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색하면 인정(人情)도 멀어진다”…떠난 빈객·선비 다시 받아들인 맹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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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색하면 인정(人情)도 멀어진다”…떠난 빈객·선비 다시 받아들인 맹상군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12.2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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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㊴

[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㊴

[한정주=역사평론가] 人情(인정)은 皆爲窘中疎(개위군중소)니라.

(사람의 정은 모두 궁색한 가운데 멀어진다.)

앞서 전국시대 말기를 풍미한 ‘전국 사공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소개했다. 제나라 맹상군 전문(田文), 조나라 평원군 조승(趙勝), 위나라 신릉군 무기(無忌), 초나라 춘신군 황헐(黃歇)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문하에 식객 3000여명을 거느렸을 만큼 큰 부귀와 권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이들 중 빈객과 선비를 좋아해 스스로 즐긴 인물로 치자면 맹상군이 단연 으뜸이었다.

맹상군이 크게 명성을 얻어 재상의 지위에 오르자 제나라 왕은 그가 권세를 제 마음대로 휘둘러 왕권을 약화시킨다고 여기고 조정에서 물러나게 했다. 맹상군이 권력을 잃자 더 이상 그를 섬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빈객과 식객들 또한 모두 떠나버렸다.

그런데 이때 떠나지 않고 여전히 맹상군의 옆을 지키고 있던 풍환(馮驩)이라는 이름의 빈객이 자신에게 수레 한 대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주면 진나라로 들어가서 맹상군이 다시 제나라에서 중용될 수 있도록 계략을 펼쳐보겠다고 했다.

맹상군이 수레와 예물을 갖추어 주자 풍환은 즉시 진나라로 떠났다. 진나라로 들어간 풍환은 진나라 왕을 만난 다음 제나라의 힘을 약화시키고 진나라의 힘을 강성하게 하려면 반드시 지금 제나라 왕에게 버림받은 맹상군을 데려와 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풍환은 만약 제나라 왕이 잘못을 깨닫고 다시 맹상군을 중용하면 진나라는 제나라의 힘을 억누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서 서둘러 수레와 예물을 갖추고 맹상군을 맞이하라고 권했다. 이에 진나라 왕이 수레 열 대에 황금 2000냥을 보내 맹상군을 데려오도록 했다.

그런데 풍환은 진나라 왕의 사자가 제나라에 이르기 전 한 발 앞서 제나라에 도착해 왕을 접견한 다음 지금 진나라 왕이 조정에서 쫓겨난 맹상군을 데려가려고 사신에게 수레와 황금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설마 맹상군이 고향을 버리고 진나라에 가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 진나라로 들어가면 그 왕에게 제나라에 큰 위협이 될 만한 정보와 계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그러면서 풍환은 진나라 사신이 도착하기 전에 다시 맹상군을 재상으로 중용한다면 맹상군이 크게 기뻐해 진나라에 가지 않을 것이며 또한 진나라가 아무리 강성한 나라일지라도 함부로 제나라의 재상을 데려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풍환의 말에 설득당한 제나라 왕은 다시 맹상군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맹상군을 데리러 제나라로 오던 진나라 왕의 사자는 이 소식을 듣고 수레를 돌려 진나라로 되돌아갔다.

이렇게 맹상군이 다시 재상의 지위에 오르자 풍환은 지난날 재상의 지위에서 쫓겨날 때 맹상군을 떠났던 빈객들을 다시 맞아들이려고 했다.

그런데 맹상군은 자신이 빈객과 선비를 좋아해 그토록 잘해주었지만 정작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 떠난 사실에 대해 섭섭하고 노여운 마음을 토로하면서 만약 다시 자신을 만나려고 찾아오면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 큰 욕을 보여 부끄러움을 깨우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던 풍환은 맹상군에게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부귀하면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친구가 적어진다는 것은 세상사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시장에 한 번 가 보십시오. 아침 무렵에는 어깨를 부딪치며 남보다 앞서 시장으로 들어가려고 다투던 사람들이 저녁 무렵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립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면 자신들이 사고자 한 물건이 시장 안에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대께서 재상의 지위를 잃자 떠나버린 빈객의 마음이 시장을 찾아갔다가 떠나는 사람의 마음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빈객을 원망하는 마음에 일부러 그대를 찾아오는 그들을 내쫓지 말고 처음처럼 대우해주십시오.”

풍환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맹상군은 지난날 자신을 떠나버린 빈객과 선비 중 다시 찾아온 사람들을 잘 대우해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기』 <맹상군열전>에 나오는 풍환의 “富貴多士(부귀다사) 貧賤寡友(빈천과우)”, 곧 “부귀하면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친구가 적어진다”는 말과 『명심보감』의 “人情(인정) 皆爲窘中疎(개위군중소)”, 즉 “사람의 정은 모두 궁색한 가운데 멀어진다”는 말은 그 이치와 의미가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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