 시달리고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추위에 떨어도 원망하는 일이 없다. 집안사람들 간에 원망하는 마음이 발생하는 원인은 가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자손에게는 후하게 베풀고 미워하는 자손에게는 야박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집안사람들이 화목을 유지하는 데에는 재산과 재물을 균등하게 하는 방법 못지않게 좋아하는 자손은 아끼고 미워하는 자손은 멀리하는 마음, 즉 편애(偏愛)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또한 『가범』에는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재산과 재물을 모은 가장(家長)을 호되게 질책한 도(陶)나라의 대부 답자(答子)의 아내에 관한 일화도 기록되어 있다.

도나라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답자는 집안의 재산을 3배나 불렸으며, 더욱이 5년이 지날 무렵에는 무려 백승(百乘: 백 대의 수레)의 재물을 축적해 거부(巨富)의 반열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에 집안사람들과 이웃친지들이 모두 축하하며 부러워했지만 유독 답자의 아내만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재능이 부족한데도 벼슬자리가 높습니다. 이것은 어린 자식을 해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공적이 없는데도 집안은 날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멸문을 당하는 재앙을 쌓는 일일 뿐입니다. 지금 남편은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재물을 탐하면서 해로움을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 이 말을 듣고 있던 답자의 어머니가 크게 화를 내며 며느리를 집밖으로 내쫓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이 될 때쯤 답자의 집안은 불법으로 재물을 탐한 도적의 죄명으로 처벌을 받았다. 답자는 결국 죽임을 당하고 집안은 몰락의 재앙을 입고 말았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한 집안은 당장에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끝내는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한 것은 즐거워할 일이 아니라 마땅히 근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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