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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와 녹봉과 재물과 복은 다 사용하지 않고 돌려주어라”[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㉚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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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8  0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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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 때의 명재상 손숙오의 사례는 '손실이 오히려 이익'이 되는 대표적인 경우다.

[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㉚

[한정주=역사평론가] 王參政(왕참정) 四留銘曰(사류명왈) 留有餘不盡之巧(유유여부진지교)하여 以還造物(이환조물)하고 留有餘不盡之祿(유유여부진지록)하여 以還朝廷(이환조정)하고 留有餘不盡之財(유유여부진지재)하여 以還百姓(이환백성)하고 留有餘不盡之福(유유여부진지복)하여 以還子孫(이환자손)하라.

(왕참정이 <사류명>에서 말하였다. “남아 있는 재주를 다 사용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조물주에게 돌려주고, 남아 있는 녹봉을 다 사용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조정에 돌려주고, 남아 있는 재물을 다 사용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남아 있는 복을 다 누리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자손에게 돌려주라.”)

왕참정은 북송 제3대 황제인 진종(眞宗) 때 재상으로 이름은 왕단(王旦)이다. 그럼 왕참정이라고 부른 까닭은 무엇인가. 왕단이 당시 관직 체계상 종이품(從二品)에 해당하는 참정(參政)의 벼슬을 지냈기 때문에 왕참정이라고 한 것이다.

‘사류명’은 네 가지 남겨두어야 할 것이라는 뜻으로 왕참정이 스스로 네 가지를 경계하기 위해 새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왕참정이 ‘사류명’에 새긴 ‘재주와 녹봉과 재물과 복을 다 사용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특별히 『회남자』 <인간> 편에서 유안이 인용하고 있는 『노자』 42장의 “物或損之而益(물혹손지이익) 或益之而損(혹익지이손)”, 즉 “사물 가운데에는 간혹 손실이 오히려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고 간혹 이익이 오히려 손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구절과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회남자』에서는 『노자』 42장의 구절을 해석하면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위험’을 언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위험은 “덕(德)이 부족하면서 총애를 지나치게 받는 것”이다. 다음 두 번째 위험은 “재주가 모자라면서 지위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위험은 “큰 공적을 세우지 않았는데 녹봉(祿俸)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다.

그러면서 『회남자』에서는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 때의 명재상 손숙오의 사례를 들면서 “손실이 오히려 이익이 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손숙오는 나라를 위해 큰 공적을 세운 까닭에 장왕으로부터 봉토(封土)를 포상으로 받았지만 끝까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혹시 왕이 너에게 봉지를 주려고 하면 절대로 기름진 땅을 받지 마라. 다만 초(楚)나라와 월(越)나라 중간에 침(寢)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지(山地)가 있는데, 그 땅은 기름지지도 않고 그다지 좋지도 않다. 그래서 누구도 그 땅을 바라지 않는다. 오래도록 지닐 수 있는 땅은 그 곳 이외에는 없으니 그 땅을 봉지로 받아라.”

손숙오가 죽자 그의 유언대로 왕은 손숙오의 아들에게 좋은 땅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손숙오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좋은 땅을 사양하고 침(寢) 지역의 구릉(丘陵) 지대를 봉지(封地)로 받았다.

그 후 숱한 왕권의 교체와 권력 투쟁 속에서 좋은 땅을 차지한 귀족과 신하들은 그 땅 때문에 목숨을 잃고 멸문의 재앙을 만났다. 그러나 손숙오의 후손들만은 오래도록 그 땅을 유지한 채 가문의 맥을 이을 수 있었다. “손실이 오히려 이익이 된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 춘추시대 진(晋)나라의 제후 여공(厲公)의 사례는 이익이 오히려 손실이 되는 대표적인 경우다.

반대로 “이익이 오히려 손실이 되는 경우”는 춘추시대 진(晋)나라의 제후 여공(厲公)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여공은 초나라, 제나라, 진(秦)나라, 연나라 등 온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정벌 전쟁을 벌였는데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진나라 여공은 그 어떤 제후보다도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보유해 천하의 제후들 가운데 가장 부유하고 강성한 제후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각국의 제후들은 이러한 여공의 권세와 위엄을 두려워하며 복종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공의 방약무인함과 교만함과 오만함은 극도에 달했고, 여기에 더해 음란방탕하고 사치스럽기가 끝을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신하들을 잔혹하게 대해서 어질고 현명한 사람은 여공의 곁을 떠나고 오로지 아첨하고 살육을 즐기는 간신들만이 주변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더욱이 백성들에게 포학하게 굴어서 민심까지 등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여공은 총애하는 신하 장려씨(匠驪氏)의 집에 놀러 갔다가 평소 여공의 잔혹 무도한 언행에 큰 불만을 품고 있던 난서(欒書)와 중행언(中行偃)에게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어떤 제후와 신하와 백성도 여공을 도우러 나서지 않았다. 결국 여공은 감금당한 지 3개월 만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여공은 정벌 전쟁의 승리로 천하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성하며 존귀하고 위엄 있는 제후가 되었지만 자신의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방약무인하고 잔혹 무도해져서 결국 제후의 자리를 잃고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익이 오히려 손실이 된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초나라 손숙오와 진나라 여공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여기 『명심보감』의 “재주와 녹봉과 재물과 복을 끝까지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익을 끝까지 누리려고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이익을 끝까지 누리려고 한다면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재주든 녹봉이든 재물이든 행운이든 성공이든 세상 그 무엇도 남김없이 다 사용하거나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겠다. 그래야 복(福)이 화(禍)로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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