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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하는 친구는 현명한 친구 쫓아내고, 시기하는 신하는 현명한 인재 쫓아낸다”[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㊸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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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9  08: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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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㊸

[한정주=역사평론가] 荀子曰(순자왈) 士有妬友則賢交不親(사유투우즉현교불친)하고 君有妬臣則賢人不至(군유투신즉현인부지)니라.

(순자가 말하였다. “선비에게 시기하는 친구가 있으면 현명한 친구를 가까이 할 수 없고, 임금에게 시기하는 신하가 있으면 현명한 인재가 다가오지 않는다.”)

여기 순자의 말은 그가 저술한 책인 『순자』 <대략(大略)>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먼저 “士有妬友則賢交不親(사유투우즉현교불친)”, 즉 “선비에게 시기하는 친구가 있으면 현명한 친구를 가까이 할 수 없다”는 순자의 훈계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신(名臣)이자 명장(名將)이었던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의 고사를 통해 헤아려볼 수 있다.

염파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제나라를 공격해 크게 승리한 공적으로 상경(上卿)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용맹과 지략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렸다.

인상여는 조나라 환관의 수장인 무현(繆賢)의 가신이었다. 그는 명장 염파와 다르게 뛰어난 외교술로 크게 출세했다.

조나라 혜문왕 때 손에 넣은 천하의 보물인 화씨벽(和氏璧)을 이웃한 강대국 진(秦)나라에게 빼앗길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인상여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탁월한 변설로 진나라의 소양왕을 설득한 덕분에 혜문왕은 화씨벽을 지킬 수 있었다.

당시 인상여는 크게 공로를 인정받아 조나라의 상대부(上大夫)가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진나라 소양왕과 조나라 혜문왕은 서하(西河) 남쪽 민지(澠地)라는 곳에서 회합을 가졌는데, 이 회합 도중 술자리에서 소양왕은 혜문왕을 위협해 제압하려고 했다.

이때 인상여가 기지를 발휘해 오히려 소양왕을 망신주고 혜문왕의 위엄을 지켜주었다. 이 사건으로 다시 공로를 인정받은 인상여는 마침내 상경(上卿)의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되어 인상여는 염파보다 더 지위가 높아졌다.

그런데 염파는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른 인상여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운 공적으로 상경에 올랐는데 인상여는 미천한 출신인 데다가 겨우 세 치 혀와 입만 놀려서 상경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염파의 인상여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다. 어떻게 인상여 따위가 천하의 명장 염파보다 지위가 높을 수 있냐는 주변 사람들의 비방과 험담과 욕설 탓에 염파는 인상여의 현명함과 탁월함을 헤아려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염파는 인상여를 세 치 혀와 입만으로 임금의 환심을 사서 벼락출세한 간신배로 보고 혹시 만나면 반드시 크게 모욕을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염파가 자신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고, 또한 조정 회의 때도 항상 병을 이유로 염파와 서열을 다투지 않았으며, 집 밖으로 나가서도 멀리 염파가 보이면 일부러 수레를 끌어 숨어버리곤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인상여의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염파를 비방하고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나라의 위험으로부터 조나라를 구한 인상여의 공적은 염파가 전쟁터에서 세운 공적과는 비교할 수 없다면서 왜 염파 따위를 두려워하며 몸을 피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때 인상여는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의 위세와 위협에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진나라 왕을 그의 궁전에서 꾸짖었던 내가 염파를 두려워하겠는가. 다만 지금 진나라가 조나라를 감히 공격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더불어 염파가 건재하기 때문이오. 만약 나와 염파가 다툰다면 결국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이유는 먼저 나라의 존망을 생각하고 개인적인 원망은 뒤에 두기 때문일 뿐이오.”

얼마 지나지 않아 염파는 인상여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서야 염파는 자신의 시기심과 질투심에다가 주변 사람들의 비방과 험담 때문에 미처 인상여의 현명함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이에 염파는 인상여을 직접 찾아가서 사죄하며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했다. 마침내 두 사람은 화해하고 죽음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염파는 처음 인상여를 시기하고 질투한 자신과 주변 사람들 때문에 인상여의 현명함을 알아보지 못한 채 멀리 하며 욕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인상여는 자신을 향한 염파의 시기와 질투를 원망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비방과 험담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라의 존망을 앞세우고 개인의 분노는 뒤로하는 현명한 처신을 하였다.

염파가 시기와 질투 때문에 인상여라는 현명한 친구를 가까이 하지 못했다면 인상여는 시기와 질투를 버렸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어리석어진 염파를 다시 현명한 사람으로 돌려놓았다고 하겠다.

“君有妬臣則賢人不至(군유투신즉현인부지)”, 즉 “임금에게 시기하는 신하가 있으면 현명한 인재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순자의 훈계는 여기에서 구태여 구체적인 경우를 언급하지 않아도 역사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순자 역시 『순자』 <대략> 편에 바로 앞서 나오는 <성상(成相)> 편에서 ‘시기하는 신하’가 ‘현명한 인재’를 쫓아낸 사례를 여러 차례 열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나라 주왕을 파멸로 몰아넣은 간신 비렴(飛廉)과 악래(惡來)를 언급하면서 “세상의 재앙이란 현명하고 재능 있는 인재를 시기하고 질투한 비렴이 정사(政事)를 알게 하고 다시 그의 아들 악래가 정사를 맡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충신 비간(比干)은 심장을 가르는 죽음을 맞았고, 기자(箕子)는 미친 척하며 감옥에 갇혔고, 미자계(微子啓)는 주나라 무왕에게 투항했다는 것이다.

또한 순자는 “세상의 재앙은 현명하고 어진 선비를 미워하는 것”인데 초나라 평왕(平王) 때 간신 비무기(費無忌)의 참소와 참언으로 오(吳)나라로 달아났다가 다시 오나라 왕 부차(夫差) 때 간신 백비(伯嚭)의 시기와 질투 탓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음에 이르고 만 당대 제일의 병법가이자 지략가 오자서(伍子胥)가 그렇다고 말한다.

또한 “세상에서 제일가는 어리석음이란 ‘대유(大儒)’, 곧 ‘어질고 현명하며 학문과 식견이 높은 큰 선비’를 미워해 물리치고 쫓아내는 것”인데 공자가 천하 주유 때 여러 제후국에서 권신과 간신들의 참소로 인해 곤욕을 겪은 사건이나 노나라의 현자(賢者)인 대부(大夫) 유하혜(柳下惠)가 신하들의 비방과 원망으로 말미암아 세 번이나 관직에서 쫓겨난 일이 바로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임금 주변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신하가 있게 되면 현명하고 재능 있는 인재가 곤욕을 치르고 심한 경우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는 사례가 역사 속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쇠락하거나 멸망에 이른 나라에는 반드시 시기하고 질투하는 간신과 그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비참한 죽음을 맞은 현자(賢者)나 인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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